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모바일 컴퓨팅 시대 이후엔 ‘공간 컴퓨팅’ 시대 온다
이젠 안경 위에 올라올 것으로 예상
디스플레이 변화가 사회 혁신 주도
증강현실 넘어 혼합·확장현실 기대
30년 전 우리가 생활했던 ‘환경’은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기본적인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 예를 들어 소파나 식탁, 침대, 의자 등의 형태나 기능이 지금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엄청난 변혁이 이뤄진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TV나 컴퓨터 모니터 같은 디스플레이 장치다.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육중한 TV는 엄청나게 얇아져 벽에 걸렸다. 자동차 내부구조도 각종 디스플레이가 설치되면서 혁신이 이뤄졌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삶의 변화는 상당 부분 디스플레이 기술발전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최근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는 단어가 부쩍 관심을 얻고 있다. 지난해 애플에서 신제품 안경형 컴퓨터 ‘비전프로’를 공개하면서 이 단어를 언급한 뒤부터다.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와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견인했다. 다른 기업도 아닌 애플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이런 공간 컴퓨팅이란 어떤 것일까. 그 전에 컴퓨터 기술이 어떤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디스플레이 장치를 사용하는 이유는 눈(시각)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정보를 저장하고, 가공하고, 또 출력하며, 통신까지 하는 장치를 우리는 컴퓨터라고 부른다. 컴퓨터 장치는 디스플레이 기술과 합쳐지며 점점 더 인간의 눈과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커다란 방을 가득 채우던 초대형 컴퓨터는 책상 위로(데스크톱 컴퓨터), 무릎 위로(랩톱, 즉 노트북컴퓨터), 그리고 이제는 손 위로(팜톱, 즉 스마트폰) 올라왔다. 그러니 차세대 컴퓨팅 환경은 결국 눈 바로 위, 즉 안경 위로 올라올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공간 컴퓨팅의 필수 조건이 ‘안경형 컴퓨터’이다.
공간 컴퓨팅 이란 단어는 2003년 사이먼 그린월드가 MIT 미디어랩에서 석사 논문을 작성하면서 처음으로 썼다. 그는 공간 컴퓨팅을 ‘기계가 실제 물체와 공간에 대한 참조를 유지하고 조작하는 인간과의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했다. 앞으로 안경형 컴퓨터를 착용하고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하는 세상이 오게 되는데 그것을 손짓과 발짓, 음성 등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서비스는 현실사회와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VR(가상현실) 장비를 쓰고 침대에 누워 대화면으로 영화나 게임을 감상하는 것은 공간 컴퓨팅 개념과 차이가 크다.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할 뿐 현실과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 컴퓨팅을 설명하면서 ‘메타버스’를 예로 드는 경우가 있다. 일부 중복되는 개념이 있긴 해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란 단어는 ‘가상현실 세계’ 그 자체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공간 컴퓨팅은 ‘현실 속에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신개념 컴퓨터 활용방식’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이미 우리에게 VR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다. VR 장비는 콘텐츠 감상용 기기 성격이 강하며 영화감상, 가상현실 게임 등을 할 때 적합하다. 그와 달리 AR(증강현실) 장비는 현실이 기반이다.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스카우터’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런데 공간 컴퓨팅의 개념을 완벽하게 현실에 적용하려면 AR보다도 더 진보된 MR(혼합현실)과 XR(확장현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공간 컴퓨팅이란 결국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MR의 경우 현실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완전한 가상의 존재, 예를 들어 가상의 아바타 등을 현실 속에 호출해 우리 집 식탁 의자에 앉혀 놓는 것이 가능해진다. 영화 ‘킹스맨’을 보면 아무도 없는 회의실 빈 의자에 ‘스르륵’ 하고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 여러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회의를 하곤 한다. 즉 AR+VR 기술이 합쳐져야 MR 서비스 구현이 가능해진다. 필요하다면 화면 속 가상의 존재와 상호작용도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특수 장갑을 끼고 화면 속 물체를 집어 옮긴다든가 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기술은 미래에 어떻게 쓰일까. 우선 산업현장에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조립 중인 자동차에 가상의 엔진을 넣어보며 작업 순서나 오차 등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면 커다란 공정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원격진료도 이 같은 개념을 도입한다면 더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다. 말 그대로 XR, 즉 ‘현실 세계의 확장’이 공간 컴퓨팅 기술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다. 위화감 없는 서비스를 개발하려면 인간의 안구 시차를 속이는 기술, 더 나아가 뇌파를 해석하는 기술까지 개발해야 하므로 많은 기초과학적 발견까지 요구된다. 당연히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래를 그저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현재까지 개발된 다양한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 쓸만한 서비스를 꽤 많이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플의 비전프로는 원리적으로 폐쇄형 디스플레이 장비이며, 이는 본래 VR서비스를 위해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주위 환경을 카메라로 비춰 보여 주는 방식으로 상당 부분 MR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공간 컴퓨팅은 개인용 컴퓨터 시대, 현재의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차세대 컴퓨팅 환경을 일컫는다. 완성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요구되지만, 미래의 컴퓨터 사용 환경이 발전해 나갈 방향으로서 설득력 있는 흐름인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래가 명확하다면 대비해야 한다. 그 과정에 필요한 요건은 두 가지다. 첫째로 지금의 AR, MR 관련 기술은 보완될 필요가 있으며, 관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사회 전반적인 노력 역시 필요하다. 둘째로 ‘시장’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최대한 응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지금은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를 쌓아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전승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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