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케케묵은 법사위의 권한 남용, 이젠 그만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법사위원장은 우리가 해야 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같은 입장이다. 차이가 있다면, 견제의 대상이 다르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정부의 독주를, 국민의힘은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영 논리로 보면 어느 쪽 입장이 옳다고 자신 있게 손들어 주기가 쉽지 않다.
국회 관례를 적용해도 판단하기 어렵다. 15대 국회 이후 28년 동안 18명의 법사위원장이 거쳐 갔다. 정부·여당 견제 논리로 야당이 위원장을 12회 맡았지만, 여당 위원장도 6회나 있었다. 다수당 견제 명분으로 원내 제2당 소속 위원장이 10회 있었지만, 그냥 다수당이 맡은 경우도 8회나 된다. 지금의 민주당처럼 야당 다수당 위원장이 4회, 국민의힘처럼 여당 소수당 소속이 2회 있었다. 법사위원장과 국회의장의 당적이 같을 때도 다를 때도 있었다. “관례가 이렇다”라고 주장할 일관성은 없다.
■
「 22대 국회, 법사위 놓고 극한 대결
법사위 과다 권한으로 정쟁 유발
법제위·사법위 분리 대안될 수도
」
법사위원장을 누가 맡아야 할까. 이 문제의 답을 내기 전에 양당이 법사위원장을 서로 차지하려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사위는 법원·검찰 등 소관 기관 감사, 특검법 처리 등 본래 업무와 함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이 있다. 국회법에 따라 상임위원회 심사를 마친 법률안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다. 이 길목에서 법사위가 반대하면 상임위 심사가 끝난 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상임위 통과 법안 444건이 법사위에서 발이 묶인 사례도 있었다. 21대 국회 종료 시점까지 법사위에 계류(다른 위원회 통과)된 법안이 110건이었는데,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모두 폐기됐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대리할 수 있도록 한 변리사법 개정안의 경우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의결됐으나 법사위에서 748일 동안 잠자다가 결국 폐기됐다. 이 때문에 법사위의 권한남용이란 비판을 받았다.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뿌리가 깊다.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개정 당시 법사위의 월권에 대한 처방으로 ‘본회의 직접 부의 요구’를 신설했다. 법사위가 상임위 의결 법안을 60일 이내에 체계·자구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상임위가 본회의에 직접 부의를 요구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첫 적용 사례가 세무사법 개정이었다.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 취득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인데, 법사위에 계류된 것을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21대 국회에서 본회의에 직접 부의 요구된 법안은 무려 21건이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논란이 된 양곡관리법·방송법·노란봉투법·간호법 등이 모두 이 절차를 통해 본회의에 부의·의결됐다. 이 과정에서 다수당은 “소수당이 법사위에서 사사건건 법안 처리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했고, 소수당은 “다수당의 횡포를 저지하는 바리케이드가 법사위”라고 항변했다. 이처럼 법사위의 과도한 권한이 때로는 창으로, 때로는 방패로 둔갑해 위세를 부렸다. 양당의 법사위원장 쟁탈전은 법사위의 ‘탐나는 권력’을 서로 차지하려는 것이다.
국회는 13대 이후 전통적으로 법사위원장을 포함한 18개 위원장을 협상과 합의로 정했다. 그러나 21대 국회 전반기처럼 합의가 안 되면 힘센 다수당이 차지했다. 22대 국회도 여야의 원 구성 협상 결렬에 따라 첫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 의원 108명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 주도로 선출했다. 그냥 여기에서 법사위 논란을 마감할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법사위의 권력 분산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제안처럼 법사위원회를 법제위원회와 사법위원회로 나누는 대안도 논의해 볼 만 하다. 사법위는 법원·검찰 감사 등 고유업무를 맡고, 법제위는 체계·자구 심사에 관한 사항을 맡는 방안이다. 22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이 어떻게 결론 나더라도 법사위의 월권은 언제라도 정쟁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지뢰 같은 존재다.
어렵더라도 케케묵은 법사위의 권한남용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여야는 물론 다수당과 소수당은 돌고 돈다. 어느 정당이 어떤 입장에 서더라도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국회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 22대 국회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병국 전 국회의장 비서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 말 들어야 해?" 윤 터졌다…'형' 부르던 박범계의 훈시 | 중앙일보
- 박세리 父, 박세리 재단에 고소 당했다…사문서위조 혐의 | 중앙일보
- “연예계 고질병 고칠건데요?” 기획사 사장 된 타일러 도발 | 중앙일보
- '야인시대' 정일모 "실제 주먹세계 조직 보스였다" 충격 고백 | 중앙일보
- "보험살인 엄인숙 보자마자 예뻐서 놀라…동생 입원 중 갑자기 임신" | 중앙일보
- 백종원 "이러면 홍콩반점 다 망한다"…'촬영 거부' 점주에 버럭 | 중앙일보
-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비상…둔촌주공 '중품아' 무산되나 | 중앙일보
- 유재환 "죽었다가 깨어났다"…5일 전 쓴 유서 공개한 이유 | 중앙일보
- '부산 집단 성폭행' 가담한 선수가 손아섭? NC "모두 사실 무근" | 중앙일보
- [단독] '북∙중 밀월 징표' 김정은 발자국 동판, 중국서 사라졌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