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취향의 산물, 집
폴과 나는 프랑스 몽트뢰이에 산다. 몽트뢰이는 파리 동쪽 동네로, 뉴욕에 비유한다면 브루클린 같은 곳이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는 층고가 4m 넘는 인더스트리얼풍의 로프트가 집이었다. 둘이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쿨’한 공간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온 것은 수년 전, 남북한 관계가 심각했던 시절, 만약 전쟁이 나면 가족을 데려 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러온 결과다. 양가 부모님 그리고 형제자매가 많으니 게스트 룸이 적어도 2개는 필요했고, 이사를 위해 새로운 지역을 물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대학 졸업 후 파리로 유학 온 뒤 쭉 파리에서 살았고, 당시에는 파리 밖으로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본 집이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잊게 할 만큼 햇빛이 환하게 드는 거실을 보고 주저 없이 이사를 결정했다. 건물의 5~6층에 있어서 커다란 창문으로 푸른 공원과 탁 트인 하늘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전의 인더스트리얼 하우스와는 완전히 다른 오스마니안 스타일의 빌딩 곳곳은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고 금세 질리는 성향을 지닌 나에게 새로운 영감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천장과 벽을 장식하는 몰딩, 청동으로 만들어진 히터, 언제 제작됐는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사용 가능한 벽난로와 나무 바닥까지. 셀 수 없이 긴 세월을 입은 집의 구석구석을 좋아하고 만끽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 꽤 놀란다.
집에 놀러 온 모두를 항상 놀라게 하는 물건이 있으니 바로 길에서 주워 차곡차곡 쌓아둔 도로 사인들이다. 폴과 나는 길에 버려진 물건 중에서 괜찮은 걸 발견하면 무조건 가져오는 버릇이 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면 항상 어디에서 주웠는지 묻는다. 그렇게 모은 잡동사니 같은 오브제와 가구가 더해져 이미 수많은 물건이 집에 있어도 폴과 나는 아직 버릇을 고치지 못했고, 이 집에도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사물이 대거 쌓여가고 있다. 이렇게 쓰레기를 줍는 버릇은 뜻밖의 행운을 가져오기도 한다. 게스트 룸에 둔 오래된 목재 서랍은 카스텔 바작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그의 집 앞에서 발견한 것. 서랍을 주워 들어온 나를 의아하게 보던 카스텔 바작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장 서랍에 나와 남편의 초상화를 그려줬다. 다이닝 룸과 리빙 룸이 연결된 클래식한 더블 살롱이라 우리 부부가 주워온 물건과 어우러져 벼룩시장 같은 분위기가 될 것 같아 비트라의 임스 라운지체어와 장 프루베 다이닝 테이블을 장만했고, 대부분의 조명은 코펜하겐 출장 중에 발견한 벼룩시장에서 구매했다. 이런 가구들이 레코드 캐비닛을 비롯해 내 눈에 예쁘다는 이유로 길에서 들여온 들쭉날쭉한 가구나 오브제와 묘하게 어울린다. 변덕이 심한 나는 살고 있는 장소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에는 가구나 오브제도 트렌디하고 모던한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헤드 PR 매니저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래된 것에 둘러싸여 나폴레옹 3세 스타일의 게리동 테이블과 체어처럼 앤티크 가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가장 맘에 드는 건 최근 구매한 19세기 스타일의 캐비닛. 유리문의 곡선이 아름다워 구매한 이 가구는 수집한 그릇과 유리잔을 정리하기에 알맞다.
지금은 책을 제대로 정리하고 싶어 오래된 책장을 찾고 있다. 폴과 나는 벽에 못 하나 박지 못한다. 구멍 하나 뚫는 데도 부부 싸움이 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마다 하나씩 있는 벽난로는 폴의 페인팅 작업이나 오래된 포스터를 배치할 수 있는 스탠드로 사용되고 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몇 개 없다는 것은 7년 동안 부부 싸움을 피해온 우리 두 사람의 노력이 응축돼 있다. 물론 벽난로의 도움이 컸다. 결혼 전 남편 폴은 9m2의 스튜디오도 운동장처럼 누비며 살았다. 엄청난 미니멀리스트였던 그는 나와 결혼한 후 엄청난 변화를 맞았고, 이제는 영락없이 맥시멀리스트의 집에 얹혀산다. 그는 항상 내 옷과 신발을 처분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한다면 지금 아파트 역시 10배는 더 넓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혼생활 15년 차가 된 그는 이제 라마르조코 커피 머신을 부엌에 두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면서 집에 대한 정서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프리랜서 생활을 정리하고 회사에 취직하면서 치열하고 드라마틱한 하루를 끝내고 퇴근할 때면 재택 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와인이나 샴페인을 차게 냉동실에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집에 돌아와 와인 한 잔 기울일 때 느끼는 안락함이 굉장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전과 달리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간다. 집과 맺은 인연이 오래 쌓일수록, 입을수록 몸에 맞아가는 신발이나 옷처럼 내가 집에 집이 나에게 어울리는 사이가 돼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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