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추악한 계략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팔레스타인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부 알아크사 순교자 병원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의 알 부레이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소녀를 안고 있다. |
ⓒ 연합뉴스 |
가자지구의 민간인 희생이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전무하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 여론과 사법기관, 언론 등이 일정한 몫을 해보지만 정작 분쟁 당사자들은 전쟁을 끝낼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국가의 지상권(至上權)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수준에 와 있는 지금, 현실적으로 한 국가가 가진 권리에 대한 불가침성은 인간의 생존에 관한 기본권을 월등히 압도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제분쟁이 초래하는 인권 말살을 저지할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전쟁 8개월째를 맞아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을 종용하고, 실천 가능해 보이는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다. 대체로 무력 사용을 멈추고 인질과 정치범 석방을 위한 교섭을 이어가자는 방안들이다.
국제사회가 제안하는 휴전안들의 기본 취지는 충분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에서 많이 비켜나 있다. 휴전안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 체제'다. 하지만 전쟁 당사자들의 최종 노림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는 공히 팔레스타인 전 지역의 완전한 장악과 상대의 궤멸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은 국제사회가 제안하는 휴전안을 전쟁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구실로 상대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전쟁은 외교 실패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실패를 외교로 메운다는 인식으로 휴전을 대하는 듯하다. '적대적 공생 관계'인 이들의 목표 앞에 놓인 최종 걸림돌은 상대방이겠지만, 첫 번째 걸림돌은 내부의 정치적 라이벌들이다.
하마스는 1991년 창설된 이즈 앗딘 알카삼 여단의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한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 대항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마스라는 정치조직으로 탈바꿈한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 권력을 향한 의지를 드러낸다. 온건파 파타(Fatah)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와해시키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꿰차려는 야심을 노골화했다.
국제무대에서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려는 하마스의 중간 목표는 의외로 쉽게 달성되는 듯 보였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압도적 과반을 획득하며 팔레스타인 제1당으로 올라섰다. 특히 가자지구에 대한 통치권을 사실상 완전히 손아귀에 넣었다.
전 세계 많은 나라가 팔레스타인 정부로 인정한 PA의 지배력을 서안지구로 한정시키면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제1당이 된 데에는 파타의 무능과 부패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적대적 공생관계'인 이스라엘이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실어 준 이유가 컸다.
▲ 이스라엘군 탱크와 군용 차량들이 5월 2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국경 인접 지역에 집결해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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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노동당은 건국 후 많은 분쟁 끝에 팔레스타인과 '평화적 공생관계'가 유일한 해법임을 자각하고 대화에 나섰다. 그러나 90년대 말, 이에 반대하는 리쿠드당으로 이스라엘의 정치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다.
리쿠드당과 이스라엘 극우세력들은 팔레스타인 지역 완전 장악을 목표로 땅이 넓은 서안지구에는 유대인 정착촌을 넓혀가고, 작고 인구밀도가 높은 가자지구는 완전 봉쇄를 통한 고사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국제적 고립과 자멸을 목표로 온건파가 주도하는 PA를 붕괴시키겠다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궁극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위해, 극단적 이슬람근본주의가 팔레스타인의 주도 세력이 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PA를 몰아내고 하마스를 팔레스타인의 실세로 만들기 위한 이스라엘 우파의 전략은 권력 의지를 품은 하마스의 목표와 일치하게 된다. 마치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알카에다를 지원했던 미국의 전략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스라엘의 추악한 계략은 미국 언론인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이 폭로한 자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국 의회 조사국이 내놓은 보고서에도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이렇게 이스라엘 극우세력과 하마스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는 탄생하게 된다.
2023년 10월 7일,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이스라엘 안보-정보 시스템이 그렇게 쉽게 뚫렸던 이유에 대해, 8개월 동안 하마스에 끌려간 인질 구출에 이스라엘 정부가 놀라울 정도로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이스라엘 국민들이 묻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선 휴전안 협의 내용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세부 조항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간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다수의 휴전안에 그랬던 것처럼.
최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권력 연장을 위해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바이든 대통령의 수사법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하는 반인권적 행태를 막을 수 있는 길을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국제사회가 휴전을 권유하고 압박하는 일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국가의 악행을 막을 길을 고민하는 것은 또한 국제사회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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