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아름다운 섬의 비극... 이 나라의 기구한 운명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목수정 기자]
▲ 에메랄드빛의 투명한 바다를 자랑하는 누벨 칼레도니 해변 |
ⓒ 누벨 칼레도니 관광청 |
식민지 국가가 독립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면, 그들은 쉽게 독립에 도달할 수 있을까? 만주 벌판에서, 하얼빈 역에서, 피 흘려 싸우고 목숨 건 테러를 기도하는 것보단 훨씬 손쉬워 보이는 그 일이 실은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는 신기루를 향한 끝나지 않는 여정일 수도 있다.
남태평양 한 편, 호주로부터 3천 km 거리에 자리잡은 인구 28만의 섬 누벨 칼레도니가 쥔 패가 바로 그것이다. 1853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2021년에 당선된 그들의 대통령 루이 마푸(Louis Mapou)는 독립을 희망하는 FLNKS(사회주의 민족해방 전선) 소속이며, 의회도 그들이 다수파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법률과 국방, 치안, 통화에 대한 권리는 프랑스에 있다.
19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많은 나라들이 2차 대전 이후 독립하거나 혹은 프랑스령으로 남는 선택을 했지만, 누벨 칼레도니는 지속적으로 독립파와 존속파 사이에서 갈등을 지속해 오며 운명에 대한 선택을 미뤄왔다.
누벨 칼레도니에는 인구 40%에 해당하는 원주민 카낙과 19세기부터 대대로 살아왔거나 한동안 머물고 있는 유럽인들(23%), 그 밖에 혼혈인들, 인근 폴리네시아 지역이나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살아간다. 절반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원주민들은 강력히 독립을 원하고, 나머지 주민 대다수는 원하지 않는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양측간의 갈등이 80여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유혈사태로 표출되었던 것이 1985년이었고, 이 문제를 봉합하고자 누벨 칼레도니의 평화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 1988년 미테랑 정권이었다.
당시 로카르 총리 주재 하에, 독립파와 존속파의 대표가 총리실에서 만나, 향후 10년간, 원주민들의 상처받은 존엄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카낙의 문화유산 복원, 카낙어에 대한 인식 확대, 정체성 회복을 위한 지원 등)을 진행 한 후, 누벨 칼레도니의 자결권 회복을 위한 결정을 주민 투표로 결정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10년 뒤인 1998년, 이번엔 시락 정부 하의 죠스팽 총리와 함께 만난 양측은 아직 독립을 향한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프랑스 정부가 누벨 칼레도니에 국방, 안보, 법률, 통화를 제외한 분야에서 권한을 이양하는 대신, 20년 뒤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 여부를 결정하는데 합의한다.
이른바 누메아 협정으로 불리는 이 합의에서 3자는 원주민들의 영향력을 선거에서 강도높게 반영하기 위해, 1998년 이후 이곳에 온 이주자들에겐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크게 반영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사용되던 시스템이기도 하다. 3자가 서명한 이 내용은 주민투표에 회부되었고, '1998년 누벨 칼레도니의 자결권 회복을 위한 준비 법안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80%의 누벨 칼레도니 시민들이 동의를 표한 바 있다.
3번의 투표, 3번의 실패
그리하여 2018년 처음, 누벨 칼레도니에서 독립 찬성 여부를 묻는 투표가 이뤄졌다. 결과는 57%가 독립에 반대했다. 두 번째 투표는 2020년에 있었다. 이번엔 4%가 줄어든 53%가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선거를 하면, 마침내 원하던 수치에 이를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2021년 12월에 세 번째 투표가 이뤄졌다.
독립파 측은 코로나 상황을 이유로 선거 연기를 요구했지만, 마크롱 정부는 선거를 강행했다. 독립파들의 선거 보이콧이 이뤄진 가운데 44%라는 저조한 투표율을 보인 선거에서 96.5%가 독립에 반대표를 던졌다. 독립파들은 이 선거 결과를 무효라 주장하며 다시 선거를 치르길 원했지만, 마크롱은 이를 거부하며 프랑스 잔류를 선택한 누벨 칼레도니 시민들의 선택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금년 들어, 마크롱 정부는 그 동안 동결되어 왔던 일부 시민들의 선거권을 회복시키는 절차, 즉 10년 이상 거주해온 프랑스 이주자들의 지방선거 선거권을 부활시키는 절차를 의회를 통해 진행했다. 이렇게 되면 잠재적 유권자 20%가 새롭게 투표권을 갖게 되며, 다시 독립 여부를 묻는 선거를 한다 하더라도, 독립파가 이길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게 된다. 독립파 사회주의 민족해방전선은 프랑스 정부가 "약속했던 탈식민지화 과정을 포기하고, 식민지를 고착화시키려 한다"며 맹비난했다.
▲ 지난 5월부터 급작스럽게 비상 상황에 돌입한 누벨 칼레도니. 사진은 지난 5월 14일 프랑스 헌병대가 누메아의 발레 뒤 티르 지역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
ⓒ AFP/연합뉴스 |
2024년 5월 13일, 의회가 누벨 칼레도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투표권 동결을 부분적으로 종료하고, 10년 이상 그곳에 거주해온 프랑스 시민에게 지방 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헌법 개정 절차에 착수하자 폭동이 시작되었다. 경찰 2명, 시민 5명이 사망했고, 3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800여 명이 구속됐다. 80여 개 기업이 훼손되거나 방화되기도 했으며, 곳곳에서 약탈이 행해졌다. 국가 비상사태가 곧바로 선포되었고, 정부는 3000여 명의 군병력을 투입, 시위 군중들을 진압했다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폭동의 기저에는 대화할 줄 모르는 마크롱 정부의 일방적 태도에 대한 질타 외에도 원주민 카낙과 나머지 인구 사이에 놓여있는 불평등의 상황이 놓여있다. 2016년 INSEE(프랑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카낙인 평균 임금은 다른 주민들의 절반에 불과하며, 이들의 실업율은 20%로 섬의 다른 주민들의 두 배에 이른다. 자신들의 땅에서 가장 낮은 계급으로 전락한 원주민들의 축적된 분노는 일방통행의 화법을 취하는 오만한 권력 앞에서 폭발했다.
"유권자 조항을 건드리면 전쟁이 날 것이다. 우리 청년들은 싸움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천명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독립파 진영인 칼레도니아 연합의 대변인은 상황의 위중함을 경고했다. 반면, 잔류파의 대표적 인물인 소니아 바케스는 "오히려 카낙인들이 자신들 외의 모든 타민족들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차별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비난했다.
5월 28일, 비상사태는 해제되었으나, 150개 이상의 기업이 파괴되고, 1500~2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뉴칼레도니아의 연간 GDP가 2포인트 이상 손실됐다고 정부가 밝혔다. 지난 6월 5일, 독립세력을 대표하는 정당 칼레도니 연합은 보도자료를 통해, 비상사태 해제 이후에도 거리낌없이 지속되고 있는 경찰과 군의 탄압을 멈추고, 선거법 개정을 위한 개헌의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어떤 대화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마크롱은 상하원 의회에 이 사안에 대해 다시 논의하라고 공을 넘긴 상태다.
마크롱 정부는 2021년 3번째이자 마지막 국민투표에서 독립 거부가 결정됐다며, 1998년 누메아 협정의 기한이 만료되었다고 간주한다. 그들에 따르면 누벨 칼레도니는 프랑스령으로 남겠다는 선택을 민주적으로 마친 셈이다. 누벨 칼레도니 독립파 정당 연합의 부대표 로뮈알 피조(Romuald Pidjot)의 생각은 다르다.
"누벨 칼레도니의 역사는 주권을 요구하는 카낙족과 이 영토를 내놓기 싫어하는 프랑스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이 여정은 1988년 마티뇽 협정, 1998년 누메아 협정으로 이어진 매우 복잡한 균형 속에서 이뤄져 왔다. 우리는 공동의 운명을 위한 조건을 진정으로 구축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선 시간, 감수성, 대화가 필요하지만 불행히도 최근 몇 주 동안 이 균형이 무너졌다."
▲ 지난달 13일부터 봉기에 돌입한 누벨 칼레도니 시민들. 독립을 요구하는 정당 사회주의 민족해방 전선의 깃발을 들고 시위중이다. |
ⓒ AFP/연합뉴스 |
프랑스가 이 골치 아픈 식민지에 집착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니켈'이다. 전세계 매장량의 10%가 남한 크기의 1/5에 해당하는 이 작은 섬에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록색 황금이라 불리는 니켈은 전자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금속으로 비싼 가격에 팔린다. 마크롱이 정계에 발을 딛기 전 몸 담았던 로스차일드 그룹도 누벨 칼레도니 니켈 채광 산업에 손을 대고 있는 주요 투자자 가운데 하나다.
열려 있는 결과를 향해 충분히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며 시간과 공을 들이며 문제를 풀어갔던 앞선 정부 들과 달리, 다짜고짜 정해 놓은 정답을 향해 상황을 몰고 가버린 마크롱의 방식을 얼핏 이해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마크롱에겐 집권 초기부터 소방수-방화범(Pompier-Pyromane)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일부러 가서 불을 내놓고, 그걸 애써 끄는 척하는 기만적 소방수 인물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전 정부들이 공들여 맞춰 놓은 퍼즐, 긴 대화를 통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에 도달한 성과물을 단숨에 달려와 뒤엎고, 대화를 단절함으로써, 동지를 단박에 회복하기 힘든 적으로 만드는 재주를 마크롱은 집권 기간 내내 보여주었다.
방화범 대통령을 둔 덕에, 프랑스인들은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덩이 하나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들끓고 있는 광경을 가슴 조이며 지켜보게 되었다.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독립을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 선거가 민의를 배반하지 않고, 온전히 반영하게 하기 위해선 수많은 피와 땀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누벨 칼리도니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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