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유배당한 그를 보며 삶의 자세를 배운다
[이준구 기자]
마을에 차를 대고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산기슭에 자리한 고택에 이르기 위해선 곧게 뻗은 대나무 군락과 오랜 세월을 버티느라 뿌리를 드러낸 나무숲 언덕을 올라야 한다. 숨이 조금 가빠 올 무렵 맞이한 다산초당(茶山草堂).
▲ 정약용 초상화 다산초당의 정약용 초상화 |
ⓒ 이준구 |
학문적 스승이며 총명한 군주였던 정조대왕의 집권이 종료되면서, 천주교를 구실 삼아 정약용이 내쳐진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지 모른다.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난 집안은 뿔뿔이 귀양살이와 죽임을 당하는데 그런 역경 속에서 어찌 이십여 년 가까운 인고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초당에 있는 그의 초상화가 더욱 친근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데에는 안경이 한몫을 한다. 시력이 점점 떨어져서 글을 읽고 책을 저술하기 힘들었을 때 신문물을 적극 수용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학자의 면모가, 오늘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물론 그의 이전 초상화를 다시 재해석해서 현대적으로 그려낸 것이라 세련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앙의 다산초당 양 옆으로는 제자들이 묵었던 서암(西庵)과 다산이 기거했던 동암(東庵)이 있는데, 유배 중에도 학문을 가르치며 사람을 만나고 의욕적인 저술활동을 하면서 학자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했다. 초당과 동암 사이에 자그마한 연못을 만들었는데 이는 양수리 두물머리부근 생가를 떠올리며 늘 물 흐르는 소리를 그리워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천일각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천일각 |
ⓒ 이준구 |
동백나무 숲을 지나는 상큼한 향기에 바다 바람이 불어오면 다산은 한층 상쾌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숲을 벗어나면 탁 트인 구릉이 나오고 이 높은 곳에선 자생하는 차밭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차가 많이 자라는 다산(茶山)의 유래다. 바다와 차밭 사이로 동백나무가 어우러진 이 언덕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고찰로 향한다.
▲ 백련사 백련사 경내 |
ⓒ 이준구 |
한편,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 것은 불행 중 다행, 아니 어쩌면 '천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귀양은 맞지만 '위리안치(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같이, 거주지에 울타리를 쳐서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도록 심하게 다루지 않았다.
당시엔 어느 정도 눈치껏 편리를 보아주는 것이 상례였다. 더구나 정약용의 어머니 해남 윤씨의 고향은 강진에서 지척이다. 종가인 녹우당은 공재 윤두서와 윤선도를 길러낸 집안이라, 다산이 가장 아쉬울 수 있는 수많은 책과 문화적 자산을 맘껏 빌려다 볼 수 있었다. 그로서는 외가가 지척이었던 것이다.
자연히 윤씨 집안에선 후손들 학업을 위해 자손들을 다산초당으로 보내어 배우게 했다. 다산이 해남의 외가에서만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말년에 저술과 교육에 몰두할 수 있도록 다산초당을 지어준 사람들은 강진 귤동의 해남윤씨들이었다. 나중에 자신의 외동딸을 시집보내 다산과 사돈을 맺은 집안도 강진 목리의 해남윤씨 가문이었다.
강진과 다산초당 일대를 돌아보면서, 40세에서 57세에 이르기까지 18년이라는 절망을 보물 같은 명저의 집필로 승화해 낸 인간 정약용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늘도 그의 곧은 선비정신을 높이 평가해서였는지 유배에서 돌아와 여유당에서 20여 년을 더 살며 학문을 집대성할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후대의 큰 스승이며 대학자이고 실천적 실학자이며 좌우의 틀에 매이지 않았던 사상가. 무엇보다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고 애틋해하는 한 가정의 아비로서의 절절하고 따스한 모습이 내게 깊은 울림으로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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