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확대 논란…“소액주주 보호” vs “경영 불확실성 가중”

최선을 2024. 6. 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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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 뉴스1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찬성 측과 소송 남발로 기업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한다는 반대 측 논리가 팽팽하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제21대 국회에 이어 제22대 국회에서도 상법 개정 논란이 재점화했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로 바꾸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상법상 이사는 주주총회 결의로 회사가 임용한 회사의 대리인이다.

정치권에서 상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한 건 2020년이다. 당시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 후 상장하자 LG화학 주주들은 ‘쪼개기 상장’이라며 반발했다. 기존 주주 입장에선 미래에 핵심이 될 사업부문을 떼어내면서 주주가치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이에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선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 참석하며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최근엔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하나로 상법 개정을 꺼내 들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법상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16일 미국 뉴욕 투자설명회(IR) 이후 기자들과 만나 “개인 의견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는 무조건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개미’ 투자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상법 개정안은 여론의 힘을 얻고 있다. 이사회가 경영상의 이유로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의사결정을 할 때 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합병이나 분할을 지배주주의 이익에 따라서만 결정했을 때, 대주주나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로 인해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됐을 때 등이다. 상법 개정 찬성 측은 개인 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주주와 이사가 노력하도록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재계에서는 반발이 거세다. 일상의 경영 활동까지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산업계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배당과 대규모 투자, 전략적 인수합병(M&A) 등 경영 활동에 대해 주주 모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는 어렵기에 어떤 판단이든 충실 의무를 위반할 소지가 생기고, 이는 곧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 소송 남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재계 관계자는 “이사가 회사와 주주 모두에 대해 충실 의무를 부담하면 손해배상 소송 또는 배임을 우려해 투자, M&A, 연구개발(R&D), 사업재편 등 주요 경영 의사결정을 과감하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뉴스1


재계는 이번 개정안이 해외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과한 규제라고도 호소한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가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인정 여부 검토’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모범회사법과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주요국의 회사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된다. 일부에서 미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포함된 근거로 제시하지만, 이는 회사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에 불과하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보고서는 다수의 주주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자본 다수결 원칙’에 따라 출자 비중이 높은 주주가 주로 갖는데, 상법 개정안은 이런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소수 주주가 누리는 이익이 이들의 주식 지분보다 과대평가 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장은 현실화시킬 수 없는 이상적 관념에 불과하다”며 “이를 상법에서 강제할 경우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경영 판단을 지연시켜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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