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부산박물관에서 만났다, 우리 곁의 지독한 수집가들

이은주 2024. 6. 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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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모으는 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이들 수제품(手製品)에는 보다 아름다운 것, 보다 훌륭한 것을 추구하여 마지않는 집념이 서려 있다. 그리고 꿈이 있고 낭만이 있고 개성이 있고 인생이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만져보고 비교도 해보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것이다.” 오래 전 어느 수집가가 남긴 글을 최근 부산박물관에서 만났습니다. 수집의 즐거움을 이토록 명료하게 표현한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시죠.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입니다. ‘이건희·홍라희 컬렉션’에 앞서 수집의 묘미를 깊이 알고 즐긴 그가 있었습니다.

지금 부산박물관(관장 정은우)에서 ‘수집가 전(傳) : 수집의 즐거움 공감의 기쁨’(7월 7일까지, 무료)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는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은 물론 아모레퍼시픽의 고 서성환 회장과 서경배 회장, 화승의 고 현수명 회장과 현승훈 회장, 눌원문화재단의 신성수 이사장이 평생 수집해온 국보와 보물 10점을 포함해 고미술품 58점을 소개합니다.

청자 음각 연화문유개 매병. 12세기 전반, 높이 43㎝, 입지름 6.3㎝, 밑지름 15.3㎝. 현존하는 청자 매병 중 유일하게 뚜껑을 갖추고 있다. 국보. [사진 부산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유물 23점과 리움미술관 소장품 3점, 그리고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소장한 백자 달항아리(보물)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기차표 고무신’으로 날린 부산 기반의 화승그룹 부자(父子)의 남다른 수집 열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현수명 회장은 무려 44년 전인 1977년, 자신이 수집해온 단원 김홍도 그림,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고려청자 등 총 60건(69점)을 국가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듬해 개관한 부산박물관의 귀한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고 현 회장이 기증한 백자 대형 항아리(보물)를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장남 현승훈 회장의 백자 달항아리(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와 청자 음각 연화문 유개 매병(국보) 소장품도 압권입니다. 김환기 화백이 실제로 소장했던 달항아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매병 청자는 당당한 자태와 맑은 비색으로 12세기 고려 청자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동방유량 창업자인 고 신덕균 회장에 이어 사회 공헌을 실천하고 있는 눌원문화재단 신 이사장의 소장품도 ‘국립 박물관’ 급입니다. 1750년의 박문수 초상, 17세기 서예가 허목의 전서 글씨, 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 등이 모두 국가 지정 보물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58점의 작품은 사실상 58개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아름다운 것, 보다 훌륭한 것을 추구”한 이들에 대한 경외감, “내가 사두면 (문화유산이) 적어도 해외로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과 열정이 이룬 결실입니다. 미술품 수집가들이 그렇게 우리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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