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10% 난임치료로 태어나… 저출산 극복에 중대 역할”
가임력 보존 ‘난자 뱅킹’ 등 건보 사각
미성숙 난자 체외배양센터 등 갖춰
병원 전전 부부들 어려움 해결 최선
매년 국내 출생아의 약 5%(1만2000여명)가 태어나는 차병원이 최근 서울 송파구 잠실역 인근에 여섯 번째 난임센터를 열었다. 차병원은 이번 센터가 64년 여성 의학, 40년 난임 의학의 정수를 집대성한 곳이라고 밝혔다. 차병원은 이미 서울 강남구와 서울역에도 난임센터를 갖고 있는데, 왜 잠실에 난임센터를 또 열었을까.
잠실차병원장을 맡은 이학천 차의과학대 산부인과 교수는 10일 “이곳은 기존 난임센터와 패러다임을 조금 달리한다”면서 “현재 난임 치료의 난제인 고령 임신, 반복적 착상 실패, 습관성 유산, 다낭성난소증후군(가임기 여성 10명 중 1명이 겪는 배란 장애), 난자 냉동 보관을 통한 미래 임신 계획 등 개개인의 문제에 맞춤형 의료 서비스 제공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업적 이익보다는 거듭된 임신 실패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난임 부부들의 어려움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곳엔 국내에서 거의 연구가 중단됐던 ‘미성숙 난자의 체외 배양(IVM) 연구센터’가 새로 들어섰다. 이 교수는 “IVM은 예전엔 주로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 등에게 한정됐지만 최근 배양 기술과 최첨단 장비의 발전으로 반복적 착상 실패나 난자의 질이 좋지 않아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잠실차병원은 이 같은 기술을 활용해 현재 50% 내외인 35세 이상 고령 임신율, 30% 전후인 40세 이상 초고령 임신율을 젊은 난임 부부의 임신율 수준(50%대 중·후반)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교수에게 최근 난임 치료의 트렌드와 해결 과제 등을 들어봤다.
-고령 임신과 난임 현황은.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산모의 평균 연령은 33.5세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고령 임신 기준인 35세와 가까워지고 있다. 35세 이상의 출산율이 전체의 35.7%를 차지한다. 만혼 추세로 난임 인구도 늘고 있다. 고령 임신은 난임 확률이 커지고 자연 유산, 임신성 고혈압·당뇨 등 합병증 위험도 높아진다. 태아의 선천성 기형 확률도 높다. 가임력은 나이 들면서 점차 떨어지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난소 나이’ 검사를 해 보고 임신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난임은 피임하지 않은 정상 부부 관계에도 1년 이내에 임신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다. 원인은 다양하다. 여성은 배란 장애, 다낭성난소증후군, 자궁내막증, 난소 기능 저하, 난관 손상 등이 꼽힌다. 남성은 고환 기능 이상 및 발기 장애, 정자 활동성 저하, 무정자증이 많다. 환경 호르몬, 스트레스, 비만, 흡연 등 요인으로 최근 남성 난임이 크게 증가 추세다.”
-40세 이상 초고령 출산도 많나.
“2년 전 통계를 보면 40세 이상 분만 출생자 수가 최고를 찍었다.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고령인 경우 시험관아기 시술(IVF) 빈도가 높다. 내가 시행한 IVF 여성의 60% 이상이 40세를 넘는다. 예전엔 40세 이상은 임신을 생각도 못 했는데, 의학 발전으로 지금은 가능해졌다. 현재 35세 이상 임신율은 50% 안팎, 40세 이상은 30% 내외다.”
-고령 임신율을 높이는 방법은.
“나이 들면 수정란에 염색체 이상이 온다. 40세 이상의 60~70%가 비정상 염색체를 갖는다. 염색체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 ‘착상전 유전자 검사(PGT-A)’를 한다. 수정란을 5일간 키운 배아 상태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불량을 빼고 정상 배아만 선별해 자궁에 이식하는 것이다. 40세 이상도 건강한 아기 출산이 가능하다.”
이 교수는 “착상전 유전자 검사는 고령자의 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모든 난임 환자에게 만능은 아니다. 난소 기능이 떨어졌거나 자궁내막증이 있거나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는 등의 이유로 임신이 어려운 여성들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IVM이 대안이 될 수 있나.
“그렇다. IVM은 1989년 차병원이 세계 최초로 임신과 출산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고 미성숙 난자는 태아가 될 수 없다는 학계 의견을 깨뜨렸다. 이는 미성숙 난자를 채취하기 위한 과배란 약을 사용하지 않거나 조금 써서 신체 후유증과 고통이 덜한 기술이다. 최근 여성 암 환자도 늘고 있는데, 과거엔 항암 치료로 임신을 꿈도 못 꿨다. 지금은 항암 치료 전 생리 주기와 상관없이 미성숙 난자를 채취할 수 있다. 습관성 유산이나 반복적 착상 실패 등 이유로 난임인 여성들도 시도해 볼 수 있다. 난자 배양 기술이 발전해 배양 성공률이 기존 50%에서 최근 70%로 높아졌다. 과배란 약을 쓰지 않아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도 적다. IVM은 호주, 벨기에 등 해외 국가의 많은 난임 학자들과 시험관아기센터에서 도입했다. 2022년 미국생식의학회에서도 IVM을 난임 해결의 새로운 방식으로 인정했다.”
-‘배아 보관’ 서비스도 제공하나.
“결혼하지 않았거나 현재는 생각 없지만 추후 결혼을 염두에 둔 여성들의 가임력 보존을 위해 난자를 냉동 보관하는 ‘난자 뱅킹’은 이제 많이 알려졌다. 이에 비해 ‘배아(수정 후 8주까지 단계) 뱅킹’은 덜 알려져 있고 보관 건수도 아직 많지 않다. 요즘은 늦게 결혼하고도 신혼을 즐기려는 부부가 많은데, 이들이 나중에 병원을 찾으면 난자와 정자의 노화 문제로 임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아 뱅킹을 권한다. 첫째 아이 낳고 육아 등으로 몇 년 후 둘째, 셋째를 원하는 부부들이 고려해 볼 수 있다.”
-난임센터의 인적 구성은.
“‘삼신 할매’라 불리는 최동희 교수, 착상전 유전자 검사와 첨단 시술법으로 높은 임신율을 기록하는 신지은 교수, 다낭성난소증후군과 반복적 착상 실패 치료 전문 원영빈 교수, 가임력 보존과 환자별 맞춤 치료 전문가 최승영 교수, 난소 기능 저하와 가임력 보존 전문가 박지은 교수 등을 중심으로 꾸렸다. 이밖에 난임의학연구실에선 20년 이상 베테랑 연구원들이 전 세계적 난임 원인으로 꼽히는 난소 기능 저하와 원인 불명 반복 착상 실패 환자를 위해 성숙 정자 선별 주입술(PICSI), 정자 형태 선별 정자 주입술(IMSI) 등 최신 난임 보조생식술 기법을 연구하고 수행한다.”
-난임 치료의 국가 지원에 대한 생각은.
“국내 신생아의 약 10%가 난임 치료로 태어나고 있다. 난임 치료가 국가 저출산 극복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국가 지원이 중요하다. 현재 난임 치료는 현금 지원에 치중돼 있고 지원된다 하더라도 시험관아기 시술에 한 회당 100만~150만원은 개인이 부담한다. 젊은 사람은 한 두 번이면 될 수 있지만 나이 든 사람은 여러 번, 10번 이상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번 할 때마다 그만큼 비용이 든다면 부담은 만만치 않다. 경제적 이유로 난임 치료를 못 받는 여성뿐 아니라 난자 보관을 간절히 원하는 미혼 여성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도 요구된다. 현재 난자 뱅킹은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다. 건보 지원 등 난임 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는 대책이 필요하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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