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수형: 멘토링 넘어 투자까지…직접 스타트업 경영 나선 CEO도
멘토링을 넘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전직 CEO도 많다.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하는가 하면 아예 스타트업 대표로 자리를 옮겨 경영에 뛰어든 이들도 적잖다.
‘판사 출신 경영인’으로 유명한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가 여기 속한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네이버 대표직을 수행하며 네이버 전성기를 이끌어낸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김 전 대표는 활발한 멘토링은 물론 개인 투자자로도 맹활약 중이다. 퇴직 후 7년 동안 30여개 회사에 직접 투자했다. 이뿐 아니다. 프라이머, 끌림벤처스, 패스트벤처스 등 국내외 초기 액셀러레이터와 VC 펀드를 통해 간접 투자 중인 스타트업 개수를 포함하면 100개가 넘는 스타트업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김 전 대표는 “네이버 대표 시절 스타트업 영역 침범 이슈로 스타트업 대표들과 수없이 면담하면서 대기업은 할 수 없는 스타트업만의 혁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며 “이후 스타트업 혁신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멘토링과 직접 투자에 나섰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엔젤투자협회장으로 활동 중인 고영하 전 SK브로드밴드미디어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초 IPTV인 셀런TV를 창업한 벤처 창업 1세대로 ‘한국 스타트업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국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있는 ‘팁스(TIPS)’의 운영사 선정을 총괄하는 역할도 도맡는다. 고 회장이 직접 투자한 기업은 약 70개. 현재까지 멘토링한 스타트업은 200여개사다.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를 차린 전문 CEO도 적잖다. 다음커뮤니케이션 공동 창업자인 이택경 전 다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매쉬업벤처스를 설립했다. 투자사 설립 이후 오늘의집, 마이리얼트립, 스타일쉐어, 캐시워크 등 170개 이상 스타트업 초기 투자를 진행했다. 이 대표가 멘토로 직접 나서 스타트업을 돕고 있는 덕에 매쉬업벤처스는 스타트업이 가장 투자받고 싶어 하는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로 꼽힌다.
현직 CEO 중에서도 스타트업 투자에 관심이 많은 이가 많다. 송병준 컴투스 의장 겸 글로벌전략책임자(GSO)와 그 동생인 송재준 컴투스 글로벌최고투자 책임자(GCIO)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큰손’으로 꼽힌다. 송재준 GCIO는 ‘크릿벤처스’라는 VC를 설립하고 스타트업 초기 투자에 직접 나서고 있다.
전직 CEO 출신으로 스타트업 경영에 직접 뛰어든 이들도 있다. 김동현 전 코웨이 대표는 공유 킥보드 스타트업 ‘씽씽’에 초기 투자금을 넣고, 부대표로 들어왔다. 김 전 대표는 “그동안 쌓았던 경험과 노하우를 스타트업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스타트업으로 옮기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이 새롭게 배우고 있다”는 감상을 들려줬다. 이희성 전 인텔코리아 대표 역시 로봇 제작 중소기업인 현성 대표로 다시금 경영 일선에 뛰어든 케이스다. 이 대표는 “인텔 같은 다국적 기업 경영과 벤처 기업은 환경이 판이하다”며 “가장 중요한 건 창업 자금 고갈을 넘어설 수 있는 추가 펀딩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직 CEO가 전하는 ‘조언 한마디’
구성원 간 진솔한 소통이 ‘1순위’
선배 기업가 말 한마디가 후배 창업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 매경이코노미는 다수 스타트업 멘토링 경험이 있는 전직 CEO들에게 직접 물어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 한마디’를 들어봤다.
후배 스타트업 대표가 마주한 고민은 각양각색이다. 흔히 사업 단계별로 고민이 나뉘는 경향이 있다. 이영민 교수는 “창업 극초기 스타트업은 내외부 계약 문제와 정부 지원 자금 조달 등에 관련한 조언을 필요로 한다. 어느 정도 사업이 진행되면 개별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는 각각 이슈와 관련된 전문가를 연결해 도움을 받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이 부쩍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성장’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업계 분위기가 최근 많이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고영하 회장은 “해외로 눈을 돌릴 것”을 강조한다. 더 넓은 시장에 진출해야 더 많은 수익원이 확보된다는 것. 그는 “국내 스타트업은 유독 좁은 국내 시장에 매몰돼 있다. 가능하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며 “특히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한다면 아시아를 넘어 미국이나 유럽 시장 실정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훈 교수는 “플랫폼으로 확장”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메이저맵이라는 에듀테크 스타트업 멘토링 사례가 떠오른다”며 “기존에는 단순한 대학 학과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이후 대학 학과와 고등학생을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으로 거듭났다. 이를 통해 시리즈A 투자를 성공시켰다”고 말했다.
‘인사 관리’ 또한 주요 고민 중 하나다. 전직 CEO들은 대표가 열린 마음으로 구성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정국 전 대표는 자신이 멘토링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가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사람과 관련된 이슈와 고민을 털어놨다. 자세히 들어보니 결국 본인 사고의 틀에 갇혀 구성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생긴 문제였다. 이 부분을 지적하고 결국은 대표 스스로가 마음을 열고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행히 이후 본인 노력을 통해 회사가 관련 이슈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영민 교수 역시 “창업자나 CEO는 규모가 커질수록 본인이 직접 일을 하는 것보다 구성원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창업자의 역할론과 함께 채용과 해고 등에 대한 원칙을 엄격히 세울 것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라”는 전직 CEO들이 스타트업 대표에게 공통으로 건네는 조언이다. 이금룡 이사장은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때는 외부 인적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라”는 조언을, 김상헌 전 대표는 “구성원 간 지속적인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김 전 대표는 “과거 글로벌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 하이퍼커넥트가 미성년자의 거액 결제 사건으로 부정적인 여론에 노출됐던 적이 있다. 수개월 동안 매주 진행된 ‘리스크 점검회의’가 답이 됐다”며 “회의를 통해 임직원이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고 서비스 미비점을 함께 짚어가면서 문제를 모두 개선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유사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됐고 이후 하이퍼커넥트는 약 2조원 가치로 평가받고 성공적으로 매각됐다”고 설명했다.
유니콘 1000개 만들면 미래 100년 걱정 없어
A.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당시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7명과 한 달에 한 번씩 식사 모임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때 큰 보람을 느껴 이후 멘토링에 적극 나서게 됐다. 갖고 있는 경험과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필요에 따라 투자도 하면서 한국 경제 미래인 스타트업을 돌보는 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Q.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트업을 만나봤을 테다. 공통적인 고민이 있던지.
A. 크게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자금 조달, 둘째는 팀을 어떻게 꾸리고 팀워크를 다져나갈 것인지에 대한 인사 관리, 셋째는 규제다. 특히 규제 관련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스타트업 특성상 전에 없던 사업이 많다 보니 기업이 가진 사업 모델과 정부 규제가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민간 기득권 세력에 의한 ‘민민규제’도 있다. 예를 들어 법률 자문 플랫폼 ‘로톡’은 외국에서는 문제 되지 않지만 국내에서는 변호사협회와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원격 의료 역시 의사협회 등 반대로 서비스 제공이 쉽지 않다.
Q. 과거 경험에 기반해 어떤 조언을 주로 해주고 있는지.
A. CEO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회사는 결국 좋은 인재가 많이 모여야 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CEO 정서적 안정,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수다. CEO 마음가짐은 회사 문화로 자리 잡게 되고 곧 회사 DNA가 된다. 좋은 DNA가 기반이 된 회사만 지속 성장한다.
Q. 앞으로 스타트업 양성 과정에서 어떤 족적을 남기고 싶은지.
A. 현재 대한민국 경제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대기업 중심 전략을 통해 이만큼 성장을 이뤄낸 것은 대단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좋은 기업이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결국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국 경제에 미래가 있다. 엔젤투자협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팁스(TIPS)’ 사업을 통해서 올 한 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900개 발굴할 예정이다. 이 숫자를 늘려 1년에 3000개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10년 후에는 3만개 기술 스타트업이 탄생할 것이고 이 중에서 3%인 1000개만 유니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서 이탈할 걱정이 없다. 단순 계산으로 1000조원이 훌쩍 넘는 가치가 탄생하는 셈이다. 유니콘 기업 1000개 만들기를 남은 인생의 목표로 생각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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