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에너지 자립 꿈 현실화될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도 산유국 반열에 오르는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뜨겁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석유와 가스를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한국이 이번 유전 개발이 성공할 경우 실질적인 산유국 반열에 오르고 에너지 수급도 크게 안정화될 것”이라며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탐사 성공하면 2035년 생산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브리핑을 열고 “지난해 2월 동해 가스전 주변에 더 많은 석유 가스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아래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겼다”며 “최근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정부는 미국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인 ‘액트지오(ACT-GEO)’로부터 받은 탐사 자료 평가 결과를 국내외 전문가에게 별도로 자문하는 등 충분한 확인 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매장량은 2000년 이후 발견된 단일 광구 최대 심해 유전인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배럴보다 많다. 1990년대 울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동해 가스전과 비교하면 300배 넘는 규모다.
산업부에 따르면 동해 심해에서 탐사된 자원량은 최소 35억배럴, 최대 140억배럴이다. 매장된 예상 자원은 가스 75%, 석유 25%로 추정된다. 140억배럴은 가스 3억2000만~12억9000만t, 석유 7억8000만~42억2000만배럴을 석유로 환산한 수치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석유·가스 매장량이 최대 예상치인 140억배럴로 공식 확인될 경우 한국은 브라질(127억배럴)을 누르고 단숨에 세계 15위 석유 매장국에 오른다. 또한 아시아에서 중국(262억배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석유 매장량을 확보한다.
경제적 가치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안덕근 장관은 “140억배럴을 현재 가치로 따지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정도”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시총을 약 440조원으로 계산했을 때 약 2200조원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1년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에너지 자립의 꿈을 이어왔다. 1959년 국립지질조사소가 전남 해남군 우항리 일대에서 처음 석유 탐사를 했다. 1979년 한국석유공사를 설립하면서 자력으로 석유를 개발하는 정책을 시작했고, 1998년 동해-1 가스전에서 양질의 천연가스층을 발견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2004년 국내 최초로 천연가스를 생산했지만 생산 규모가 아쉬웠다. 2004~2021년 약 4500만배럴의 가스를 생산하는 데 그치고 고갈된 만큼 이번 탐사 시추에 거는 기대가 크다.
막대한 매장량이 예상되는 포항 석유·가스전 소식에 산업계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데다 자급도가 높아져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원유 수입량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중동산의 경우 해상 운송에 한 달가량 소요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동해에서 원유가 생산되면 운송 기간이 대폭 줄어 운임을 절약할 수 있다. 휘발유 등 석유 제품 가격도 낮아지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에 석유, 가스 관련주도 일제히 상한가를 달렸다. 한국가스공사 주가는 6월 3일 하루에만 30% 뛰어 1999년 상장 이후 첫 상한가를 기록했다. 한국가스공사는 해외에서 들여온 액화천연가스(LNG)를 국내에 공급하는데, 영일만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모두 인수해 공급할 전망이다. 한국석유, 흥구석유, 대성에너지 등 석유 관련주도 이날 상한가로 마감했다.
조선사 수혜도 기대된다. 첫 번째 탐사 시추에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해양 시추 업체 시드릴의 ‘웨스트카펠라’가 선정됐다.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등 해양 플랫폼 건조 관련 사업에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탐사 성공 확률 20% 수준…경제성 불확실
물론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이르다. 석유 가스전 개발에서 자료 해석을 통한 물리탐사는 첫 단추에 해당한다. 물리탐사란 해저 자원 개발에 앞서 퇴적층 분포와 기반암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탄성파를 해저로 쏴서 돌아오는 자료를 분석해 석유, 가스 매장 가능성을 확인한다. 물리탐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추공을 뚫어 실제 매장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탐사와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27~2028년에는 시추시설 공사가 시작돼 2035년부터 본격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수입을 대체하고 남는 물량은 해외에도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해역에서 유망구조를 찾은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망구조란 석유나 가스 등 자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층 구조를 말한다. 다만 이번에 발표된 추정 자원량은 실제 매장량과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다. 물리탐사 단계에서는 자원이 많아 보이더라도 실제 탐사에 돌입하면 자원이 없거나 비용을 들여 채굴할 만큼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성공 확률은 20%로 최소 다섯 번은 뚫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탐사 시추를 통해 자원이 있다는 걸 확인하더라도 잠재 자원량에 따라 채굴을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채굴해서 얻을 이익보다 발생할 비용이 더 크다면 굳이 채굴 사업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경제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지난해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인 우드사이드가 동해 심해 가스전 공동탐사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장래성이 없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뜨겁다.
탐사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 부담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정부는 향후 탐사에서 1개 시추공을 뚫는 데 드는 비용을 1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산업부는 2026년까지 최소 5곳 이상 시추 작업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탐사 시추 이후 상업 개발에 들어가려면 최소 10년 이상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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