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망고나무 집

2024. 6. 1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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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흘간 나는 남미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을 방문했다.

나와 여동생 둘 다 초등학생이었던 그 시절, 파라과이에서 우리가 처음 살던 집은 앞마당에 망고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망고나무를 견디지 못하면 파라과이에서 계속 살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망고나무보다 더 오래 사는 나의 친구는 38년 만에 만난 내게 48년 전 내가 먹은 약초 이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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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흘간 나는 남미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을 방문했다. 1976년 부모님을 따라가서 살았던 땅. 10대를 이곳에서 보내고 이스라엘로 대학을 진학한 후 다시 파라과이에 와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르헨티나의 한 신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와 항공권을 예약하다가 ‘바로 옆인데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느닷없이 어린 시절의 집을 찾겠다고 결정하는 이들이 적잖다고 한다. 심리학자 제리 M 버거에 따르면 그의 설문에 응한 이들 3분의 2가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의 집을 이미 방문했거나 앞으로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갑자기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란다. 그리고 이런 추억 여행자에게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 시절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나와 여동생 둘 다 초등학생이었던 그 시절, 파라과이에서 우리가 처음 살던 집은 앞마당에 망고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 집에 꼭 가 보고 싶었다.

“성현아, 파라과이 흙냄새 나지 않아?” 공항에 반갑게 마중을 나온 고향 누님이 내게 일러주듯 물었다. 숨을 들이켜 보니 정말 그랬다. 이런 냄새를 맡으며 38년 전 나는 부모님과 여동생, 친구를 뒤로하고 이 땅을 떠났었다. 어릴 적 경험한 공간과 장소는 실제보다 크게 기억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로 향하는 좁은 길은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늘 큰 길이라 생각했던 마리스칼로페스 길이었다. 나를 위해 길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가며 밤길을 운전한 선교사님과 동행해 준 장로·권사님, 점심과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신 분들 역시 ‘고향 형님’이자 ‘고향 누이’이다.

드디어 집을 찾아 나선 금요일 오전, 페르난도델라모라에 사는 고향 친구가 하루를 몽땅 내게 선사해 줬다. 망고나무가 자라는 고향 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고향 집은 다행히 그 집의 독특한 지붕 모양 덕에 찾을 수 있었지만 망고나무가 없어진 것이 사뭇 아쉬웠다.

그러고는 시장을 지나는데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약초 파는 골목으로 지나가 볼까?” 아, 친구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집 망고나무에서 시작된 피부 알레르기가 온몸에 진물이 흐르는 풍토병으로 진전돼 몇 달을 고생하던 나는 시장에서 약초를 팔던 한 인디오 아주머니가 쥐여준 ‘타페쿠에’ 덕에 나았던 경험이 있다.

이후 나는 이 약초를 끓여 마시며 그 나무의 망고를 먹고 또 먹었다. 망고나무를 견디지 못하면 파라과이에서 계속 살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망고나무보다 더 오래 사는 나의 친구는 38년 만에 만난 내게 48년 전 내가 먹은 약초 이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심리학자 버거는 그의 2011년 저서 ‘리터닝 홈(Returning Home)’에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 집을 찾는 가장 큰 이유를 과거의 기억, 그 시절의 자신과 연결감을 갖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되찾아 본 그 과거의 시간에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이번 방문을 통해 다시 알게 됐다. 어린 시절의 벗, 이들이 나는 몹시 고맙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잠 17:17)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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