주일대사의 놀라운 조언... 일본 언론은 웃고 있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4. 6. 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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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시도, 윤 정부는 뭐하고 있나

[김종성 기자]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 연합뉴스
 
환경오염뿐 아니라 강제노동의 결과로 생산된 제품도 시장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다. 미국이 소수민족 거주지인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생산된 원자재나 상품의 수입을 원칙상 금지하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함께 이 흐름을 주도하는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워싱턴 시각 작년 1월 6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더불어 '공급망 강제노동 최종 TF' 출범을 위한 협력각서를 체결했다.

일본은 '인권침해를 수반하는 상품이 시장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일본이 대표적 강제노동 현장인 니가타현 사도광산을 다음 달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막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뒤가 심히 맞지 않는 일이다.

일본은 그곳이 강제징용 현장이었다는 비판을 의식해 '한국인 징용이 있었던 20세기의 사도광산은 제외하고 16~19세기의 사도광산만 세계유산으로 지정해달라'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한국 침략 이후의 이토 히로부미는 잊고 그 이전의 이토 히로부미만을 근거로 그를 좋게 평가해달라고 촉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도섬의 사도광산에서는 최소 2천 명 이상의 한국인이 강제노역을 당했다. 이런 피해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20세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종전 3년 뒤인 1601년에 금맥이 발견돼 무신정권인 도쿠가와막부(에도막부)의 재정 수입원이 된 이곳은 잘 곳이 없는 무숙인이나 죄수들이 강제노역을 당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사도섬에 남아 있는 '무숙인의 묘' 혹은 '부랑자의 무덤'은 그런 강제노역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있다.

일본이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는 것은 강제노동의 해악을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본은 이곳이 세계적 금광이었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사도시가 발행한 <재발견!! 걷고 듣고 지키자! 사도금은산>.
ⓒ 니가타현·사도시
 
니가타현 사도시가 발행한 <재발견!! 걷고 듣고 지키자! 사도금은산>은 이 광산을 사도금은산으로 지칭하면서 "1989년까지의 대략 400년간 사도금은산은 일본을 대표하는 광산이었다"고 평가한다. 홍보물로 내놓은 이 책의 표지 디자인만 봐도 일본이 사도광산을 부끄러워하는지 자랑스러워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자는 "1940년에는 사도금은산 역사에서 가장 많은 연간 1537킬로그램의 금을 생산했습니다"라며 자랑스러워한다. 한국인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바로 그 시기에 최대 생산량을 기록한 사실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주일대사의 문제적 발언들

그런 일본의 태도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태도다. 사도광산에서 자국민의 피해가 대규모로 일어났으므로,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게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해야 할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렇지만 윤 정부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2015년 7월에 유네스코가 강제징용 현장인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데서 나타나듯이, 이 문제에 관한 유네스코의 태도는 국제 표준에 미달하고 있다. 이런 유네스코의 표준을 끌어올리는 데 앞장서야 할 나라는 한국처럼 강제징용 피해를 입은 국가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꿔 호의적 태도를 비치고 있다. 극우 매체인 <산케이신문>이 지난 5월 11일 자 보도에서 윤 정권 출범 이후로 한국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며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을 정도다. 
 
 윤덕민 주일대사가 지난 2023년 3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교도통신>도 윤 대사가 지난 4월 4일 니가타현을 방문해 하나즈미 히데요 지사 등을 만나 "전체 역사를 표시할 수 있는 형태로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 일을 보도했다.

또한 윤 대사가 "절대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고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한 사실도 일본 언론들에 보도됐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반대 여론을 피하는 구체적 팁까지 일본에 알려줬다. 그가 (사도광산 강제징용과 관련한)"상세한 안내가 없다"며 "예전에 했던 일을 이어서 하면 된다"고 말한 일을 <니가타일보>가 전했다.

일본은 부산 남쪽인 규슈섬 서부인 군함도에서 자행된 강제노동의 실상이 부각되자, 국제 여론을 무마할 목적으로 도쿄 신주쿠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설치했다. 군함도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다가 군함도 강제노동을 알리는 시설을 세운 것이다.

일본은 이런 방식으로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했다. 그런 뒤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자료들을 이 시설에 전시해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 언론들은 윤 대사의 위 발언을 '군함도 사례를 참고하라'는 조언으로 이해했다. 군함도 방식으로 하면 한국 정부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윤 정부는 누구 편인가? 

이에 대해 주일한국대사관은 "조선인 강제징용자 추도비를 사도에도 만들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관련해 세워진 것은 그런 추도비가 아니라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이므로, 이 해명은 정직하지 않다. 사도광산에 대한 한국민들의 의지를 일본에 정확히 전달하지 않고, 어떻게든 일본의 편의를 봐주려는 윤 정부의 모습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덕민 대사는 사도광산의 이미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에도 나섰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계속 추진하고 한국민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던 때인 작년 11월 30일이었다. 니가타현 홈페이지는 이날 윤덕민 대사가 사도시와 그 맞은편인 니가타시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오전에 니가타시를 방문하고 오후에 사도섬으로 건너가 일본인 납치(납북) 피해자와 관계자들을 만난 윤 대사는 오전에는 "이런 조용한 주택가에서 납치가 일어난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이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함께 해결을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하고, 오후에는 "이 문제는 한일이 협력하면서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상처를 가진 일본인들을 위로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국대사가 사도광산이 있는 곳에 가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제기하고 대북 압박을 위한 한일 연대를 운운하는 것은 사도광산 문제에 대한 한국의 메시지를 혼란스럽게 할 여지가 충분하다. 사도광산의 이미지를 '일제에 의한 한국인 강제징용 현장'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피해 현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수도 있는 행보다.

주일대사의 태도는 사도광산 문제에 관한 한 양국 정부가 오십보백보의 차이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마저 이렇게 하고 있으니, 유네스코가 더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이번에 유네스코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거부하지 않고 자료 보충 등을 조건으로 보류 결정을 내린 데는 <산케이신문> 보도처럼 윤 정부의 우호적 태도도 한몫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제노동을 이유로 신장웨이우얼산 제품에 제재를 가하면서도 자국이 한국인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현장인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만들려는 태도는 누가 봐도 모순적이고 파렴치하다. 윤 정부는 일본의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기는커녕 음으로 양으로 일본을 돕고 있다. 윤덕민 대사가 주일'한국'대사가 맞는지, 윤석열 정부가 한국 정부가 맞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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