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도 자책 말아야… 남성이 난임여도 충분히 임신 가능"
‘남성 난임 명의’ 강남차병원 비뇨의학과 김동석 교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난임 치료를 받은 환자는 약 25만 2000명이다. 남성 난임 환자는 전체의 35.4%로 약 9만 명에 달한다. 환자 수가 많지만, 난임 검사를 받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난임 극복 카페에는 아직도 ‘지금껏 내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성 쪽 문제’였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요즘 의학계는 난임에 남성 쪽 요인과 여성 쪽 요인이 거의 반반이라고 본다. 난임으로 병원을 방문한 부부 모두 난임 검사를 받길 권하는 이유다. 강남차병원 비뇨의학과 김동석 교수에게 남성 난임 극복법을 물어봤다.
세계보건기구(WHO) 정의에 따라 1년간 정상적인 성생활을 했음에도 임신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 난임·불임으로 진단한다. 정액 검사를 해 보니 정액 상태가 정상보다 좋지 않은 경우에 난임·불임에 남성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요즘은 결혼 나이가 늦어지고 있으므로 남성이 35세 이상이면서 6개월간 임신 시도를 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한 경우 정액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다.
보통의 남성은 정액 1cc당 정자 수가 5000만 개에서 1억 개 정도다. 무정자증이거나 정자 숫자가 정액 1cc당 100만 개 아래라 자연 임신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경우에 불임으로 판정한다. 수술이나 임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임신에 성공할 수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난임이라고 한다.
- 남성 난임일 땐 무조건 임신이 안 되나?
가능성이 떨어질 뿐 임신은 가능하다. 아내와의 상호보완이 중요하다. 남성의 정자 상태가 좋지 않은데 아내가 뒷받침해줘 임신이 잘되는 사례도 있다. 반대로 정액 상태가 좋은데 임신이 잘 안 되는 부부도 있다. 정액 검사가 유용한 것은 맞지만, 이 검사 결과만으로 임신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신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남성 난임 사유 중 가장 흔한 것은?
고환 주변 혈관인 정계정맥이 지나치게 확장된 정계정맥류가 가장 흔한 질환이다. 일반 남성 10~15% 정도에게서 관찰되지만, 남성 난임 환자는 30~35% 정도에게서 확인된다. 첫째 임신은 잘됐는데, 둘째가 잘 안 생겨서 검사받는 사람의 절반 정도는 정계정맥류가 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정계정맥류가 있다고 다 임신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아이를 여럿 낳고 문제없이 살았는데, 50~60대에 병원에 와 보니 정계정맥류가 심각한 상태였던 사람도 있다. 이 밖에도 정자 통로가 폐쇄되는 경우가 약 15%를 차지한다. 정자는 정상적으로 생산되는데, 정자 배출 통로가 막혀서 정액을 통한 자연 임신이 어려운 것이다. 선천적으로 정관이 없거나, 전립선 부근에 생긴 낭종이 정자 배출을 막는 사례가 여기 해당한다. 약 30%의 환자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환자마다 원인이 다양해 수많은 사례를 본다. 그중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근육을 키우려고 남성호르몬을 투여했다가 난임이 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남성호르몬은 95% 이상이 고환에서 만들어지는데, 고용량 남성호르몬을 외부에서 투여하면 고환이 일하지 않게 된다. 고환에서의 정자 생산도 덩달아 중단된다. 남성호르몬 투여를 중단한 지 6개월에서 2년이 지나면 본인의 본래 정자 생산량이 회복되기는 한다.
당뇨병도 영향을 미친다. 혈당 수치를 관리하지 않으면 혈관과 신경이 망가져 사정기능이 떨어진다. 이에 사정해도 정액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몸 안에서만 분출돼 자연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 고환 쪽을 다쳤거나, 어릴 때 잠복고환을 교정하지 않은 것이 원인일 때도 있다. 고환은 체온보다 낮아야 정자 생성이 활발하다. 고환이 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정자를 못 만든다.
항암치료도 난임과 관련있다. 이에 요즘은 항암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가임력 보존을 위해 정자를 냉동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환자가 너무 어려 자위로 정액을 채취하기 어렵다면, 수술을 통해 얻은 고환 조직에서 정자를 채취하기도 한다. 염색체 이상이 원인일 때도 있다. 남성 5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하는 클라인펠터증후군이 대표적이다.
- 정자 상태가 어떨 때 비정상으로 판정되나?
WHO에서 발간한 매뉴얼이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액검사 기준이다. ▲정액 양 1.4mL ▲정자 수(농도) 1600만/cc ▲정자 운동성 42%(직진운동성 30%) ▲정상모양정자 4% 보다 낮은 경우에 비정상으로 판정한다. 다만, 이 기준은 임신시도 1년 이내에 배우자의 임신이 확인된 3589명 남성의 정액 검사 결과를 분석해, 하위 5%를 기준으로 제시한 수치다. 정액 검사 결과가 이 기준에 미달하지만, 임신에 성공한 남성들이 연구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검사결과치가 기준치보다 낮다는 이유만으로 난임이라고 기계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환자의 전반적 조건을 고려한 전문가 해석이 중요하다.
- 정액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어떤 검사를 추가로 받는지?
그날 몸 상태에 따라 검사 결과가 들쭉날쭉할 수 있어서 검사를 여러 번 한다. 첫 번째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보이면 2주에서 한 달 간격으로 2회 이상의 반복 검사가 권장된다. 처음에는 수치가 낮았는데 두 번째 검사에선 정상이 나오는 사람도 있다.
정계정맥류가 있는지, 고환은 괜찮은지, 전립선에 낭종 같은 게 있어 정자 배출로가 막히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하기도 한다. 남성 호르몬과 뇌하수체 호르몬 등 호르몬 검사는 기본으로 한다. 근육을 키우려 남성호르몬을 투여하는 사람들은 뇌하수체 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은데 남성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온다.
정자 수가 너무 적고 질도 극도로 떨어지는데 정자 통로가 폐쇄되지는 않은 경우, 고환 자체의 기능이 떨어진 상태일 수 있다. 염색체 이상이 원인일 수 있다. 남성이 지닌 Y염색체에서 깨지거나 부서진 곳은 없는지, 불필요한 X염색체가 더 끼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염색체 검사로 확인한다. X염색체가 일반 남성보다 하나 더 많은 경우 클라인펠터증후군으로 진단한다. 클라인펠터증후군은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아 고환 기능이 떨어지는 것 말고는 생활에 크게 불편한 것이 없다. 생각보다 환자가 흔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
- 염색체 이상이 있으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만 가능한가?
Y염색체에 약간의 결손만 있는 등 염색체 이상 정도가 크지 않다면 충분히 자연 임신이 가능하다. 염색체 이상이 심하다면 정자를 선별해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할 수 있다. 염색체 이상이 있는 남성이라도 정상인 정자가 있다. 정상 정자를 골라서 임신하면 자손에겐 염색체 이상이 없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경우 정자와 난자를 결합해 얻은 수정란을 대상으로 착상 전 유전검사(Preimplantation Genetic Testing, PGT)를 해서, 염색체가 정상인 것을 예비 산모에게 이식한다.
- 정자 배출 통로가 막힌 경우, 통로를 확보하면 자연 임신이 가능한가?
고환염을 앓거나 고환을 다쳐서 정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막힌 경우엔 그렇다. 막힌 곳을 우회해서 정관을 부고환의 새로운 부위에 연결하는 ‘정관 부고환 문합술’을 통해 정자 통로를 확보하면 된다. 과거엔 고환에서 정자를 채취해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문합술을 받고 자연 임신을 시도해볼 수 있다. 전립선에 생긴 낭종이 정관을 막았다면, 요도 쪽으로 내시경을 넣어 낭종을 터뜨려 준다. 그럼 정자가 정액에 섞여 나오게 된다.
드물게 선천적으로 정관이 없는 사람은 수술적 교정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엔 고환에서 채취한 정자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할 수밖에 없다.
- 정자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켜야 할 생활 습관은?
‘이것만 하면 정자 상태가 좋아진다’는 식의 처방은 없다. 몸의 전반적인 상태를 좋게 해야 정자 질도 올라간다. 술담배는 삼가고, 고환이 뜨거운 곳에 노출되는 상황을 피한다. 사우나나 반신욕은 안 하는 게 좋다. 너무 꽉 끼는 바지와 속옷은 입지 않는다. 심혈관계에 좋은 식단을 챙겨먹고, 운동은 유산소든 근력이든 하는 게 좋다. 스트레스가 정자 질을 상당히 떨어뜨리므로 스트레스 관리도 한다. 체중 관리를 하니 정자 질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꽤 많다. 과체중이나 비만이라면 정상 체중으로 되돌아가려 노력해야 한다. 정계정맥류가 있다면 치료하고, 당뇨병 환자는 혈당 관리를 잘 해야 한다.
- 가임력을 높이는 데 도움되는 영양소가 있을까?
항산화제를 복용해서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도움될 수 있다.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정자 DNA가 깨진다. 정자 DNA가 깨져서 파편화된 것이 임신 결과와 시험관아기 시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들이 있다. 데이터가 쌓여나가는 단계라 아직 근거가 탄탄하지는 않지만, 평상시 건강 관리 목적으로 먹어서 나쁠 것은 없다. 엽산, 아연, 코엔자임Q10, 비타민E, 셀레늄 등 항산화제가 대표적이다. 정자 운동성에 도움을 주는 카르티닌도 있다. 앞서 말했듯 이들 영양소가 임신에 도움된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없으므로 영양제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운동, 생활습관 개선, 스트레스 조절을 병행해야 한다.
- 약물 치료로 가임력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나?
뇌수술이나 뇌종양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뇌하수체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뇌하수체 호르몬이 부족해 고환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호르몬 치료가 가능하다. 뇌하수체 호르몬을 주사로 투여하면 된다. 당뇨병이 심해서 사정해도 정액이 분출되지 않는 사람은 교감신경을 조절하는 약물로 사정을 촉진할 수 있다. 발기가 안 돼 임신 시도가 어렵다면 발기를 원활하게 하는 약물을 쓴다.
마땅한 이유가 없는데도 임신이 잘 안 되는 남성들은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비특이 요법을 시도할 수 있다.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작용하는 클로미펜이라는 약을 한두달 복용하는 것이다. 뇌하수체에 이상이 없는 남성이 이 약을 먹으면 뇌하수체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 고환에서 만들내는 남성 호르몬 수치도 조금 상승한다. 남성 흐르몬 수치가 높으면 정자 질도 좋아질 것이라는 이론에 바탕을 둔 전략이다.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남성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자 중, 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임신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남성 연령대가 높아지면 정자 DNA 변형이 생겨 자손이 조현병, 강박증 같은 질환에 취약해진다는 말이 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상대적 위험도가 높아지는 건 맞다. 그러나 수만명 중 1명에서 5명 정도로 높아지는 수준이라, 현실에선 체감되지 않을 정도의 차이다. 난임으로 병원을 찾는 부부가 실제로 이런 걱정을 많이 하는데, 안심해도 된다.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차의과학대학교 비뇨기과학교수로서,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남성난임클리닉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대한비뇨의학회, 대한남성과학회, 대한생식의학회 등 다양한 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고환에서 채취한 정자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한 폐쇄성 무정자증 환자가 그를 찾아온 적 있었다. 김동석 교수는 이 환자에게 정관 부고환 문합술을 집도해 정자가 정액으로 나오게 함으로써 자연 임신을 시도할 수 있게 했다. 환자들이 최대한 빨리 난임을 졸업하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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