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풍선-확성기' 무한 반복 잠시 멈춤..."北 비열한 행동시 즉시 튼다" [View]

이근평, 이유정, 정수경 2024. 6. 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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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 등에 비례적·단계적 대응 원칙을 정한 정부가 10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지 않았다. 북한이 9~10일에도 풍선을 살포하기는 했지만, 풍선의 내용물이나 북한의 공식 입장 등에서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비례성의 원칙을 ‘강 대 강’으로만 표출하는 게 아니라 태도 변화의 여지가 보일 때는 절제해 대응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대북 방송을 즉각 시행하는 상황에 대비해 전방 지역에서 실제 훈련을 최근 실시했다고 9일 밝혔다. 합참은 2018년 이후 실제 훈련은 처음이며 확성기 이동 및 설치, 운용 절차 숙달 등 일명 '자유의 메아리 훈련'을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과거 기동형 확성기 차량 및 장비의 운용을 점검하는 훈련 모습. 사진 합동참모본부


‘1회성 압박’ 아닌 ‘일단 멈춤’

군 당국에 따르면 이날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다면 실시하지 않는 쪽으로 오후쯤 가닥이 잡혔다. 거듭된 경고에도 북한이 또 오물 풍선을 날려보내자 정부는 전날 오후 약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실시했다. 최전방에 설치된 5곳의 고정형 확성기를 통해 국군심리전단이 제작하는 '자유의 소리' FM라디오를 2시간 가량 송출했다.

이에 반발해 북한이 또 9~10일 풍선을 날려보내자 정부는 이날도 유사한 시간대, 같은 방식으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지 논의를 이어갔다. 확성기 방송 송출 뒤 북한이 추가로 풍선 살포에 나섰고, 군이 이미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렸다”고 사전 경고한 만큼 다시 확성기를 켜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이날은 방송을 송출하지 않게 된 데는 사태가 악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분위기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처음 오물 풍선 살포 때처럼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피해 유발에 집중하지는 않는 기류가 읽히는 만큼 북한의 태도를 좀 더 지켜본 뒤 추후 행동에 나서도 늦지 않다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절제된 대응으로 북한에 신호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봤다”며 “강 대 강 대치가 북한의 행보를 오히려 더 주목받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행동을 넘어서는 ‘급발진’ 대응으로 스스로 정한 비례성 원칙을 깨면 오히려 북한이 추가 도발하기에 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전날 대북 확성기 방송을 2시간으로 조절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경진 기자


김여정 “반사적 반응에 불과” 구구절절 설명

실제 북한이 오물 풍선 도발을 계속하면서도 ‘질과 양’ 측면에서 수위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지난 8~9일(3차)과 9~10일(4차)에 살포한 오물 풍선에는 폐지와 비닐 등이 실린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28~29일(1차)과 이달 1~2일(2차) 오물 풍선에 담배꽁초나 거름이 담겨 국민 피해를 유발했던 것과는 다른 행태다. 당시에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타이머까지 부착해 피해를 키우려 했다.

풍선 개수도 1·2차 살포 때 모두 약 1000개에서 3차 330여개, 4차 310여개로 줄었다. 민간 탈북단체가 지난 6∼7일 대북 전단을 날려 보냈다는 점을 고려해도 북한의 대응 수위가 더 고조되지는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정부가 내세운 비례성의 원칙을 북한 역시 의식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날 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서도 이 같은 의도가 읽힌다. “우리는 빈 휴지장들만 살포했을 뿐 그 어떤 정치적 성격의 선동 내용을 들이민 것이 없다” “우리의 대응은 정당하고도 매우 낮은 단계의 반사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우리의 대응 행동은 9일 중으로 종료될 계획이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등 구구절절 추가 풍선 살포의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새로운 대응을 경고하면서도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이라고 조건을 걸었다. ‘병행’이라는 표현에서 고민이 느껴진다는 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전 김여정 담화와 비교해도 표현이 정제되고 수위가 낮아진 듯하다”고 평가했다.


대북 확성기, 압박 동시에 대화유도 카드로

10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 남한군 초소에서 장병들이 기관포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군 당국은 대북 확성기가 여전히 유효한 대응 카드라는 입장이다. 군은 “북한이 비열한 행위를 할 경우에는 즉시라도 방송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현재 방송을 잠시 멈췄지만 북한의 도발이 이뤄지면 주저 없이 재개한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대북 확성기의 효과가 다시 한 번 입증됐다는 의견도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지도부의 피로도를 높이는 ‘소진 전략’에 대북 확성기가 활용될 수 있다는 식으로 우리의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실효적 카드인 확성기를 가동한 만큼 압박 자체가 아니라 북한을 견인하는 목표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단 방송 송출을 상수로 만들어놓은 만큼 확성기 중단 내지는 철거가 북한의 행동 변화에 따른 보상으로서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정한 비례성의 원칙을 유지, 북한 역시 예측가능한 선에서 행동하도록 최대한 유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긴장도가 어느 정도 낮아질 경우 북한이 원한다면 언제든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다시 발신할 필요도 있다.

이와 관련, 북한의 경제 사정이 악화하는 가운데 주민 불안을 가중하는 남북 대치 상태가 이달 하순 당 전원회의를 앞둔 북한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 소식이 대내 매체인 노동신문이 아닌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리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북한 내부 사정을 감안할 때도 김여정의 담화를 ‘소모전을 가능한 빨리 중단하자’는 메시지로 해석할 만하다는 것이다.

한편 군 당국은 북한이 대남 방송용 확성기를 설치하는 동향을 식별했다고 밝혔다. 대북 확성기 소리를 희석하려는 의도다. 합참 관계자는 “현재까지 실제 방송은 없었다”며 “북한군 동향을 예의주시 하면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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