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도박 사이에 있는 투기 이야기

최종인 2024. 6.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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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금융투기의 역사>

[최종인 기자]

대통령실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국내에서 석유와 가스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정부는 시추를 준비하며 동해 심해 개발 프로젝트인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 준비에 나섰다.

한편 이에 대해서는 아직은 본격적인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과, 가정을 더한 전망에 불과하며 경제성이 있는지 의심된다는 비관적인 입장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대통령실 발표 이후 석유 관련 주식은 가격이 폭등했다. 한국석유, 흥구석유의 주가가 모두 30%가량 상승한 것이다. 참고로 한국석유는 한국석유공사가 아닌 아스팔트 업체이며, 흥구석유는 대구 경북 지역의 석유 도소매 업체이다. 온 증시가 석유 열풍에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읽어볼 만한 책이 하나 있다.
 
 금융투기의 역사
ⓒ 에드워드 챈슬러
 
에드워드 챈슬러는 역사학을 전공한 영국의 금융인으로, 네덜란드와 영미권, 일본에서 발생한 투기의 역사를 살펴보고 이 책 <금융투기의 역사>를 저술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세계 역사에 흔적을 남긴 투기의 사례집이다.

저자는 투기와 도박의 심리적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사람마다 투기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는 투기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하는 대신 투자와 도박 어느 사이에 투기가 자리 잡고 있다고 전제하고,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영국의 주식회사 설립 붐, 남해 버블, 19세기 남미, 철도 버블, 미국 금권정치 시대와 대공황, 일본의 버블경제까지 세계를 아우르는 투기 사례를 이해하기 쉽게 간단히 풀어서 설명해 준다.

저자에 따르면 세상에는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투기가 있어 왔다. 새로운 산업, 기술 등 무언가 새로운 것이 사회에 출현하면 장밋빛 미래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그 무언가 새로운 것은 운하나 철도같은 시설이었던 적도 있고, 남미나 미시시피 같은 지역이었던 적도 있다. 일본 버블 당시에는 동경만 개발, 초전도체, 상온 핵융합, 암치료제 등이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투기의 냄새를 맡은 금융업자나 부패한 인사와 같은 투기의 전위대가 나팔을 불고 미래를 목도하라고 외치면 엄청난 돈이 된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투기에 몰리게 된다. 놀랍게도, 투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투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이 버블 직전에 다른 우둔한 사람에게 털고 안전하게 쏙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탐욕으로 인해 일반적인 심리 상태가 아니다.
 
심리학자 페스팅어는 고통이 보상보다 크지 않을 경우 군중들은 인식의 부조화가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어낸다고 했다. 이를 증권판 용어로 풀이하면, 손실의 두려움이 수익에 대한 탐욕보다 커지는 순간까지 투자자들은 인식의 부조화가 주는 스트레스를 견뎌낸다는 말이다. - 331쪽
 
투기는 도박과 투자의 사이 어딘가에 있듯이, 투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자유와 규제 사이 어딘가에 있다. 영국과 미국의 버블 당시 일부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들은 투기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지만, 사람들은 신경과민이라고 무시할 뿐이었다.
 
운명의 순간이 1929년 9월 3일 찾아왔다. 이날 마침내 다우존스지수가 이해 최고점을 기록했고, 바로 하루 뒤인 9월 4일 추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투자자문업자 로저 배브슨이 이날 열린 연례 미국 경제인회의에서 증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경고한 것이다.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고 ...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며, 결과는 가혹한 경제공황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경고는 새시대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너무나 진부한 말들이 쏟아져나왔고, 한 신문은 배브슨을 '손실의 전령'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심지어 '파국이 올 것이라는 신경과민을 앓고 있는 환자'라고 주장하는 신문도 있었다. 또 증권 브로커들은 배브슨이 지난 2년 전에도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김을 뺐다. - 332쪽
 
1920년대 미국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영원한 번영을 구가하는 신경제의 시대에 도달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을 반긴 것은 대공황이었다. 꿈과 희망이 담겼던 내면 의식이 박살난 이후에는 무계획적인 투자에 대해 비판하는 주장이 인기를 끌었다.

공간과 테마에 대하여 약간의 변주만 이루어질 뿐, 저자가 소개해주는 금융투기의 전개와 결말은 늘 비슷하다. 환희에 찬 사람들이 불안 속에서 도망치다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자유를 찬양하던 사람들은 폭락에 개탄하며 울부짖고 비판자들은 규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투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또 새로운 투기가 온다.

이 책은 투기를 소개할 뿐 아니라 투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도 깊이있게 가르쳐 준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투기는 해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시장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투기꾼들이 기업에 자본을 공급하고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경제성장과 자원의 배분을 촉진하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런 해석에 비관적이다. 순간적인 주가변동에 일희일비하는 기술적 매매를 일삼는 투기꾼과, 과도한 차입금을 짊어지고 있는 헤지펀드들이 글로벌마켓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반박이다.

이 책은 90년대 후반에 저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 IT 버블 붕괴와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이야기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언젠가 투기가 사슬을 끊고 정신착란을 일으킨 환자처럼 날뛸 것이며, 진자처럼 자유와 규제 사이를 오갈 것이라고 경고하는 저자의 말을 잘 생각해보면 미래에도 투기는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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