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거목을 탄생시킨 손때 묻은 61개의 건반 [내 인생의 오브제]
고등학생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그는 CBS 방송 오디션에 나가 컴퓨터로 작곡한 피아노 음악을 최초로 연주한다. 맹인 가수 스티비 원더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으며 훗날 그래미상(기술 부문)을 받게 된다. 결국 창업까지 하는데 그게 신시사이저란 악기 제조 회사였다. 회사명은 커즈와일뮤직시스템스.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당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악기란 통기타 같은 자연계 소리를 내는 어쿠스틱 악기거나 전기 플러그를 꽂아 쓰는 전자악기였다. 그 전자악기 중 여러 가지 소리를 낼 수 있게 개발된 게 신시사이저다. 기타, 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 브라스 등 여러 음원을 합성한다는 뜻에서 신시사이저. 커즈와일은 이렇게 만든 회사를 1990년 한국 기업에 판다. 당시 전 세계 피아노 시장의 30%를 차지했던 영창악기. 그래서 커즈와일의 이력엔 특이하게도 영창악기 기술고문이란 직함이 있다.
최근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으로 뉴스의 중심에 선 방시혁 하이브 의장. 신시사이저라는 악기가 없었다면 어쩌면 오늘날의 방시혁, 그리고 방탄소년단(BTS)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 신시사이저는 코르그(Korg)라는 일본 회사 제품인데 모델명은 O1/W FD. 뒤의 FD는 플로피디스크로 음원을 저장한다고 해서 붙은 건데 이 모델이 나온 지는 거의 30년 가까이 됐다.
신시사이저는 대략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하나는 밴드를 구성할 때. 밴드는 통상 기타, 베이스, 드럼 등 3개의 악기로 구성된다. 이게 밴드의 3요소. 여기에 하나 더 붙인다면 그게 바로 신시사이저다. 3가지 악기로 연주를 하면 아쉬울 때가 있다. 브라스 소리를 넣고 싶을 때도 있고 오르간 소리를 넣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면 별도로 브라스나 오르간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런 수고를 더는 게 신시사이저다. 악기 선택 버튼을 누르고 키보드를 두들기면 사운드가 나온다. 다른 하나는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의 필수품. 음악 만들려면 본인의 손에 익은 악기 하나를 사용한다. 기타나 피아노 정도. 그런데 신시사이저를 사용하면 본인 스스로 하나의 밴드를 두고 곡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 방시혁은 61개 건반의 신시사이저를 사용했다.
방시혁 의장은 “god와 박진영 씨의 그녀는 예뻤다 앨범, 즉 나의 커리어 처음부터 그 신시사이저를 사용했다”며 “없는 살림에 산 첫 번째 고가 제품”이라고 회고한다. 거기서 나오는 소리도 본인 취향에 맞았다. 그 독특한 사운드와 취향을 박진영 씨도 높게 사 그와 동업을 하게 됐던 것. BTS의 작품을 작업할 때는 이미 키보드로는 너무 오래돼 소리를 사용하지는 않았고 마스터 건반으로만 사용했다.
그는 지난해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본인을 ‘백대빵 프로듀서’라고 했다. 회사를 경영하는 기업가로서의 자질은 제로,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로서의 자질이 100이라고 겸손 모드로 얘기를 한 것이긴 한데, 어찌 보면 이번 경영권 분쟁 사태도 그래서 발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가총액 수조원대 기업을 이끄는 총수라 한들 그는 어쨌든 천생 음악인이다. 손때가 묻어서인지 흰색 건반이 노랗게 변색돼 있는 이 낡은 신시사이저에서 오늘날 K팝의 거목 방시혁이 탄생했다.
[손현덕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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