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이제 뭐 먹고 살죠?"…韓 경제 이끈 건 잭팟 아닌 위기의식[기자수첩]

정동훈 2024. 6. 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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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산업계 관계자들과의 대화는 늘 이렇게 끝났다.

동해에서 현재 시장 가치로 2000조원이 넘는 석유·가스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먹고 살 걱정이라니.

동해 석유의 발견·대박 가능성을 제쳐두고, 우리 경제 리더십을 걱정해야 했던 일주일이었다.

현재 석유 시추가 우리 경제의 최우선 과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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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석유에 몰두한 韓 경제 리더십
위기의식 결여된 R&D 정책
경북 포항 영일만 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우리나라는 이제 뭐 먹고 살죠?"

지난 일주일, 산업계 관계자들과의 대화는 늘 이렇게 끝났다. 동해에서 현재 시장 가치로 2000조원이 넘는 석유·가스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먹고 살 걱정이라니. 지난 7일간 많은 이들이 꿈도 꾸지 않았던 '산유국의 꿈'을 꿨다. 다만 산업계는 차분했다. 석유 시추 산업이 자본·기술 집약적인 산업인 데다 탄소 중립 시대에 긴 호흡으로 정교하게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먹거리에 대한 근심은 역설적이게도 '동해 석유'로부터 나왔다.

누구보다 들뜬 것은 우리 정부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국정 브리핑을 열어 동해 석유·가스전의 성공 가능성을 언급했다. 대통령이 브리핑을 선택하지 않았던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분야 현안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칩스법 등 경제 현안, 대형 참사와 의·정 갈등, 각종 의혹 사건들. 지난 3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브리핑실에 들어선 윤 대통령은 140억배럴이라는 동해 석유·가스전의 최대 매장 추정치를 언급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주식시장이었다. 석유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해당 종목의 주가가 치솟았다. 누군가는 '우리도 이제 연금 걱정, 아파트 걱정 없는 나라에 사는 것 아니냐'고 했다.

석유·천연가스 발견은 온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동해 석유는 가능성의 영역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았던 '액트지오'사의 소유주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가 한국을 급히 찾아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프로젝트는 유망하지만 아직 누적 탄화수소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리스크(Risk)'라며 시추만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해 석유의 발견·대박 가능성을 제쳐두고, 우리 경제 리더십을 걱정해야 했던 일주일이었다. 현재 석유 시추가 우리 경제의 최우선 과제일까. 아직 부존 가능성도 알지 못하고 발견하더라도 경제성까지 따져봐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와 블록화, 기후 위기, 고금리 등 복잡다단한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 경제 성장의 동력은 석유도, 요행으로 얻은 잭폿 덕분도 아니었다. 우리 경제의 힘은 위기의식과 긴장감에서 나왔다. 석유 한 방울, 리튬 한 줌 생산할 수 없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일까. 우리는 늘 다음 먹을거리에 대한 갈구와 간절함으로 일해왔다. 다음 먹거리가 없음은 다시 굶을 수 있다와 동의어였다. 가발 공장에서 출발해 섬유,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배터리 등 한국 경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산업을 주력산업으로 교체해 왔다. 원료가 없으니 늘 생산 효율, 더 나은 프로세스를 고민했다.

이제 한국 경제는 자원의 빈곤이 아닌 리더십의 빈곤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다음 먹거리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리더십이 사라졌다. 더 이상 정부와 대기업들은 10년, 20년을 내다본 연구개발(R&D) 과제를 얘기하지 않는다. R&D 예산에 대한 중요성을 늘 강조하면서 올해 R&D 예산은 대폭 깎였다. 한방에 기댄 우리 리더십의 빈곤은 한국 경제 위기의 증거다.

산업IT부 정동훈 기자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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