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석 수보다 더 큰 이득" ‘극우 약진’ 유럽선거, 향후 파장은?
배경엔 이민·안보 불안…정치권 후폭풍 예고
9일(현지시간)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우파가 의회 1당을 유지한 가운데 당초 예상대로 극우 세력의 약진이 확인됐다.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에 참패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발표했고, 독일에서도 친(親)나치 논란을 일으킨 극우 정당이 2위에 올랐다. 사실상 ‘기성 정치권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었던 이번 선거에서 주요국 집권당이 무릎을 꿇으면서 각국은 물론 유럽연합(EU) 정치 지형 전반에 후폭풍이 예상된다.
중도우파 1위 유지했지만…예상대로 극우 약진
10일 새벽 1시 기준으로 업데이트된 유럽의회의 예상 의석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제1당 격인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은 전체 720석 중 189석(26.25%)을 얻어 유럽의회 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어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과 중도 자유당그룹(RE)이 기존보다 줄어든 의석으로 제2당(135석), 제3당(83석) 자리를 지킬 전망이다.
극우 세력은 예상대로 약진했다. 강경우파 성향 유럽보수와개혁(ECR)과 극우 정치그룹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현재 69석, 49석에서 각각 72석, 58석으로 의석을 늘릴 것으로 전망됐다. ID에서 퇴출된 독일대안당(AfD) 등 기존 정치그룹에 속하지 않는 극우 성향 정당의 의석 수도 확대됐다. 폴리티코 유럽은 "유럽의 정치적 중심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의회는 개표 결과를 반영한 최종 결과를 10일 오전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극우 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진 곳은 프랑스와 독일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출구조사에서 소속 정당인 르네상스당이 득표율 15%대로 극우정당 국민연합(RN, 31.5%)에 훨씬 뒤지자 즉각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오는 30일과 다음 달 7일 조기총선을 실시할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변화를 꾀하기 위해 대통령 고유 권한인 의회 해산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해석된다. 프랑스24는 "마크롱 대통령의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인 AfD가 부상한 반면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이른바 신호등 연정은 이에 밀리며 체면을 구겼다. 이번 선거에서 AfD는 득표율 16.5%를 달성해 2위에 오를 전망이다. 20%를 웃돌 수 있다는 1분기 여론조사 결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선거를 앞두고 나치 옹호 발언, 뇌물스캔들 등 거센 논란이 일었음에도 극우세력의 약진이 확인된 것이다. 이 밖에 극우 정당은 헝가리,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그리스, 네덜란드 등에서도 승기를 잡거나 약진했다.
예고된 약진...유럽의회 정치지형에도 여파 불가피
이러한 극우 돌풍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유럽이 직면한 안보위기, 내부적으로는 난민 등에 따른 이민자 급증 문제 등이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그간 현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플레이션이 치솟자, 난민 지원 정책에 대한 반발과 이를 노린 포퓰리즘이 심화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극우 부상의 요인으로는 팬데믹 대처에 대한 분노,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 등이 있다"면서 "이번 선거는 EU 주요국인 프랑스, 독일 정부의 실질적 약점을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회 정치지형에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EPP 주도의 대연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정치그룹 재편이 예상되는 데다 주요국인 프랑스, 독일 등의 정치 상황이 한층 복잡해지며 정치적 역동성이 커진 탓이다. 현재 유럽의회 내 ‘비공식 연립정부’로 불리는 EPP, S&D, RE는 각각 중도우파, 중도좌파, 중도를 표방한다. 하지만 극우 세력의 부상으로 인해 이른바 주류인 친EU 당국자들에겐 큰 도전이 예고됐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CNN 방송은 "극우 세력이 얻을 이득은 (의석) 숫자로는 미미해 보일 수 있으나 상당히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같은 우파라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지원, 친EU 여부 등 핵심 분야에서 입장차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책 방식 면에서 모두 다르다. 국내 정치가 강경파로 이동하면, 중도우파가 유럽의회 차원에서 강경파와 협력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정치지형 변동으로 EU 내 입법이 복잡해지고 혼란이 심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간 가디언 역시 "EU 입법이 한층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CNBC는 의석 수를 늘린 극우 세력이 난민 입국을 막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이는 등 의회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이민, 환경, 국방, 산업전략, EU 확대 등과 관련한 정책에 여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티그룹은 앞서 공개된 보고서에서 "유럽의 극우 및 극좌 정당 중 일부는 러시아,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잠재적으로 국방비 지출 증가를 막고자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컨설팅회사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는 "EU가 새로운 회원국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라며 "모든 후보국의 가입 협상이 부진한 진전을 보이면서 2029년까지 27개 회원국으로 남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EU 27개국 정상들은 오는 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비공식 정상회의를 열고 이번 선거를 토대로 한 지도부 구성 논의에 착수한다. EU 집행위원장 재지명이 유력한 EPP 후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유럽 시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강력한 유럽이다. 좌파, 우파의 극단에 맞서는 보루를 건설할 것"이라며 "우리가 그들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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