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플렉스 시즌5] 따뜻한 힐링이 있는 청주 속 ‘힙 플레이스’… 설레는 만남… 온기 가득한 공간 속으로
특별한 공간은 그 곳을 찾는 이들이 오감을 작동시키며 경험을 축적하게 하는 힘이 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에 닿는 향기, 두 눈으로 구석구석을 마주하며 저장해 두는 장면들, 공간을 채우는 소리와 소품을 매만지며 느끼는 감촉 등이 쌓이는 동안 공간은 작지만 특별한 선물이 된다. 그 선물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게 하는 여섯 번째 감각이 있다. 바로 '온기'로 느껴지는 정서다. 이 시대의 청년들을 응원해온 국민일보 갓플렉스(God flex)는 오는 21일 충북 청주 상당교회(안광복 목사)에서 진행될 집회에 앞서 지역 내 온기와 재미가 느껴지는 '힙 플레이스'를 찾아 지도를 그려봤다. 그 곳에는 공간을 온기와 오감으로 채우고 남을 만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충북대 앞 북적이는 점포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다보면 80년대 레트로 풍 거리를 옮겨 놓은 듯 한적함이 깃든 골목에 다다른다. 세탁소와 슈퍼마켓을 마주보고 있는 한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에 다가서면 두 개의 문장과 눈 맞춤 할 수 있다. ‘밀어주세요. 슬픔을’ ‘당겨주세요. 행복을’. 이곳은 갤러리를 품은 카페 에이맨이다.
“20~30대 직장인 시절 내내 놓지 않았던 10년간의 기도가 에이맨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카페지기 조관묵(42)씨도 불과 2년여 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주어진 하루에 묵묵히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를 기도하던 것이 취미로 배워왔던 커피와 공간 운영으로 이어지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입간판엔 한글과 영어로 ‘에이맨’이 병기돼 있지만 본질은 크리스천들에게 익숙한 ‘아멘’ 그 자체다. “너무 가볍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이름을 떠올렸어요. ‘아멘’이라고 하면 신앙 없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부터 생길 것 같아 발음에 위트를 줬지요. 단어에 담긴 ‘진심으로’라는 뜻처럼 손님들에게 진심 담은 커피와 공간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도 함께요.”
길가를 향해 커다랗게 낸 창이 오후 햇살을 받으면 에이맨의 공간은 빛의 온기로 가득찬다. 갈색에 오렌지 빛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한 대표색도 온기를 더하는 포인트다. 곳곳엔 시선을 따라 단어를 읽는 것만으로 신앙적 고백이 될 만큼 세련된 감각의 에이맨 로고가 손님의 눈을 끈다.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로 꼽히는 ‘에이맨 쿠키’ ‘아멘’의 히브리어 첫 글자를 형상화 한 포스터도 그 중 하나다.
청주시 율량동, 아파트 단지와 학원가가 밀집해 있는 골목엔 연두색 갈매기 입간판이 눈에 띄는 식당이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일본 가정식 메뉴들이 적힌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공간 전체를 감싸는 찬양 소리에 ‘식당이 맞나’ 싶어 놀라고, 서글서글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맞이하는 청년 사장의 에너지에 놀란다. 지난 5일 이곳을 찾았을 때도 매장엔 찬양 ‘꽃들도’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찬양은 제게 ‘노동요’ 같은 존재에요. 혹시라도 식사하다 노래에 대해 묻는 손님에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요. 유도 선수로 살았던 철없던 학창 시절엔 악함이 강함인 줄 알고 사고를 많이 쳤어요. 부상 때문에 유도를 그만두고 경찰 공무원 시험도 준비했었는데 오히려 경찰서에서 조사받아야 할 삶을 살았었네요. 하하.”
굴곡진 20대를 통과하며 결핵으로 3차 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엄신욱(36) 청년에겐 고난이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하는 길이 돼줬다. 스스로 “탕자 같은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그에게 목에 남은 수술자국은 영적 훈장이다. 가슴에 아로새긴 훈장이 활달한 성격과 결합하며 식당을 운영해 온 10년 동안 많은 이들에게 복음의 통로가 돼줬다.
영업을 멈추는 주일엔 상당교회 청년들의 아지트가 돼준다.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찾는 식당을 넘어 의지할 곳 없는 청년들이 따뜻한 마음까지 얻어 가는 공간이 돼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충북도청이 자리 잡고 중앙시장 서문시장 등 청주 시내 상권이 운집한 영동은 서울의 명동처럼 최근 MZ세대들의 ‘힙 플레이스’들이 모인 동네다. 감각적인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선 거리를 걷다보면 한 건물 3층 창문에 적힌 이색적인 상호가 눈에 들어온다. 집의 조각들.
“뇌리에 각인되기 쉽고, 이름을 들었을 때 자연스레 연상되는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어요. 집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구입해 간 물건들이 저마다의 공간에 소중한 조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담겼고요.”(홍보미·32)
계단을 올라 2층과 3층의 경계에 다다르면 숲 속 피톤치드를 떠올리게 하는 디퓨저 향기가 이곳을 찾은 이들을 맞이한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엔 가정집의 커다란 거실을 굿즈 백화점으로 탈바꿈 한 광경이 펼쳐진다. 주방용 싱크대마저 개성 있는 소품 전시대로 활용한 주인장의 감성이 돋보인다. 개업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소품점이지만 운영자의 마음가짐은 20년차 못지않게 진중하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나는 순간, 기쁨을 느끼는 손님과 마주하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행복이에요. 하나님을 온전히 만났을 때 제가 느꼈던 온기처럼 이곳이 따듯함을 느끼고 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청주의 남쪽 가마지구엔 두 개의 커다란 아치형 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이 있다. 비트윈(Between)이란 이름의 이 카페는 인근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사랑방이 돼주고 있었다.
“우리 시대의 커피는 곧 만남을 뜻하죠. 만남은 곧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 나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따뜻하게 연결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김태홍·49)
이곳엔 공간에 온기를 더하는 특별한 요소가 있다. 12년차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카페지기인 김태홍 상당교회 집사가 손수 카페를 준비하며 가장 공을 들인 부분, 바로 빛이다.
“본래의 색도 중요하지만 빛에 반사된 색, 벽에 반사된 빛이 공간에 비치는 색감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빛으로 오신 하나님과 만났을 때 우리의 모습, 그 빛이 투영된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이 전달되는 것도 같은 이치죠.”
커피 크림색이 조명과 어우러진 중앙홀과 함께 20여명이 그룹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비트윈의 매력 포인트다. 김 집사는 “이곳에서의 만남이 또 다른 행복한 만남을 기약하게 되는 곳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외에도 청주에는 크리스천들이 온기를 향유할 수 있는 야외 공간들이 있다. 충북 유형문화재 133호로 등재된 탑동 양관은 충북 최초의 선교사인 민노아(F.S. Miller, 1866~1937)가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건물이다. 총 6개의 서양식 건물이 보존되고 있으며, 현재 관리를 맡고 있는 일신여중 일신여고 교정을 거닐며 탐방할 수 있다.
또 호암저수지, 근린공원으로 둘러싸인 오창호수공원은 자연을 벗 삼아 신앙 공동체가 교제를 나누기 좋은 휴식 공간으로 꼽힌다.
청주=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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