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시작은 영상통화, 뇌 과학자에 자문도"

이선필 2024. 6. 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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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이선필 기자]

 
 영화 <원더랜드>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장편 영화만으로 13년 만이라지만 감독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간 꾸준히 단편 연출과 기획, 무대 감독 등 작품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중영화로 <만추>(2010)극장에서 오롯이 김태용 감독의 인장을 만끽하고 싶은 관객 입장에선 오랜만인 건 사실이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원더랜드>는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SF라는 장르적 틀이 결합한 작품으로 여타 기대감을 받아 왔다.

결과물을 보면 AI(인공지능)를 소재로 한 일종의 휴먼드라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고고학자(탕웨이), 그리고 식물인간이 된 연인(박보검)을 그리워한 이(배수지)가 원더랜드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며 가족과 연인에게 생동감 있을 때 모습 그대로 소통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을 이용한 일종의 상품인 셈. 여기엔 김태용 감독이 꽤 오랫동안 품고 있던 과학기술 관련 본질적인 질문도 담겨 있었다.

영상통화 너머에서 감지한 실존 문제

알려진 대로 처음 기획의 시작은 영상통화였다. 배우 탕웨이와 결혼 후 한국과 베이징을 오가던 김태용 감독은 아내와 통화하던 중 실재한다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영상 통화 너머의 상대방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 이후 지금의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 여기에 평소 과학 기술에 감독 개인이 갖고 있던 호기심도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어렸을 때 장래희망을 과학자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 영어보단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고, 과학 지식이 풍부하진 않지만 언젠가 과학 관련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해왔었다. 다만 이번 영화의 시작은 SF 원작 소설이 있다거나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닌 인간의 관계에 집중해보자는 취지였다. 물론 이 영화엔 SF적 상상이 있고, 가정이 있고 관련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전면에 드러나진 않는다.

초반에 시나리오를 쓰고 준비할 때 AI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진 모르겠지만 먼 미래로 가지 않길 원했다. 보폭이 우리 실생활과 비슷한 정도였으면 했지. (인공지능 학자) 김재식 교수와 여러 얘길 하면서 사람의 의식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자문도 받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 얘기처럼 느낄 것 같진 않았다. 근데 얼굴과 표정, 목소리를 재현하는 건 수년 안에 가능하다더라. 이 영화 개봉이 늦춰지면서 긍정적으로 보면 딱 지금의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가 된 셈이다."

김태용 감독은 과학자들의 자문을 받고 논문을 보면서 기술 자체에 함몰되는 게 아닌, 해당 기술이 상용화 된 근미래의 일상을 다루고자 했다. 특히 생김새보단 목소리가 비슷할 때 사람들은 진짜라고 느낀다는 연구를 보면서 힌트를 얻었고, 뇌가 사고하는 특징을 살피며 현실감을 더했다.

"AI 혹은 기계와 어느 정도 감정 소통이 가능할까. AI 기술은 인간의 뇌를 연구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들었다. 뇌과학자들이 많이 얘기하는 게 사람의 뇌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이미 벌어진 일을 인식하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것이다. 유명한 실험이 있잖나. 면접관에게 무거운 짐을 들게 하고 면접을 보게 할 때랑 그렇지 않을 때 똑같은 답을 하게끔 하면 점수 차이가 난다는 것 말이다. 결국 인공지능은 관계이고 감정의 문제라 감정적 변화가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영화에 반영하려 했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관계를 질문하다

외로움과 그리움의 본질은 관계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일 것이다. 혼자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누군가와 그것도 소중한 존재라 생각하는 사람과 아주 떨어진 채 살 수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 경험들. 김태용 감독은 "슬픔을 극복하는 방식이 시기마다 다른 것 같다"며 "아주 묻어둬야 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일상에 파고 들어와도 인정하고 살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는데 집집마다 유골을 모시고 있더라.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죽음 이후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세계와 연결되어 사는 것이다. 당장의 슬픔은 직면하기 힘들겠지만, 일상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슬픔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원더랜드>는 그런 욕망에 맞춘 기술의 상품화를 담았다.

탕웨이씨와 많이 질문을 주고받았다. 배우 입장에서 감독에게 엄청 질문을 하는데 종종 그 질문을 피하려고 제가 역으로 물어본 적도 많다. 기획 초기 단계부터 탕웨이씨는 다 알고 있었다. 자기가 죽으면 AI로 재현할 것인지,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등등 숱한 질문을 던졌다(웃음). 아역 배우 캐스팅 때도 오디션에 참여했고, 엄마 역할을 (맡은) 니나 파우 배우를 모시는 데에도 직접 전화해서 설득해줬다. 여러 모도 깊게 관여했지."

그런 이유로 김태용 감독은 <원더랜드>를 SF물로 한정하기 보다는 휴먼 드라마에 방점을 찍고 싶어했다. 사실 그의 전작들이 그랬다. 3D 기술을 접목한 옴니버스영화 <신촌좀비만화>도 그랬고, <만추>나 <가족의 탄생>도 결국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탐구한 결과물이었다. 사람은 그럼 결국 무엇으로 사는 걸까. 짐짓 추상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그 거창한 질문에 어울리는 답일진 모르겠지만 관계가 끊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이야기잖나. 관계가 끊기면 존재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근데 끊어질 땐 끊어지고, 이어질 땐 이어져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반드시 이어지거나 끊어져야 하는 건 아니고. 중요한 건 자기 의지 아닐까.

뇌과학 연구에서 흥미로운 게 왜 사람들은 카페에서 일을 하려 할까다. 자극과 이완이 동시에 필요해서라고 한다. 집에선 너무 늘어져서 일이 안 되고, 긴장된 순간에도 일이 손에 안잡히는데 카페에선 적당한 긴장감과 주변 사람들이 방해할 것 같지 않는 신뢰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도 그런 게 필요한 것 같다."
 
 영화 <원더랜드>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원더랜드> 이후 김태용 감독은 꾸준히 파고들던 이야기와 기획을 선보일 계획이다. 정작 본인은 공연도 준비했고, 작업을 쉬지 않았다지만 "육아 때문에 쉬는 거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장편 영화를 조금은 빠른 시일 내에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웃음). 아직은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서 지금 속도로는 안될 것 같다. 막상 작업을 하면 금방 하는데 투자 등 작품에 들어가기까지가 힘든 것 같다. 아이디어는 많이 있다. 영화 산업이 지금 침체라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꾸준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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