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전쟁은 경제 ‘희망고문’…협치 실종된 여야 [기자수첩-정책경제]
“아무 생각 없이 건넨듯한 한마디에. 밤새 생각에 잠겨. 희망고문인 걸 알면서도 여전히 닿을 수 없는 너에게 손을 내미는 나.” 가수 이하이가 2016년 내놓은 ‘SEOULLITE’ 앨범에 실린 곡 중 희망고문 가사 일부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기대를 심어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상대방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알량한 재주다.
여야의 감세전쟁 속에는 희망고문이 담겨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종합부동산세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까지 포함해 법인세, 상속세 완화 등 세제 전반을 수술대 위에 올려놨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종부세 완화론에 모락모락 불을 붙였지만, 자칫 ‘부자 감세’로 비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속도 조절에 나섰다.
문제는 부자 감세라는 물음표를 떼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세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받을 것이 뻔하다. 정부와 여당은 올해 세법개정안에 담길 종부세 개편 우선순위로 다주택 중과세율 폐지를 검토하며 종부세 폐지까지 거론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종부세 과세 인원은 39만7000명으로 납부세액이 1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징벌적 과세로 종부세에 대한 기준이 강해지면서 2022년 과세인원은 128만3000명으로 3배 이상 뛰었다. 납부세액도 6조7000억원으로 4배가량 늘었다. 당시 정부가 공시가격을 빠르게 올린 것이 직접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종부세를 납부한 1주택자 타격은 더 컸다. 같은 기간 종부세를 낸 1주택자는 3만6000명에서 23만5000명으로 이들이 낸 세금은 150억원에서 2500억원으로 급증했다. 윤석열 정부의 완화책으로 부담은 상당 폭 감소했으나, ‘징벌적 조세’와 ‘이중 과세’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여권보다 먼저 화두를 던지며 종부세를 손봐야 한다는 쪽은 야당이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종부세 제도는 필요하다”며 “1가구 1주택, 실거주하는 경우에 한해선 세금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논의 시기를 두고는 “지금은 적당한 타이밍이 아니다”라고 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당에선 공식적으로 종부세 관련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지지자 어장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오락가락한 논의 탓에 납세자 혼란만 커져 희망고문이라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상속세 개편은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국세청 차장 출신인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4일 “중산층의 세 부담을 조정하는 상속세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상속세 과세표준으로 쓰이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2021년 19%, 2022년 17% 넘게 상승하면서 상속 재산가액 5억~10억원 사이 과세 대상자는 49.5% 늘어났다. 이 구간에 속하는 상속세 결정 세액이 68.8% 급증했다.
정부·여당은 최대 주주 할증폐지와 상속자산 전체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속인이 물려받은 유산만큼 세금을 내는 방식인 유산취득세 개편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야당은 초부자 상속세 감세라며 졸속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결국 상속세 개편은 희망고문의 길로 들어설 모양새다.
정부가 내년 도입할 예정이었던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한 것도 민심 얻기를 위한 하나의 희망고문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금투세는 주식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를 상대로 해당 소득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부과하는 세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지만, 개인투자자 독박 과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금투세 폐지를 위해선 야당 협조가 필수적인데 현재로선 국회 통과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세수 감소도 우려된다. 정부가 밝힌 금투세 폐지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혜택 강화로 예상되는 세수 감소 효과는 연간 각각 1조5000억원, 2000억~3000억원 수준이다. 돈 쓸 곳은 많은데 나라 곳간은 점점 비어가는 상황이라 재정 당국 고심은 깊어져 간다. 감세를 쉽게 봐선 안 될 것이다. 건정재정 기조에 부합하려면 여야는 선심성 정책은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최대한 좁혀가며 마땅한 정책도 내놔야 할 것이다. 국민에게 ‘희망고문’으로만 그쳐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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