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항일 사이 수많은 이들 생각하며 읽어주길"

김성수 2024. 6. 1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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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계속되는 김소운·지하련·이효정·조연현의 삶 다룬 책... <항일과 친일 사이> 저자 전점석

[김성수 기자]

전점석(1951~) 전 창원YMCA 사무총장은 지난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대학원 동기생들과 함께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했다가 옥살이를 했다. 전 전 총장은 한신대 대학원에 재학하던 지난 1976년 4월 동료 학생들과 함께 유신헌법 개정과 구속 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서 수백 장을 복사해 학교 예배당에서 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저자 전점석 선생
ⓒ 전점석
 
그는 지난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퀘이커교도 함석헌(1901-1989), 문익환 목사(1918-1994),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 등의 주도로 '3·1 민주구국선언'이 발표되고 이들과 동료학생들이 연행·수감되는 모습을 보고 성명서를 배포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지난 1977년 출소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2019년 10월 4일, 서울북부지법 강혁성 부장판사는 당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재심이 청구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 전점석 선생이 최근 <항일과 친일 사이>라는 책(링크)을 펴냈다. 다음은 책 속 머리말에 저자가 쓴 책 소개다. 
 
"김소운, 지하련, 이효정, 조연현, 이 네 분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은 지금도 창원과 함안에서 찬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 본의든 아니든 지금도 이 네 분은 심심찮게 지역민들 간의 갈등 요인이다. 잊을 만하면 들썩거린다. 이들이 살아온 삶의 명암(明暗), 공과(功過)를 골고루 살펴봐야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눈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본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은 장점만 보이고, 싫어하는 인물은 단점만 보인다. 비록 직접 이분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남기신 글에 그들의 삶이 담겨있다. 글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삶을 통해 글을 읽어서 이분들에게 가까이 가기를 바란다."
 
나는 노무현 정부시절인 지난 2005년 그와 함께 호주의 국회, 감사원, 경찰청, 선거관리위원회 등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다음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이 책과 관련하여 그와 서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글쓴이 삶을 알아야 작품도 제대로 이해 가능"
 
 책표지
ⓒ 전점석
   
- 먼저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김소운(1907~1981), 지하련(1910~1960), 이효정(1913~2010), 조연현(1920~1981)즉 여성 작가 두 분, 남성 작가 두 분, 네 분의 삶과 문학에 관한 책이다. 경남지역 출신이거나 사셨던 분들이다. 소설가,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등이다. 작가들이 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삶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께서는 1945년 8월, 해방될 때까지 치열하게 독립운동하신 분과 친일-독재부역의 삶을 산 분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 특별히 네 명을 다룬 글을 쓴 이유가 있나?

"이효정은 월북하지 않은 독립운동유공자이고, 지하련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하다 월북했고, 조연현은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분이고, 김소운은 검토단계에 올랐다가 친일작품 수가 적어서 빠지는 등 각자 같은 시기, 다른 삶을 살았다.

지금도 이 네 분은 각자 다른 이유로 심심찮게 지역갈등 요인이기도 하고, 관심 인물이기도 해서 같이 실었다. 조연현은 경남 함안군 출신인데 군청이 생가보존에 나서야 한다는 지역 문인들의 요구와 반대하는 여론이 충돌하고 있다. 김소운은 어린 시절 창원시 진해구에서 7년 정도 살았고 진해에 관한 수필 몇 편을 썼다. 지금도 일부 지역 문인들이 기념사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지하련이 독립운동가 오빠들과 함께 살면서 작품을 썼던 집은 현재 개발과 보존이 충돌하고 있다. 이효정은 생전에 알려지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수난과 마산에서의 시작활동에 대해 뒤늦게 관심을 받고 있다."

- 책에서 "일본인보다 일본을 더 잘 아는 김소운"이라고 썼다. 어떻게 김소운이 일본인보다 일본을 더 잘 안다는 말인지?

"살펴본 바, 그는 13살 때 첫 번째 밀항으로 일본에 가서 혼자 길거리를 헤매며 온갖 고생을 했고, 19살 때 두 번째 가서는 2년간 일본 전국을 혼자서 도보로 다니며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심지어 지방 사투리까지 알 정도가 되었다. 그 후 일본 문단의 뛰어난 문인들에게서도 많이 배웠다."

- '지하련 주택'이 나오는데, 이건 무엇이고 왜 이걸 '한국문학사의 보물'로 평가하나?

"해방 직후 문인 중에서 단편소설 분야는 이태준과 지하련이 최고였다. 이태준이 살았던 집은 현재 잘 보존되어 지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서울 성북구의 명소가 되었다. 마산 산호동에 있는 지하련의 주택은 그곳에서 민족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꿈을 꾸었고,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썼다. 당연히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

- 이효정은 왜 '이념의 먼 길을 지나 시인이 된' 것으로 봤나?

"어릴 때부터 서예와 문학에 소질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그런데 동덕여고보 시절부터 백지동맹, 동맹휴업, 적색노조, 경성트로이카 활동과 징역을 사느라고 여유가 없었다. 1989년, 나이 76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첫 시집 <회상?을 내고, 가향문학회 활동을 했다. 시 '꽃을 보는 마음' 을 보면 '가다가 길이 막혀도/ 기다림에 목줄이 타버려도/ 꽃을 보는 마음으로 살아야지'라고 하신 분이다."

- 조선어를 모르는 일본 문인들이 김소운의 <조선시집> 번역(일역)을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일제강점기에 조선 시인의 시를 일역해서 소개하는 본격적인 책이었다. 그의 일역은 원시를 존중하는 번역이라기보다 의역이었다. 특히 일본시의 정형율인 7·5조, 5·7조의 운율에 맞춘 의역이라는 점에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가공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일본인들에게 한국시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 김소운, 조연현은 용서받지 못할 친일파였다고 보나?

"어떤 이유에 의해서든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모/기념사업을 한다면 그건 그들의 자유이다. 다만 2차대전 주범인 야마모토 해군대장의 죽음을 슬퍼했고, 정·부통령 후보인 이승만,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지지연설을 했고, 4·19를 혼란이라고, 5·16을 질서라고 칭송한 사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

- 자료수집과 관련자 면담을 통해 확인한 특별한 사항이 있나?

"집필 전에는 생각도 못했는데, 지하련의 오빠와 이효정의 삼촌이 같은 사건에 연루된 걸 확인했다. 1932년 대구에서 있었던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에 각각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나이도 한 살 차이인 피 끓는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지하련과 이효정이 직접 교류는 없었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김소운의 일역(日譯) 활동에 대해 한국문학과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훌륭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재일시인 김시종과 재일소설가 이회성을 통해 원시를 과도하게 변형시켰다는 주장을 알게 되었다.

한편 경성트로이카, 반제동맹, 적색노조가 주장한 내용을 보면 공산당 재건을 위한 목적과 함께 민족 독립은 물론이고 의료보험 실시, 주40시간 노동쟁취,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이었다. 100년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목숨을 걸고 부르짖었던 내용이 거의 이루어졌다는 게 신기했다.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의 문집에서 이효정의 삼촌이신 이동하를 그리워하는 시를 찾은 것은 큰 기쁨이었다."

- 독자에게 한 마디 한다면?

"한국 역사에서 친일과 항일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읽으시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저자 전점석은 1951년 대구 출생으로, 2011년 8월부터 경남일보 칼럼 '경일포럼'을 게재 중이며 지난 2020년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 '친일·반공·독재, 그 계보의 변신을 추적한다'가 입선, 합천 <황강신문>에 '전두환 씨는 합천의 자랑인가?' 등을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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