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식 2천원, 찌개 3천원... 그들이 청년을 응원하는 방법

김성호 2024. 6. 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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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바로여기 3] 전주를 더 아름답게 하는 곳, '청년식탁 사잇길'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성호 기자]

"맛 비결이요? 마이 하트, 마이 하트지 뭐"

인공지능(AI)이며 증강현실(AR)이며 블록체인과 로봇까지, 온갖 새로운 것들이 밀어닥치는 시대다. 새로운 것들의 범람 가운데서 모든 게 수치며 이윤으로 계량되는 세상, 물결 랑(浪)에 흩어질 만(漫)을 붙여 흩어지는 물결에서도 낭만적 아름다움을 찾던 지난 시대의 미덕을 더는 주변에서 찾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수시로 고개를 치켜든다.

그러나 주변을 잘 돌아보면 여전히 옛 것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옛 것이 그저 옛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마땅히 오늘도 살아남아야 할 좋은 것이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영혼과 마음이 위태로운 시대에도 음식맛의 비결을 '마이 하트'라 답하는 주방장이 있는 식당이 우리 곁에 아직은 남아 있는 것이다.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에 있는 '청년식탁 사잇길'이 꼭 그런 곳이다. 전북대학교 코앞에서 학생과 청년들, 또 전주 시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는 이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하고난 뒤, 나는 반드시 이곳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는 전해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건 이 식당이 저렴한 밥을 팔기 때문이 아니다. 또 다른 어느 가게에 비해 특별히 맛있는 식사가 제공되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곳에 이 시대 실종된 어느 귀한 것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식으로 표현한다면, 세상의 어느 좋은 것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어야 한다. 유리집에다 넣어 그냥 그대로 간직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단 걸 어떤 이들은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좋은 것을 그저 누릴 뿐 아니라, 기르고 퍼뜨리려 애쓴다. 모르긴 몰라도 청년식탁 사잇길에 여러 사람들의 '하트'가 흐르는 것이 그래서이고, 내가 굳이 이 글을 쓰는 것 또한 그래서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 청년식탁 사잇길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다며 인터뷰에 적극 응한 청년식탁 사잇길 일꾼들. 왼쪽부터 고현빈, 이서하, 박우성 씨.
ⓒ 김성호
 
매년 5월 즈음, 영화제를 위해 찾는 전주다. 벌써 10년이 넘은 방문이지만 올해는 꽤나 특별했던 것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난 10여 년간 영화의 거리 인근과 숙소주변만을 오가면서도 내가 전주를 다녀왔다고 말한 것이 얼마나 비좁은 생각인지를 비로소 알았다.

전주에 사는 이들과 만나고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둘러보며 이제야 전주를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전주가 당면한 위기, 곧 인구와 일자리의 감소, 낙후되는 공간, 유출되는 청년, 무너지는 경쟁력 등을 실감하였다. 또 전주가 가진 가능성들, 움직거리는 재주들과 나눠지는 마음들, 그것이 불러온 여러 좋은 것들과도 만나게 되었다.

청년식탁 사잇길을 찾은 것도 덕분이었다. 맛의 도시라 불리는 전주에서 이 식당을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아침엔 토스트며 간단한 국과 밥을, 점심과 저녁엔 김치찌개를 파는 이 가게가 무엇이 특별해서 그리 많이들 찾는가. 가만히 보았더니 가격대부터가 남달랐다. 돈육 김치찌개 1인분이 고작 3000원, 대식가처럼 이것저것 추가한대도 고작 몇 천 원이 오를 뿐인 저렴한 가격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싼 거지? 맛이 없는가요? 그런 물음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세차게 양 손을 저어 보인다. 절대 그런 가게가 아니라고, 일단 가서 한 술 떠보기부터 하라고 말이다.

일정이 빡빡하여 아침 댓바람부터 찾은 길이다. 식당은 전북대 맞은 편, 어느 상가건물 이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갈한 찬 몇 가지에 밥과 국, 그리고 직접 해먹는 계란후라이까지가 아침에 준비된 메뉴였다. 원한다면 토스트에 치즈를 넣어 먹을 수도 있는 것이고. 이 식사가 고작 2000원, 보다 본격적인 메뉴는 3000원에 판매되는 점심과 저녁의 김치찌개라고 했다. 건더기가 많이 든 국과 찬을 먹는 것으로도 꽤나 간편하고 즐거운 식사가 되었는데 이토록 저렴하기까지 하다니.
 
▲ 청년식탁 사잇길 사잇길에서의 내 첫 청년식탁
ⓒ 김성호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뜨거운 하트

문득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꼭 20년 전, 내가 갓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었을 때 이야기다. 용돈 한 푼도 받지 않고 대학교를 다녀야 했던 내 주머니 사정은 온갖 아르바이트에도 여유로울 때가 없었다. 책값이며 이런저런 모임 회비, 교통비까지를 내고 나면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이 고작 몇 천원에 불과했다. 그러니 식사는 언제나 가장 싼 것이 되고 말았다.

당시 학교 식당에서 가장 싼 메뉴는 1800원 짜리 국밥이었다. 내겐 이 국밥이 주식과도 같았는데,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을 사 먹는 것과 얼마 차이 없는 가격에 그럴듯한 국밥 한 그릇이 나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밥을 퍼주는 식당 아주머니께선 다른 비싼 메뉴를 찾는 아이들보다 이 국밥을 먹는 애들에게, 특히 나처럼 매일 그 메뉴를 찾는 애들에게 밥과 반찬을 몰래 더 담아주곤 하였다.

아주머니의 아들이 나와 또래라고,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시간이 이십년의 시차를 두고 불쑥 떠오른 건 왜일까. 그 아주머니에게도, 그 아주머니가 내준 음식들에도 틀림없이 '하트',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청년식탁 사잇길은 지난해 3월 전북대 신정문 맞은편 건물에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천주교 전주교구가 이 시대 어려운 청년들을 보듬는 마음으로 시작해 2년 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통상 청년이라 하면 푸르고 열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마련, 그러나 그 상이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단 걸 이들은 알았던 것이다. 오늘의 고난 또한 내일의 자산이 되리라고 청년들의 고통을 당연시하는 태도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해가 이들에겐 있었다.
 
▲ 청년식탁 사잇길 카페에 놓인 각종 청. 성당 신자들이 청년을 위해 만들어 후원한다고 한다.
ⓒ 김성호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던 장발장을 선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 이미 훔쳐간 은식기에 더해 은촛대까지 안겨준 미리엘 주교가 아니었던가. 우리 가운데 못한 처지에 놓인 이의 마음을, 그가 처해 있는 상황과 걸어온 길까지를 이해하고 안쓰러워하는 마음만이 인간을 악으로부터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굳게 믿고 있는 일이다.

취업률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세상이다. 누구도 다른 누구를 돌보려 들지 않는 무한경쟁의 풍속도에서 공동체는 파괴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간신히 오늘을 붙들고 있는 청춘들은 대체 얼마만큼 많은가. 기본적인 생계마저 꾸려가기 벅찬, 낙오하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하는, 그러나 조금씩 소모되어 가는 청년들이 말이다.

김회인 신부가 대표를 맡고 있다는 청년식탁 사잇길엔 매일 이곳의 운영정책과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청년과 이 땅의 소진되어가는 모든 영혼들을 위한 식탁을 차린다. 내가 찾은 어느날 아침엔 모두 세 명이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홀매니저 박우성, 공익근무 중 휴일을 받아 자원봉사를 하러 온 고현빈, 1년 째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이서하가 그들이다.

천주교 사역담당이던 김회인 신부와 쉼터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는 고씨는 "지급된 쿠폰을 받아서 가게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너무나 좋았다"며 "공익으로 근무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를 와서 손을 보태야 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사람 사는 느낌이 나는 곳"이라고 웃어보였다.
 
▲ 청년식탁 사잇길 이 땅의 소외된 청년들을 위해 청년식탁 사잇길을 열었다는 김회인 신부
ⓒ 김성호
 
청년과 지역사회 잇는 창구 되기를

홀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우성씨는 청년식탁 사잇길이 단순한 식당을 넘어 사회적 활동으로 가치가 크다고 강조한다. 박씨는 "천주교 전주교구에서 시작해 종교적 배경이 있고, 신자분들께서 식당 옆에 있는 무료카페에 쓰도록 과일청을 담가주기도 해서 운영이 되고 있다"면서도 "종교를 넘어 청년과 지역주민들이 결합하는 비영리 창구로써 쓰임이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주방을 맡아 일하고 있는 이서하씨는 싼 가격을 넘어 맛으로 주목받을 가치가 있는 식당이라고 자부심을 내보였다. 이씨는 "얼마나 힘들게 레시피를 만들고, 제일 좋은 재료를 챙겨서 육수를 뽑고, 건강하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지 모른다"며 "사람들이 와서 맛있게 드시고 가는 모습을 보게될 때마다 기쁘고 보람찬 마음이 든다"고 강조했다.

식당이 영업을 시작한 지는 고작 1년이지만, 이들의 마음이 이처럼 뜨거우니 그 소문이 날개를 달고 멀리까지 닿고 있다. 내게 이 식당을 소개한 이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는 이 식당의 방침과 실천에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전라북도 일대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모임인 전북영화문화방 소속 정경준씨가 바로 그다.

정씨는 "편의점 도시락도 5000원이 넘어가고, 햄버거 세트도 7000원 씩 하는 고물가 상황에서 어설프게 끼니를 해결하는 청년들에게 영양가 있는 식사를 제공해주시는 점이 굉장히 존경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더 널리 알려져 사회의 도움과 기부가 많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청년식탁 사잇길 값이 쌀 뿐 아니라 다양한 선호를 고려해 비건 메뉴까지 갖춘 품격 있는 식당이 바로 청년식탁 사잇길이다.
ⓒ 김성호
 
인터뷰가 한창일 때 청년식탁의 모든 메뉴를 개발하고 관장한다는 최은숙 실장이 가게에 들어섰다. 맛의 비결을 묻자 "마이 하트야 마이 하트"하고 호탕하게 웃어보이던 그녀가 비건메뉴에 대해 묻자 돌연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최씨는 "김치는 후원도 받고 찌개재료도 일반분들도 후원을 해주시고 하는데, 비건 만큼은 모든 재료가 100% 사잇길에서 손으로 만들어 공이 많이 들어간다"며 "보면 날씬하고 호리호리하신 분들이 와서 그 메뉴를 찾으신다"고 활짝 웃어보였다.

이처럼 세심한 배려와 애정, 응원 가운데서 운영되는 식당이 청년식탁 사잇길이다. 돈육과 참치, 두부, 비건 등 모든 메뉴가 국산으로 차려지며 양 또한 적지 않아 청년들이 부담없이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바로 옆 카페공간에선 무료 커피 한잔에 공간을 이용할 수 있으니 청년들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고작 3000원 식비로 이 모두를 유지하고 전주시 곳곳까지 사업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선 후원의 손길도 절실할 밖에 없다.

대학시절 거의 일천그릇 쯤은 비웠던 1800원 짜리 국밥은 내게 비루함이나 가난함의 상징으로 남지 않았다. 어느 아주머니의 호의와 그 안에 담긴 정성을 매 식사 때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국밥을 나의 소울푸드로 여긴다. 오늘 전주의 누군가에겐 사잇길 김치찌개 또한 그와 같이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 중요한 건 하트와 하트, 마음의 마주닿음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란 것을 나는 익히 겪었던 것이다.

부디 이 글 안에 담긴 하트가 읽는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 청년식탁 사잇길 로고
ⓒ 청년식탁 사잇길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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