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서 ‘극우’ 약진…향후 파장은(종합2보)
9일(현지시간)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우파가 의회 1당을 유지한 가운데, 당초 예상대로 극우 세력의 약진이 확인됐다.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에 참패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발표했고, 독일에서도 친(親)나치 논란을 일으킨 극우 정당이 2위에 올랐다. 사실상 ‘기성 정치권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었던 이번 선거에서 주요국 집권당이 무릎을 꿇으면서 각국은 물론, EU 정치지형 전반에 후폭풍이 예상된다.
예상대로 극우 약진…중도우파 1위 유지
10일 새벽 1시 현재 업데이트된 유럽의회의 예상 의석수 분석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제1당 격인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은 전체 720석 중 189석(26.25%)을 얻어 유럽의회 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현재 의석 수인 705석 중 176석(25.0%)을 소폭 웃돈다. 앞서 공개된 1차 분석 자료보다도 늘어났다.
이어 제2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이 135석(18.75%)으로 2위 자리를 지킬 전망이다. 다만 중도좌파의 의석 비중은 기존(19.7%)보다는 소폭 줄었다. 제3당인 중도 자유당그룹(RE, Renew Europe)은 현재 102석에서 크게 줄어든 83석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 강경우파와 극우 성향 정치그룹은 예상대로 약진했다. 강경우파 성향 유럽보수와개혁(ECR)은 현재 69석에서 72석, ECR보다 극단으로 분류되는 극우 정치그룹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49석에서 58석으로 의석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기존 유럽의회 정치그룹에 속하지 않는 극우 성향 정당의 의석수도 확대됐다. 앞서 ID에서 퇴출된 독일대안당(AfD)의 경우 독일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에서 2위를 차지하며 최소 16석 확보가 예상된다.
EPP 후보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EU집행위원장은 "오늘은 EPP에 좋은 날이다. 우리는 선거에서 승리했다"면서도 "우리 주변의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다"고 이러한 극우 부상을 경계했다. 그는 "외부, 내부의 세력이 우리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유럽을 약화시키고자 한다"면서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리티코 유럽은 "유럽의 정치적 중심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연합(EU)을 지지하는 주류 정당(EPP)이 브뤼셀의 권력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이번 결과는 유럽 정치를 우경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유럽의회는 개표 결과를 반영한 최종 결과를 10일 오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투표율은 51%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1994년(56.6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마크롱의 도박?" 佛 의회 해산… 獨선 극우 정당 2위 올라
극우 세력의 약진이 특히 두드러진 국가로는 프랑스와 독일이 손꼽힌다.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된 직후부터 주요 외신들이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질책", "마크롱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충격적 패배" 등의 평가를 쏟아낸 이유가 여기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출구조사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연합(RN)에 참패한 것으로 나타나자 즉각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에 따라 오는 30일과 내달 7일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변화를 꾀하기 위해 대통령 고유 권한인 의회 해산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민족주의자들, 선동가들의 부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 전체, 유럽 및 세계에서 프랑스의 위치에 위협이 된다"면서 극우 세력의 부상을 우려했다.
프랑스24는 조기 총선 카드를 두고 "마크롱 대통령의 도박"이라 평가했다. BBC방송은 "조기 총선을 소집한 것은 놀라운 일이자,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큰 리스크"라고 전했다. RN을 이끄는 르펜은 "우리는 국가를 다시 일으킬, 프랑스 국민의 이익을 수호할,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조기 총선을 환영했다.
EU 회원국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인 AfD가 부상한 반면 숄츠 총리가 이끄는 이른바 신호등 연정은 이에 밀리며 체면을 구겼다. 이번 선거에서 AfD는 득표율 16.5%를 달성해 보수 성향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에 이어 2위에 오를 전망이다. 20%를 웃돌 수 있다는 1분기 여론조사 결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선거를 앞두고 나치 옹호 발언, 뇌물스캔들 등 거센 논란이 일었음에도 극우세력의 약진이 확인된 것이다.
이와 함께 극우정당은 헝가리, 오스트리아에서도 승기를 잡았다. EU 정치그룹에 속하지 않은 극우 정치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승리를 선언했다. 키프로스, 그리스, 불가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도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이 승리하거나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단(Fdi)이 약 28%를 득표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극우 약진 배경엔 이민·안보 불안...정치권 후폭풍
이러한 극우 돌풍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대외적으로는 유럽이 직면한 안보위기, 내부적으로는 난민 등에 따른 이민자 급증 문제가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그간 현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플레이션이 치솟자, 난민 지원 정책에 대한 반발과 이를 노린 포퓰리즘이 심화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극우 부상의 요인으로는 팬데믹 대처에 대한 분노,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 등이 있다"면서 "이번 선거는 EU 주요국인 프랑스, 독일 정부의 실질적 약점을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발생한 슬로바키아 총재 피습 사건 등도 양극단으로 나뉜 유럽의 분열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현재 유럽의회 내 ‘비공식 연립정부’로 불리는 EPP, S&D, RE는 각각 중도우파, 중도좌파, 중도를 표방한다. 하지만 극우 세력의 부상으로 인해 이른바 주류인 친EU 당국자들에겐 큰 도전이 예고됐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EPP 주도의 대연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정치그룹 재편이 예상되는 데다, 주요국인 프랑스, 독일 등의 정치 상황이 한층 복잡해지며 정치적 역동성이 커진 탓이다.
CNN방송은 "이번 선거에서 극우 세력의 부상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다"면서도 "극우 세력이 얻을 이득은 (의석) 숫자로는 미미해보일 수 있으나 상당히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매체는 같은 우파라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지원, 친EU 여부 등 핵심 분야에서 입장차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책 방식 면에서 모두 다르다. 국내 정치가 강경파로 이동하면, 중도우파가 유럽의회 차원에서 강경파와 협력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정치지형 변동으로 EU 내 입법이 복잡해지고 혼란이 심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간 가디언 역시 "EU 입법이 한층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매체 CNBC는 극우 세력의 약진이 확인된 이번 선거 결과로 이민, 환경, 우크라이나 및 국방, 산업전략, EU 확대 등의 정책에 여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의석 수를 늘린 극우 세력이 난민 입국을 막고 기후정책을 후퇴시키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이는 등 의회에 압박을 가할 것이란 관측이다.
시티그룹은 앞서 공개된 보고서에서 "유럽의 극우 및 극좌 정당 중 일부는 러시아,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잠재적으로 국방비 지출 증가를 막고자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컨설팅회사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는 "EU가 새로운 회원국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라며 "모든 후보국의 가입 협상이 부진한 진전을 보이면서 2029년까지 27개 회원국으로 남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중도 주류에 대한 첫 시험대는 7월 중 예상되는 EU집행위원장 승인 건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극우 정당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EPP가 여전히 1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NYT는 "5년 전 불과 9표 차이로 승인을 받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연임을 위해 집중적인 로비를 펼쳐야 할 것"이라며 "(EPP의 1당 전망으로) 극우를 끌어들여야 할 상황을 간신히 피한 만큼, 이제 기후정책 등과 관련해 (극우 세력의 요구대로)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U 27개국 정상들은 오는 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비공식 정상회의를 열고 이번 선거를 토대로 한 지도부 구성 논의에 착수한다. EU 행정부 수반인 집행위원장 후보는 27~28일 EU정상회의에서 확정될 전망이다. 이후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집행위원장 후보는 유럽의회 인준 투표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의회 720명 중 최소 361명의 지지가 필요하다. 새 집행부는 오는 12월1일 공식 출범할 전망이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지지율 최저 경신보다 더 큰 충격…"이재명·野로 표심 움직여" - 아시아경제
- "그런거인줄 몰랐어요"…빼빼로 사진 올렸다가 '진땀' 뺀 아이돌 - 아시아경제
- 커피 28잔 주문에 "완전 XX" 쌍욕한 배달기사…놀란 업주는 눈물 왈칵 - 아시아경제
- "한국여자 본받자"…트럼프 당선에 연애·결혼·출산 거부한 美여성들 - 아시아경제
- 야박한 인심, 바가지는 없다…1인당 한끼 '1만원' 들고 가는 제주식당들[디깅 트래블] - 아시아경
- 축복받으려고 줄 서서 마신 성수…알고 보니 '에어컨 배수관 물' - 아시아경제
- "혈당이 300"…몸무게 38㎏까지 빠져 병원 갔던 연예인 - 아시아경제
- 속도위반만 2만번 걸린 과태료 미납액 '전국 1등'…대체 누구길래 - 아시아경제
- "휴대폰도 먹통"…50년만에 베일벗은 에버랜드 '비밀의 은행나무숲'[조용준의 여행만리] - 아시아
- "한국 안 간다"며 여행 취소하는 태국인들…150만명 태국 몰려가는 한국인들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