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감독 김도훈의 재발견, 신의 한 수 되나
[이준목 기자]
싱가포르전 대승을 이끈 김도훈 축구대표팀 임시 감독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축구가 다급한 상황에서 '소방수' 역할로 투입된 임시 사령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김도훈 감독과 대표팀 모두에게 '신의 한수'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김도훈 감독은 199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출신이다. K리그 성남과 전북, J리그 빗셀 고베 등에서 맹활약했고 특히 성남 시절에는 K리그 3연패와 득점왕, MVP를 모두 휩쓸기도 했다. 국가대표에서도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도 출전하는 등 A매치 72경기에서 30골을 기록할만큼 활약했다. 하지만 하필 당시 A대표팀에서는 황선홍-최용수-안정환 등 뛰어난 공격수들이 많았던 탓에 만년 3-4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은퇴후에는 성남-강원-U20 대표팀 코치를 거쳤고, 2015년부터 인천과 울산, 싱가포르 라이언시티의 감독 등을 역임했다. 특히 울산에서는 FA컵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각각 1차례씩 차지했다.
하지만 김도훈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는 굴곡이 많았다. 감독으로 처음 데뷔했던 인천에서는 출발은 좋았지만 2년차에 접어들며 성적부진으로 사임했고, 울산에서는 암흑기를 전전하던 팀을 다시 강호로 발돋움시켰으나 정작 기대했던 리그 우승에 번번이 실패했다.
김도훈 감독은 울산에서 2번의 우승을 기록했으나, 그보다 더 많은 4번의 준우승(리그-FA컵 준우승 각 2회) 때문에 '만년 2인자'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각인됐다. 공교롭게도 울산의 ACL 우승은 김 감독이 이 대회를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는 것이 확정된 이후에 나왔다. K리그 내에서는 큰 경기에 약한 모습을 보였고, 베스트11-플랜A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울산 팬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다.
울산은 이후 홍명보 감독 체제에서 마침내 리그 우승의 한을 풀어내며 2연패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김도훈 감독이 울산의 전력을 이미 완성해 놓았다는 점에서 우승에 대한 공로는 적지 않다.
김도훈 감독은 2021년 싱가포르 라이언시티FC의 지휘봉을 잡아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해외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김 감독은 부임 첫해 라이언시티를 싱가포르 프리미어리그 정상으로 이끌며 마침내 울산에서 못다 이룬 감독 커리어 첫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2년차였던 2022년 7월 리그 경기 도중 상대 팀 코칭스태프와 난투극에 휘말리며 싱가포르축구협회로부터 출전 정지를 받았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구단과 계약을 중도해지하게 된다.
김 감독은 라이언시티 감독직을 끝으로 2년 가까이 야인으로 머물러왔다. 2006년부터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이래 한 해도 빠짐없이 현장에서 활동해왔던 김 감독이 이렇게 긴 공백기를 가진 것은 최초였다. 친정팀인 K리그 전북 현대(현 김두현 감독),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현 김상식 감독) 등 여러 국내외 클럽과 대표팀 감독직의 후보군으로 물망에 오르기는 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한동안 축구팬들에게 잊혀졌던 김도훈 감독은 2024년 5월, 공백기를 깨고 돌연 A대표팀 임시 감독으로 깜짝 선임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위르겐 클린스만의 경질 이후 차기 정식 감독 인선에 실패한 축구협회는 지난 3월의 황선홍 감독에 이어 다시 한번 임시감독 체제를 선택했고, 김도훈 감독을 두 번째 임시 감독으로 선임한 것이다.
▲ 김도훈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이 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선수들 훈련을 보고 있다. 대표팀은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중국과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최종전을 치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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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색깔 보여준 김도훈 감독
하지만 김 감독은 짧은 재임 기간에도 선수선발과 전술 등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 김민재-조규성-김승규 같은 핵심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빈 자리에 주민규-정우영같은 베테랑들은 물론, 배준호-박승욱-오세훈-하창래 등 A대표팀에 첫 승선한 신예 7명을 채워넣는 파격발탁으로 신구조화와 경쟁체제를 부활시켰다.
김도훈 감독은 "짧은 시간이지만 확실한 경기 플랜과 역할 부여를 바탕으로 우리만의 경기 방식을 팬들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다짐했고 그 약속을 실제로 지켰다. 첫 경기였던 싱가포르 원정에서 김도훈호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화력을 과시하며 7-0의 완승을 거뒀다.
싱가포르가 약체이기는 하지만 원정에서 상대를 확실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김도훈호의 골폭풍은 팬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해주기 충분했다.
또한 김도훈 감독은 A대표팀의 최대 무기인 손흥민-이강인을 전술적으로 어떻게 활용해 야하는지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김 감독은 손흥민과 이강인에게 익숙한 좌우 날개에 배치하고 높은 자유도를 부여하면서 주변 선수들이 유기적인 연계를 통하여 두 선수가 편하게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나란히 멀티골을 터뜨리며 동반 폭발했고, 원톱 주민규는 A매치 첫 데뷔골에 도움 헤트트릭까지 기록했다. 교체출전한 배준호도 A매치 데뷔 9분만에 데뷔골을 터뜨렸고, 황희찬까지 한골을 추가하며 김도훈 감독이 투입한 선수들마다 공격진이 고르게 폭발했다. 한국축구는 기분좋게 3차예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짓고 홀가분하게 중국전을 치를 수 있게 됐다.
김도훈 감독 개인에게도 임시 감독으로서의 이번 A매치 2연전은 현장 복귀를 인한 최상의 '쇼케이스'나 다름없다. 싱가포르전에 이어 11일 열리는 중국전마저 낙승을 이끌고 2연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김 감독의 주가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최근 새로운 감독을 구하는 K리그나 해외클럽 등에서 김 감독의 영입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한국축구는 이미 3차예선 진출을 확정하기는 했지만 톱시드 배정을 놓고 호주 등과 경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을 상대로 큰 점수차로 승리해야 톱시드 배정에 더 유리해지는 만큼, 김도훈호로서는 마지막 경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중국전을 끝으로 9월부터 시작되는 3차예선부터는 정식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전은 지난 4개월간 혼란을 거듭해 온 한국축구의 과도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경기인 셈이다.
김도훈호가 중국전 승리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김도훈 감독 본인과 한국축구 모두에게 기분좋은 '새로운 시작'을 선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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