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 믿는 사람들에게

김성호 2024. 6. 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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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48]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김성호 기자]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나요?

얼마 전 가진 모임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수많은 연구가, 또 그 연구들을 격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졌던 연구까지도 반대의 결론을 내고 있음에도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공공연한 세상이다. 특히 한국을 벗어나 생활해본 이라면 반드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겠으나, 유독 한국에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굳건히 퍼져있는 듯이 보인다.

이날 모임 또한 같았다. 참석자 다수가 행복은 자산과 수입에 좌우된다고 믿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돈이 행복의 핵심조건이라고들 말했다. 바로 몇 분 전까지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케 할 수 있다며 사랑의 힘을 역설했던 이조차 돈이 있어야 행복이 달성된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 제가 사는 어느 지역과 과거 살았던 어느 지역을 비교하면서, 어느 곳은 교육수준이 높고 이웃들도 그러하고 다른 곳은 폭력적이며 어떠어떠하다고, 사실과 편견이 뒤섞인 민망한 말을 늘어놓았다.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포스터
ⓒ 와이드릴리즈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놉!

그러나 진실로 그러한가.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많은 연구가 행복과 돈 사이에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자산과 수입의 증가가,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일시적 쾌락을 증가시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돈이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소위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불리는 현상, 행복감이 소득 증가에 따라 올라가지 않고 정체되는 현상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증명돼 왔다. 삶에 대한 비관으로부터 비롯되는 자살이 저소득층에 한정되지 않고 선진국에서도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는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

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건 바로 관계다. 가정을 이룬 이들에게 배우자와의 관계는 행복에 절대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큰 영향을 받는다. 부모며 자식, 친구와 이웃, 동료들과의 관계도 행복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정되지 않은 이들로부터의 인정, 즉 명예며 사회적 성공도 일부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손잡고 마주하는 이들로부터 받는 지지만큼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원시사회, 또 절대빈곤 영역에 놓인 이들의 행복 수준이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의 생각만큼 낮게 나타나지 않는단 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아울러 파편화된 현대 도시에서의 삶에 비하여 원시사회며 빈민가에선 필연적으로 주변과의 관계를 훨씬 공고히 맺을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차이가 유의미하게 느껴질 테다.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스틸컷
ⓒ 와이드릴리즈
 
외톨이 편순이의 무미건조한 일상

말하자면 부가 없어도 만족스런 삶은 가능하다. 관계만 있다면. 그럼에 살피건대 우리 시대의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부가 없다면 만족스런 관계 또한 가질 수 없다고 느끼게끔 하는, 부가 행복과 불행마저 침탈하여 장악해버린 이 빌어먹을 시대의 초상으로부터 말이다.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는 1990년 생 일본의 젊은 감독 이시바시 유호의 첫 장편이다. 고교시절부터 예쁘장한 외모로 인기를 모았던 배우 카라타 에리카를 기용해 행복에 대한 담담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이즈카(카라타 에리카 분)는 동네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이다. 한때 회사생활도 했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 지 반년쯤이 되었다. 직장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올라온 도시에서 그녀는 홀로 삶을 꾸려간다. 걱정이며 실망할 부모의 얼굴이 그려져서 그 사실을 감히 알리지도 못하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삭막한 도시의 가엾은 외톨이다.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스틸컷
ⓒ 와이드릴리즈
 
때로는 작은 파장이 호수를 흔든다

굳이 특징이라 하자면 조금 소극적인 것이랄까. 누가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먼저 말하는 법이 없고, 낯도 제법 가린다. 모난 구석이 없고 남이 무엇을 청해오면 잘 들어주기도 하는 편이어서, 점주가 근무표에 구멍이 날 때마다 이이즈카에게 부탁하는 게 자연스런 일이 되었을 정도다.

영화는 가만히 이이즈카의 일상을 뒤따른다. 편의점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쉬고, 고작 그뿐인 소소한 나날이다. 누군가에겐 안온하고 누군가에겐 답답할 그 일상이 이이즈카에겐 희망없고 약간은 우울한 무엇처럼 보인다. 가만히 다리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거나, 옷장 안에 걸린 정장을 쳐다볼 때, 엄마에게 제가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말하지 못할 때가 그러하다. 때때로, 그리고 수시로 찾아드는 공허함을 이이즈카는 어찌어찌 마주한다.

그러나 어떻게 매번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그러나 어찌어찌 살아가는 이들이 그녀의 세상 뿐 아니라 내가 사는 이곳에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이즈카의 일상에 일어난 파문 같은 사건들을 주목한다. 일본이 한국보단 덜 외로운 나라인지 이이즈카가 근무하는 편의점은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함께 일한다. 자연히 다른 직원과 대화할 일도 생기는데, 저보다 몇 살 연하인 남자 직원에게 은근한 호감이 간다.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스틸컷
ⓒ 와이드릴리즈
 
밥은 쌀로 지어야 제맛이지!

더 중요한 일도 있다. 우연히 편의점을 찾은 손님 오오토모(이모우 하루카 분)가 제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이즈카와 중학교 동창사이, 딱히 친했던 건 아니지만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와 몇 차례 만남까지 갖게 된다. 오오토모는 중학교 때 도시로 이사를 왔고 지금은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이이즈카가 오오토모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식사하는 장면은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1인가구의 결핍을 단박에 드러낸다.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는 이이즈카가 제 삶, 또 제 마음 가운데 오오토모와 동료 남직원을 조금씩 들여놓는 모습을 비춘다. 특별히 대단한 사건도, 엄청난 관계도 없는 담담한 이야기 가운데 이이즈카의 삶이 전과는 전혀 다른 색을 드러내는 순간을 잡아낸다.

똑같은 편의점 근무자, 도시에서 홀로 살아가는 그녀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것 같지만, 이이즈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일을 그만뒀음을, 반년동안 그를 말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말하지 못해 미안했음을 말한다. 별스럽지 않은 일, 그러나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관계, 그리고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침의 공허를 다스리는 법을 이 영화가 말한다. 박평식과 같은 선배 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하여 '쌀로 밥 짓는 이야기처럼'이란 단평과 함께 5점을 주었다고 했다. 그렇다. 밥이란 쌀로 지어야 하고, 그런 이야기는 거듭 쓰여야만 한다고, 덜 유명한 후배 평론가는 이렇게 답하련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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