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주주 확대’ 추진 논란…재계, 소송 남발·경영 자율 축소 우려
최상목 부총리도 검토발언
재계, ‘상법 갈라파고스’ 우려
정부와 정치권이 ‘이사(경영진)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상법에 추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자 재계가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너도나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돼 국내 기업 활동에 제약이 생길 거라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트렌드와 다르게 이중으로 경영진의 책임을 부과할 경우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인식을 키울 우려도 있다. 법 개정에 앞서 재계의 의견수렴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행 상법(제382조 3)에서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라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하나로 정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 5일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21대 국회 때 이용우 전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바 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상법에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한 뒤 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은 기업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2021년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시키기 위해 물적 분할을 했다. 이와 동시에 LG화학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한때 100만원에 육박했던 LG화학 주가는 지난 7일 기준 38만원으로 내려앉았다. 일반 주주들이 피해를 호소했지만, LG화학의 경영 판단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구제를 받지 못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주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상법 개정에 나섰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빈대 잡자며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고 우려한다. 주주들에 의한 소송이 지나치게 쉬워져 기업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단기투자 주주와 장기투자 주주, 배당 선호 주주 등 주주 개인의 이해관계는 모두 다르다. 기업의 경영 활동에 각기 다른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가령 배당과 대규모 투자, 전략적 인수합병(M&A) 등에 대해 일부 주주는 만족하고, 일부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불만을 가진 주주들은 경영진의 충실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기업 경영진은 회사와 일부 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면 이로 인한 분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가령 투자를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신주 발행을 빠르게 해야 하는데도 일부 주주에 의한 손해배상 리스크를 검토하느라 시간을 할애하는 식이다. 신주 발행 시 기존 주주 지분을 희석해 주주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으므로 기업은 주주 손해를 줄일 전략도 함께 세워야 한다. 경영 위기 상황에선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다. 과도한 책임이 부담스러워 기업 이사 재직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재계 일부에선 한국이 ‘상법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이사에게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부과하고 있다. 대신 이사의 배임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는 식으로 주주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영국도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지고, 미국 24개 주가 따르는 모범회사법도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내 상법이 개정될 경우 경영진에게 회사와 주주에 이중으로 충실의무를 지우는 유일한 국가가 될 것”이라며 “기업들과의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쳐 상법 개정이 필요한지 여부를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윤준식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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