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영화 아닌 대하드라마... 엘리자베스 2세 삶의 모든 것
[김상목 기자]
▲ 영화 <퀸 엘리자베스> 포스터 이미지 |
ⓒ ㈜영화사 진진 |
현대 한국에서 군주제 부활은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공화정이 규정되어 있기도 할뿐더러, 당장 누구를 군주로 올릴 것인지 국론도 통일될 리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떠올릴 법하지만, 1910년 일제강점 이후 황실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순식간에 식어갔다. 대부분의 황실 인사들이 일제에 저항하기는커녕, 친일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국민에게 불신을 샀기 때문이다. 소수 존재하던 지지세력도 1919년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발언력이 소멸했다. 이후 현실 정치 차원에서 남이건 북이건 그 누구도 왕정복고를 진지하게 입에 담지 않는다.
물론 사실상의 전제군주라 할 3세계 장기집권 독재자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군주제가 유지된다 해도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현실정치에는 제한적인 영향력에 그치는 입헌군주정이 일반적이다. 그조차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임은 물론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날 가장 익숙한 '군주'라면 역시 2022년에 작고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세계 누구나 떠올릴 테다. 1952년에 즉위해 2022년까지 재위했으니 7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다. 대영제국의 상징이라 할 빅토리아 여왕보다 더 오랜 기간 집권했을 정도다. 워낙 장기간 군주로 머물다 보니 영국 내에선 군주라면 '왕 King'이 아니라 '여왕 Queen'을 떠올리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재위 기간이 워낙 장구하다 보니 여왕 통치 기간에 맞이한 총리가 무려 15명이며 그중 절반은 그가 즉위한 이후에 태어났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이 14명, 한국 대통령이 13명 바뀌었을 정도다.
하지만 여왕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군주의 부귀영화와는 퍽 다른 것이었다. 다사다난한 왕위 계승과정과 여러 개인적 비극을 겪어야 했고, 재위하는 동안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대영제국'은 몰락하고 그 잔해에 가까운 영연방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전쟁도 겪었고 경제위기도 경험했다.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적지 않은 사적 희생도 감수한 건 기본이다. 그렇게 영욕이 마치 지층처럼 퇴적되어 갔다. 그런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대하 드라마가 되었다. 여왕이 서거한 지 2년째에 그 다이제스트 판이라 할 기록영화 한 편이 도착한 건 예정된 일이라 봐도 무방할 테다.
▲ 영화 <퀸 엘리자베스> 스틸 이미지 |
ⓒ ㈜영화사 진진 |
영화는 여왕의 방대한 궤적을 90분이라는 딱 장편영화 평균 분량에 맞춰 20개의 항목으로 정리하듯 요약해 놓았다. 영화는 흔히 이런 부류의 인물 전기 다큐멘터리가 연대기적 해설로 풀어내는 것과는 동떨어진 구조로 진행된다. 즉 백과사전 키워드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음성해설과 자막 삽입을 최소화해 조석간만의 변화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눈앞의 이미지에 집중하도록 기획했다. 그 덕분에 '여왕 폐하의 신민'이 아닌 한국 관객들에겐 다소 난해할 수 있지만, 아마도 이 영화의 첫 번째 관객으로 고려되었을 게 분명한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향수를 품은) 충성스러운 영국인들의 기본상식과 문화적 체험 눈높이에는 딱 들어맞을 법하다.
<Beginners 초보자들>
영화가 시작되면, 시간을 초월해 즉위 초의 엘리자베스 2세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70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여왕의 변화된 모습이 타임머신에 탄 듯 순식간에 교차한다. 하나하나 집중하기 어려울 만큼 휙휙 바뀌기에 정신이 처음엔 하나도 없지만, 서서히 그렇게 장기간 축적된 여왕의 이미지가 덩어리처럼 보는 이의 뇌리에 새겨진다. 그 절정은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이 해는 여왕의 즉위 60주년 '주빌리'이기도 했다) 퍼포먼스를 위해 '제임스 본드'와 함께 궁전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올림픽 주경기장 상공에서 낙하산으로 뛰어내리는 장관이다. 군주의 존귀함과 대영제국의 잔향이 분출하는 자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The Queen's Speech 여왕의 연설>
뒤이어 즉위 초반과 후반의 연설 장면이 연달아 소개된다. 생물학적 연령대에 따라 억양이나 성량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아마 영국인들이라면 대번에 여왕의 음성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여왕은 자신의 일상이 노출되는 걸 개인적으로 내키진 않았지만, 변화된 시대상에 충실히 따라갔다. 라디오 연설에서 텔레비전 생중계에 적응했고, 나중에는 궁전에서의 사생활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하는 것 또한 허락했다. 그렇게 엘리자베스 2세는 '성실하고 헌신적인 군주'이자 '어머니', 그리고 그 어떤 '연예인'보다 더 유명세를 치르는 존재로 대중에게 군림하는 동시에 전시되는 운명에 순응한다.
<Ma'am 여왕님>
군주에게는 '의전'이 당연히 따른다. 온갖 궁중 예법이 여왕을 알현하는 데 적용되고 영국 왕실의 전통은 첩첩산중으로 잔뜩 축적되어 있기에 여왕조차 속박되지 않을 수 없다. 정교하게 짜인 식순이 의전 담당관에 의해 조율되고, 행사의 원활한 연습을 위해 대역 또한 여럿 존재한다. 외국의 국가원수는 물론, 쟁쟁한 귀족과 왕족들도 엄격한 서열에 따라 자리를 배정받고 예의범절에 따라 처신해야 한다. 왕실은 국가에 공헌한 이들에게 여왕이 직접 훈장을 수여하며 치하하는 전통을 유지하는데 1년분 훈장은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왕실 스스로 고풍스러운 용어 대신 대중에게 보다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주로 군인이나 정치인들에게 증정되던 작위 서훈과 훈장 수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그 상징적 사건은 1965년 비틀즈의 알현과 훈장 수여식이다. 잔뜩 차려입은 예복 차림이 당연해 보이던 접견실에 대중음악인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과거 제국의 식민지에서 속속 영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도 그 대열에 들어선다. 보수주의자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소수나마 남아 있던 아서 모슬리 부류의 파시스트 극우파들과 엘리자베스 2세가 참관한 공연에서 활약하는 자메이카 출신 흑인 예술가의 풍경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Citizens of Rome 로마 시민들>
대영제국은 유럽 최초의 제국이라 할 로마제국과 항상 비교하곤 했다. 스스로 '로마 시민들'이라 칭할 만큼 친근하게 여겼을 정도다. 하지만 제국은 이미 황혼을 맞이했고 선조들의 영광은 빛이 바랜 지 오래였다. 젊은 시절에 런던을 관통하는 템즈 강변을 순시하면서 영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관통하던 상징이 어느덧 돈벌이 유람선으로 채워진 지저분한 도시하천이 되었음을 깨달은 여왕은 묵묵히 제국의 흔적을 사수하려 애쓴다.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위세는 퇴색했지만, 그 소프트파워와 네트워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 있었다.
중간에 까마득한 선조로 해가 저물지 않는 제국의 기초를 다졌던 엘리자베스 1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장면이 삽입되고, 여왕이 집권 기간 내내 순회했던 영연방 30여 개국의 여정이 소개된다. 여왕은 영연방의 상징적 통합력 그 자체로 묘사된다. 싱가포르나 자메이카의 총리들이 등장해 자신들의 세대가 정치적 독립은 이뤘지만 오랜 대영제국의 원심력 안에 놓여 있음을 술회한다.
<Close-Up 클로즈업>
그렇게 개인을 아득히 초월해 오대양 육대주를 아우르는 제국의 잔해를 관장하는 여왕의 상징성은 마치 팝스타처럼 강렬한 빛을 발한다. 그런 엘리자베스 2세의 존재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이집트의 찬란한 고대문명을 표상하는 '스핑크스'에 비유된다. 존귀한 군주라 할지라도 현대 대중문화의 경향을 벗어날 수 없다. 여왕은 유명인의 최종단계라 할, 존재 자체로 이미지의 홍수와 범람에 도달한다. 궁전 바깥에는 여왕과 왕실의 열혈 팬들이 언제나 가득하다. 이들은 세계 곳곳에서 성지에 순례하듯 런던에 도착해 여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진에 담길 소망한다. 이들 '로열 와쳐'와의 인터뷰와 훌리건 뺨치는 극렬한 행각도 놀랍지만, 실제로 여왕을 대면한 이들의 반응이 더 흥미롭다.
막상 여왕을 눈앞에 마주한 이들은 존엄한 군주에게서 후광이 비친다며 앞다투어 '간증'한다. 처음엔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며 뻗대던 이들조차 여왕이 등장하면 저절로 절을 하게 된다며 신기해한다. 미리 문구를 준비해봐야 막상 닥치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며 울상을 짓는다. 물론 그들만 난감한 건 아니다. 상대편에 선 여왕도 잔뜩 고심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난 순간도 의도하지 않게 자주 생기게 마련이다. "최선을 다한다고 늘 최선의 행동이 나오지는 않아요"라며 화면 가득히 여왕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거나 인사하러 나온 아이들의 실수 장면이 웃음 가득 소개된다. 관객들도 아마 실제 경험했다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At Home 집에서>
왕실은 연례 행사로 궁성을 개방해 가든파티를 연다. 규모가 클 때는 손님만 7천 명에 가깝다. 비가 와도 사람들은 그 귀중한 기회를 포기하지 않는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초대장을 품에 간직한 채 여왕을 알현할 기대에 부풀어 방문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그 잊을 수 없는 경험담을 두근거리며 회상한다. 여왕과 태어난 해와 날짜까지 똑같은 여성, 서로 자기 기억이 맞다 틀리다 하며 툭탁거리는 노부부 등 레퍼토리가 잔뜩이다. 그런 연속된 에피소드 가운데 궁전과 별장, 사저들이 속속 소개된다. 난생처음 왕실 궁성을 구경한 폴란드 대통령 바웬사의 놀라워하는 표정을 왕족들은 이야깃거리로 삼는다.
<In the Saddle 안장에 올라>
여왕은 능숙한 기수이자 승마 애호가였고, 경마 승부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의 개인적인 승마 장면이 한참 동안 별다른 설명 없이 말 그대로 운동 이미지만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단련된 승마술로 여왕은 왕실근위대 기마행렬을 지휘하기도 한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회상하듯 <경기병대의 돌격> 장면이 삽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군기분열식 행진 중 암살시도를 겪기도 했다.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려는 왕실의 도전은 종종 위험에 노출되지만, 국민과의 결속을 굳게 다지는 계기로도 활용된다. 모친과 마상 경주를 관람하고, 서민들의 음식을 시식하기도 한다. 군주의 존엄과 대중과의 결합을 절충하는 데에 세심한 노력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 영화 <퀸 엘리자베스> 스틸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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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기념행사>
1977년, 영국이 경제위기와 실업난에 허덕이던 시절, 즉위 25주년 '주빌리' 기념행사가 거행된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축하 준비를 하는 한쪽에선 군주제에 반대하고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등장한다. 현대 영국은 과거의 영광만 추억하며 살 수 없는 것이다.
<A Ticklish Sort of Job 신중을 요하는 일>
엘리자베스 2세는 쇠락해가는 영국의 산업과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여왕은 수시로 산업현장 시찰과 경제 분야 점검에 친히 나선다. 어느 산업공단 왕실 방문 행사에 여왕이 친히 왕림한다. 전자레인지를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에선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이 여왕을 맞이한다. 유니언잭과 태극기가 함께 펄럭이며 경제협력을 당부한다.
<At Sea 바닷가에서>
하지만 여전한 영국의 경제위기 때문에 왕실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솔선수범해야 한다. 젊은 시절 즉위 초반에 세계를 누비며 군주로서 활약하는데 파발마 노릇을 한 왕실 요트 브리타니아호 운행도 재정지원 중단으로 더 지속할 수 없다. 43년 만에 브리타니아호는 퇴역을 맞이한다. 여왕으로선 영연방 순회 때 태평양을 횡단하는 항해를 치르며 즐거운 추억이 가득하기에 착잡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영화엔 언급되지 않지만. 여왕은 노후에 내각에 압력을 넣어 새 왕실 요트를 마련하려 시도했다)
<Dream Come True 꿈은 이루어진다>
그렇게 옹색한 처지로 영락한 왕실이지만, 굶어도 이빨은 쑤셔야 하는 것처럼 겉으로 여왕은 그 어떤 대중연예인보다 더 동경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폴 매카트니는 자신보다 10살 정도 연상이던 엘리자베스 2세를 사춘기 시절, 마치 동네 누나 짝사랑하듯 사모했다며 회상한다. 자기들 또래는 다 그랬을 거라며. 여왕은 (동갑인) 마릴린 먼로는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오드리 헵번과도 만난다. 공주풍의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 2세는 시대의 아이콘이던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아니 궁극의 존재로 경외를 한몸에 받는다.
<Love Story 러브 스토리>
여왕이 평생 해로한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 공과 약혼부터 노년까지가 조명된다. 영화에선 따로 소개되지 않지만 둘의 결혼까지는 반대도 적지 않았고 마음고생이 상당했다. 필립 공은 아내를 성실하게 내조했고, 여왕은 모든 연설의 시작을 '남편과 저는...'으로 통일할 정도로 둘의 관계는 양호했다.
▲ 영화 <퀸 엘리자베스> 스틸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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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y is the Head 왕관의 무게>
<킹스 스피치>의 실제 주인공이던 부왕 조지 6세가 원치 않았던 즉위와 2차 세계대전 기간의 과로로 이른 죽음을 맞이하는 바람에, 여왕은 불과 25세 나이에 부왕을 대신해 해외 순방 중 부고를 접하고 1952년 2월에 즉위하게 된다. 그리고 1년 후인 1953년 6월 2일 대관식을 치른다. 영국이 유엔군으로 참전한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제국의 남은 조각을 지키려는 부질없는 노력 탓에 사방에서 국지전이 벌어지던 참이다. 한편으로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는 등 경사도 있었다. 게다가 쇠락해가는 제국에서 최전성기의 상징이던 선대 여왕들(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의 뒤를 잇는 여왕의 즉위는 기대감을 가득 불러오는 국가적 행사이기도 했다. 화면에는 여왕을 보겠다며 궁전 앞에 가득 모인 군중과 꿀벌이 교차로 등장한다. 이 대관식은 영국 역사상 최초로 텔레비전 중계된 대관식이기도 하다.
<Mummy 어머니로서>
그렇게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과 영연방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 70년간 공무를 수행하게 된다. 여왕은 매주 총리와 면담하며 국정을 조언한다. 중반이 넘어서자 노련한 정치인들보다 더 장구한 정치경력의 소유자가 되는 바람에 신임 총리들이 전전긍긍하는 풍경도 목격된다. 여왕의 치세 이후 태어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이 익살스럽게 추억을 전한다. 여왕이 처음 상대한 총리는 윈스턴 처칠이었고 화면에는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보리스 존슨 등 쟁쟁한 역대 총리들이 줄줄이 등장해 군주에게 예를 바치며 보고에 임한다.
외국 국가원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조지 부시 주니어는 실수를 정정해주는 여왕 앞에서 '어머니가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을 받았다며 너스레를 부린다. 그 누가 세계 최강국 대통령에게 그 말은 틀렸다고 바로 앞에서 지적할 수 있을까. 아들인 찰스 왕세자 역시 이 '국민의 어머니(할머니)'에게 특별한 존경을 표한다. 여왕은 거친 남성 정치가들의 세계에서 특별한 '최고 존엄'으로 독특한 광채를 발한다. 그런 여왕의 풍모에 비견되는 이미지들이 곧이어 등장한다. 성모마리아, 풍요의 비너스, 스타트렉 속 외계인 여왕들이다. 그리고 앞선 신화 속 존재들처럼 궁전의 고풍스러운 복도를 여왕이 천천히 걸어오는 장면은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다.
<Down on My Knees 무릎을 꿇고>
그렇게 당대 시간성을 초월한 존귀한 군주로서 여왕은 평생에 걸쳐 세계를 순방한다. 대영제국과 영연방의 통합력을 보증하는 존재로서 여왕은 30여 개국에 달하는 소속 국가를 누비며 다양한 이들과 접촉한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한다.
<Don't Let's be Beastly to the Germans 독일인들에게 독하게 굴지 말라>
여왕 본인도 2차 세계대전에 여군 장교로 복무했고, 왕실은 피난을 떠나라는 내각의 요청에도 런던에 남아 폭격을 견뎌냈다. 실제로 참전용사인 여왕은 자신에게도 생생한 체험인 2차 세계대전 배경 영화촬영장을 방문하며 암울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여왕을 비롯해 전쟁 당시 여성들의 국방참여 기록영상이 이어진다.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주'라 말하는 솔선수범은 군주제가 국민에게 동의를 얻는 핵심 중 하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외교와 친선 복원도 여왕의 책무가 된다. 전후 화해차 독일을 방문한 여왕이 드레스덴에 당도했을 때 무수한 시위대가 집결해 달걀을 던지며 엘리자베스 2세를 맞이한다. 1945년 2월 있었던 드레스덴 공습에 대한 항의다. 그런 원한의 치유 역시 여왕이 상징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유럽과 떨어질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영화 <퀸 엘리자베스> 스틸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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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ribilis 재앙>
그렇게 한몸 바쳐 군주로서 역할에 매진하지만 가정 문제로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자녀들은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 힘들었던 결혼과 별거, 이혼을 거듭해 어머니인 여왕의 속을 바짝 긁는다. 1992년에는 심지어 왕조의 이름이 된 윈저성에 대화재가 발생하고 만다. 복구 과정에 들어간 거액의 예산 때문에 국민감정이 왕실에 극도로 부정적으로 변한다. (결국에 왕실은 납세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으로 돌파한다. 즉 왕실은 지금도 세금을 내고 있다!) 여왕은 1992년을 회상하며 '재앙'이라 표현한다.
황색언론은 왕실의 스캔들을 포착하는 데 혈안이 되어간다. 연달아 가십이 폭로되고, 이런 타블로이드지와 왕실의 이해관계 유착 의혹도 터진다. 여왕은 지친 나머지 왕실을 향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감시와 함께 이해심과 유머 감각을 가져주길 호소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다이애나 스펜서가 사망한 후 왕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폭발하고 급기야 군주제 부정론이 팽배한다. 이 시기의 심각한 상황은 러시아 혁명 이후 로마노프 황실 처형을 묘사한 영화 장면 삽입으로 절정에 이른다. 결국엔 엘리자베스 2세는 국민의 정서에 따르는 태도를 보여 예전 며느리의 추모행렬에 동참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Time Passes 시간은 흐르고>
이제 여왕도 황혼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건재한 여왕은 별장의 정원을 산책하며 나무와 조형물을 확인한다. 담당관과 함께 거닐던 중 하필 그늘에 놓인 해시계를 발견하고 담소를 나눈다. 시간을 측정하고 싶다면 위치를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굳이 이동할 것 같진 않다. 이미 여왕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Beginnings 시작>
그렇게 시간은 최초로 돌아간다. 원래 왕족이긴 해도 왕위계승 서열과는 거리가 제법 멀었던 어릴 적, 갑자기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별세하면서 1년 만에 3명의 왕을 맞는 격동을 회고한다. 그렇게 빅토리아 여왕에서 (할아버지) 조지 5세,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를 거쳐 둘째 왕자였던 (아버지) 조지 6세가 즉위하자 꼬마 숙녀는 졸지에 왕위계승자 1순위가 되었다. 조숙했던 공주는 '피터팬'을 좋아했지만, 자신은 어른이 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왕의 장례식을 치르며 견습 기간 없이 국왕이 되어버렸으니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며 각오를 다진다. 그렇게 70년이 흐른다.
<Goodnight 작별인사>
이제 마지막 조각에 마침내 도달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존경과 유머를 담아 자작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여왕 폐하'라는 짧은 노래는 앞에서 폴 매카트니가 10대 소년들의 '워너비'라던 여왕에게 바치는 짓궂은 연모의 가사로 수놓아진다. 그리고 이어서 영국의 국가라 할 'God Save the Queen(King)' 다양한 버전이 흘러나오며 종막으로 향한다. 마치 거대한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듯.
▲ 영화 <퀸 엘리자베스> 스틸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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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 힐> 등의 명작을 남긴 감독 로저 미첼이 이 묵직한 작업을 진두지휘했지만, 아이러니하게 여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유작이 되고 말았다. 96세까지 장수한 엘리자베스 2세이기에 또래는 물론 아랫세대에서도 먼저 세상을 떠난 이가 적지 않다. 그래서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가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소서'라는 농담이 횡행할 지경이다.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민' 자세로 작업한 덕분에 <퀸 엘리자베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영국 국민에게 엘리자베스 2세가 어떤 존재인지 새삼 체감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도 종종 확인되는 것처럼 군주제 폐지론도 여전히 영국 내에 상당한 세를 갖고 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이 별세한 후 즉위한 아들 찰스 3세가 선대 군주에 비하면 현저히 인기와 지지도가 뒤처지는 바람에 어쩌면 21세기에 영국 왕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심심찮다. 그만큼 엘리자베스 2세가 한평생 영국을 떠받치며 국가를 지탱하는 데 얼마나 헌신하고 노력했는지, 그런 여왕에게 국민이 어떤 감정을 갖는지 알게 해주는 기록영화다.
영화는 지난 수십 년간 여왕과 함께 세월을 보낸 영국 사회의 집단기억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영국인이 보면 마치 우리의 '응답하라! 0000' 시리즈의 궁극적 버전처럼 보일 법하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동북아 국가의 관객이라면 여왕의 생애와 현대 영국 왕실의 위치를 약간 이해하면 더 쏙쏙 머릿속에 들어올 법하다. 영국 왕실 최대 위기라 할 다이애나 스펜서 사망 당시 추모 논쟁에 대해선 주연배우 헬렌 미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더 퀸> 영화가 예습 자료가 될 테다. 그리고 <퀸 엘리자베스>에서 그야말로 휙휙 광속으로 지나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생을 좀 더 정돈된 서사로 확인하고 싶다면 넷플릭스에서 여섯 시즌에 걸쳐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 시리즈가 제대로 복습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여전히 세계구급 강대국 영국과 영연방의 군주로 70년을 재위하고 96년의 삶을 보낸, 영국인들에겐 '여왕' 그 자체라 할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해 온전히 소화하려면 그 정도는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영국의 군주제가 21세기에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이 문제는 극명하게 쟁점이 된다. 영국을 대표하는 록그룹 '퀸'은 자신들의 공연마다 앵콜을 외치는 관중이 국가 'God Save the Queen'을 부르는 바람에 아예 피날레 곡으로 편곡한 국가를 연주하는 전통을 만들고 앨범에도 수록했다.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그 앨범이다. 물론 왕실과 여왕에 대한 경의를 담아서다. 하지만 불과 2년 후, 여왕 즉위 25주년에 펑크록의 전설적 밴드인 섹스 피스톨즈는 군주제에 대한 야유를 담아 국가를 3코드 펑크로 편곡한 버전을 세상에 선보인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적 후예라 할 또 다른 영국의 국민밴드, '더 스미스'는 1986년에 그들의 대표곡이 될 'The Queen is Dead'를 내놓고 만다. 여기에서 영국 여왕은 파시스트와 권위주의 체제의 껍데기 상징일 뿐이다.
<작품정보> |
퀸 엘리자베스 Elizabeth: A Portrait in Part(s) 2024│영국│다큐멘터리 2024.06.12. 개봉│90분│전체관람가 감독 로저 미첼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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