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칩워' 크리스 밀러 "中 반도체 펀드 성과 내겠지만 美 제재로 한계"
'칩워' 저자 크리스 밀러 美 터프츠대 교수
中, 10년간 막대한 투자로 생산 현지화 전념
당분간 반도체 자립 한계
美, 칩스법 2.0 내놓을 것
韓, 설계 부문 역할 확대·AI 칩 개발 과제
편집자주 -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글로벌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을 둘러싼 미·중 기술패권 전쟁은 점차 고조되고, 미국은 '과잉생산' 중국산 수입품 관세를 인상해 2차 무역 전쟁을 예고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만 바라보고 있지만 미 경제가 호황을 지속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의 피벗(pivot·정책 전환) 시점 역시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은 미·중 갈등과 미국의 산업·통상정책, 거시경제 환경 변화가 미칠 여파를 면밀히 주시하며 대응방안을 찾고 있다. 이에 아시아경제는 미국 거시경제·통상·중국·반도체 4개 부문에 걸쳐 미 석학과 전문가, 전직 통상 관료를 인터뷰해 주요 현안을 점검하고 향후 전망,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했다. 인터뷰 기사는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세계사 교수, 야솅 황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 교수, 데이비드 웨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 겸 브루킹스 산하 허친스 재정·통화정책 센터 소장, 바버라 위젤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순서로 싣는다.
"중국은 낸드플래시에서 이미 최첨단 기술에 도달해 한국의 메모리 시장 점유율을 위협하고 있고, 칩 설계에서도 경쟁력 있는 플레이어입니다. 최근 정부의 대규모 신규 반도체 보조금 펀드를 통해 지난 10년간 투자해 온 반도체 제조 능력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성과를 내겠지만,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기술 경쟁력은 당분간 비교 열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을 조명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칩 워(Chip War)'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세계사 교수는 최근 미국 보스턴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지난달 중국의 3차 반도체 펀드 조성과 관련해 "중국이 네덜란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반입 금지 등 실질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중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중국이 지난 10년간 막대한 투자를 통해 반도체 생산 현지화 노력에 전념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의 제재로 기술이 몇 년간 뒤처져 있어 당분간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비교 열위에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수출통제로 중국이 반도체 자립에 한계를 겪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그는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527억달러(약 73조원)의 보조금을 투입하는 '반도체지원법(CSA·칩스법)' 후속인 '칩스법 2.0'도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밀러 교수는 "한국이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설계 부문에서 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인공지능(AI) 지원 제품을 개발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주요 과제"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밀러 교수와의 일문일답.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위해 역대 최대인 3440억위안(약 65조원) 규모의 3차 반도체 펀드를 조성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노력이 성과를 낼 것으로 보나, 아니면 미국의 대(對)중국 수출통제로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보나.
▲중국은 2014년부터 반도체를 현지 생산화할 핵심기술로 선정했다. 반도체가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광범위한 기술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려 했다. 또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석유 수입만큼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어 생산을 현지화하길 원했다. 중국은 이미 지난 10년간 많은 투자로 낸드플래시에서 최첨단 기술에 도달했고, 반도체 설계에서도 경쟁력 있는 플레이어다. 이번 반도체 펀드 조성은 10년간 노력의 일환으로, 중국이 반도체 생산 현지화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미국은 2022년부터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엔비디아산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중국 수출이 막히면서 중국 화웨이산 AI용 GPU가 중국 시장에서 더 판매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수출통제로 중국이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화웨이 칩으로 엔비디아 칩을 대체한다면 화웨이에는 좋을 수 있으나 중국 전체로 보면 좋은 일이 아니다. 중국 AI 칩 생태계의 경쟁력이 비교 열위에 있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다만 아직 제재 초기 단계라 지켜봐야 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구형 반도체 관세를 인상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미국과 일본, 유럽, 대만은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구형 반도체 생산국가다. 이들 국가는 중국이 구형 반도체 자체 생산 능력을 구축해 자국 기업의 수익성을 위협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정부 보조금을 통해 비(非)시장적인 방식으로 구형 반도체를 생산한다면 중국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것이다. 이번 관세 인상 조치는 구형 반도체에서 중국 생산자를 배제하기 위한 조치다. 바이든 행정부가 수많은 반도체가 들어가는 커넥티드카 규제를 예고한 것도 자동차에 중국산 반도체가 탑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는 점점 더 많은 조치를 통해 중국산 반도체 구매 행위를 불법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로 만들고 있다. 미국 기업에 중국산 반도체를 사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일본과 유럽도 같은 생각이라고 본다.
-미국 대선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CSA도 여야를 막론하고 통과시켰고, 대중 수출규제에 대한 견해도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 대선 결과가 세계 반도체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칩스법 2.0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SA가 2026년 말 종료되기 때문에 칩스법 2.0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CSA를 지지했던 미 의회의 주요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중 상당수가 칩스법 2.0에 관심이 있고, 현재 초당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의회가 예산 압박을 받는다는 점은 문제다. 칩스법 2.0이 나온다면 보조금 지원과 투자 세액공제 규모가 CSA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보조금 전쟁이 '제로섬 게임'이란 지적도 나온다.
▲동의한다. 하지만 보조금 전쟁의 최대 플레이어는 중국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의 CSA가 있기 전 중국이 가장 먼저 국가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 보조금 전쟁을 시작했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특히 중국과 반도체 공급망이 긴밀히 연결된 한국에 상당한 도전이 되고 있다.
▲기회와 도전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있다.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중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어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어려운 과제다. 한국 기업은 몇 년 전과는 다른 규제 환경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을 주요 글로벌 파트너로 보고 있다. CSA 수혜자 역시 한국 기업 두 곳(삼성·하이닉스)이 될 것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뿐만 아니라 한중 반도체 전쟁 측면에서도 짚어봐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이 중국에 상당한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낸드플래시의 경우 중국 양쯔메모리(YMTC)가 한국을 급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수출통제로 YMTC의 반도체 장비 구매가 제한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한중 반도체 전쟁은 이미 펼쳐지고 있고, 이는 미·중 반도체 전쟁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슈다.
-한국 기업이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생산비용 상승에 대한 우려 또한 제기된다.
▲반도체 생산비용 차이를 낳는 핵심 원인은 생태계 발달 여부다.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제조에 대한 투자가 적었고 생태계 구축에도 덜 집중했다. 반면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생태계를 훨씬 더 활발하게 구축했다. 최근의 역학 변화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과 생태계가 발달하면 다른 국가와의 생산비용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 것이다.
-AI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은.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AI 반도체로 가득 찬 새로운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는 것은 엔비디아, TSMC, SK하이닉스 등 AI용 칩을 생산하는 반도체 기업에 좋은 일이다. 또 휴대폰, PC 등 다양한 기기에 AI를 적용하려면 새로운 유형의 반도체가 필요하게 돼 반도체 소비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지배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현재 엔비디아는 반도체 설계 품질뿐 아니라 이를 중심으로 구축된 소프트웨어 생태계 덕분에 매우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엔비디아를 따라잡으려면 우수한 반도체를 설계하는 동시에 생태계도 제공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당분간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지배력이 유지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한국 정부와 기업의 과제는.
▲한국은 이미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제조 부문에서도 성장의 여지가 있지만 미래에는 성장의 여지가 더 큰 설계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주요 과제는 반도체 설계에서 더 큰 역할을 하고, AI 지원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한국이 갖춘 첨단 제조 기반을 고려할 때 AI 기반의 제품 개발 및 제조에서 주요 역할을 할 수 있다.
크리스 밀러 교수는
밀러 교수는 미국 내 떠오르는 경제사학자다. 반도체의 기원과 이를 둘러싼 국가들의 패권 다툼을 조명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칩 워(반도체 전쟁: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위한 싸움)'의 저자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 대학원인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국제사 부교수를 맡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 등 기술과 지정학·경제·국제사·러시아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하버드대에서 역사학 학사, 예일대에서 역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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