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장, 부실채권]②PF로 죽쓴 증권사 NPL로 만회해볼까…너도나도 실탄 확보
한투증권, 작년부터 NPL 시장 진출 준비
경쟁 과열 시 저가 매수 어려울수도
하반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부실채권(NPL) 물량이 대거 쏟아질 것에 대비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삽도 뜨지 못하고 이자로 연명하던 사업장도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면서 일부 토지들은 공매에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NPL 펀드 가동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다만 알짜 사업장과 부실 사업장을 끼어 팔 경우 사실상 자금 회수가 어려운 사업장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맡게 될 수 있고, 목 좋은 사업장은 매수 경쟁이 과열되면 싼값에 사서 수익을 낸다는 투자 취지와 어긋나게 물건의 할인율이 미미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연합자산관리는 최근 회사채 발행을 통해 5000억원의 모집이 확정됐으며, 하나 F&I는 회사채를 통해 2000억원(최대 4000억원)의 자금 조달에 나섰다. 우리금융F&I는 1200억원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했다. 키움F&I도 회사채를 통해 1000억원의 자금을 모았으며, 대신F&I 또한 회사채 발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PF 구조조정 영향으로 관련 부실채권 물량이 시장에 풀릴 것에 대비해 실탄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NPL 투자는 부실로 판명된 채권을 저렴하게 사서 이후 정상화 과정을 통해 사업을 완료하면 수익을 내는 구조다. 기존에는 부동산 PF 사업장들이 만기를 수년씩 연장하는 등 버티기에 나서며 NPL이 시장 매물로 나오지 않았지만, NPL 매각이 늘자 이를 경쟁적으로 매입하려는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 NPL 투자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재작년까지 정상적으로 나와야 할 NPL 물량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눌려 있던 물량들이 수면 위로 나오면서 신규 부실채권이 다시 늘어난 영향 때문인지 작년부터 매 분기 1조5000억원 이상의 NPL 매각물량의 투자 타당성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매력적인 투자안과 적정 가격을 산출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부실채권 물량의 실사 및 투자 검토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증권사, NPL 투자서 기획 '자금 확보 집중'
증권사들도 자금 유치에 가세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월 부동산 PF 관련 전략을 수립하고 부실화한 부동산 PF 자산 등을 사들이는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 북을 설정했다.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는 부동산 및 인프라 투자, 사모 대출, 지분투자 등 뛰어난 수익성을 가진 모든 특수 자산을 투자 대상으로 한다. 그동안 한국투자증권은 계약금 대출, 브릿지론 등 고위험 PF 딜을 주로 취급해왔는데 부동산 PF 경기가 꺾이자 NPL 투자로 방향을 튼 셈이다. 4월엔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의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 TPG 안젤로고든과 업무협약을 맺고 국내 부동산 금융시장에서 저평가된 프로젝트를 발굴하기로 했다.
한국투자증권 PF 사업본부 관계자는 "작년부터 업무협약 등을 통해 NPL 시장을 준비했다. 현재 부동산 자산들의 시장가격이 많이 내려오고 있는 만큼 기회는 많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거시적 환경을 면밀히 분석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모든 투자는 거시적 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채권 보전을 통한 엑시트 방안을 구조화해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NH투자증권도 2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기관전용사모펀드(PEF)를 출시했으며 메리츠증권도 PF 대출 펀드를 조성할 방침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배드뱅크(대신F&I)를 자회사로 보유한 대신증권은 올해 새로운 먹거리로 아예 NPL 투자를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대신 F&I관계자는 "결국 핵심은 사업성이 좋은 우량채권을 전략적 투자로 낙찰받는 것"이라며 "좋은 물건이란 자산의 본질적인 가치(Value)가 시장의 가격(Price) 대비 낮은 것을 말하며, 투자 검토단계부터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20여년간의 축적된 다양한 포트폴리오의 투자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략적인 투자를 통해 이를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알짜 매물 찾아야…고난도 투자 '주의'
하지만 자칫 기업들의 저가 매입 경쟁이 출혈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들린다. NPL은 말 그대로 부실하다고 판단되는 채권을 싼값에 매입해 이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라 물건의 매입 가격이 중요하다. 또 할인된 가격에 가져온 채권을 회수 가능한지도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나마 우량한 물건에 매수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데 계획한 대로 낮은 가격에 매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PF 관련 부실채권인 경우 개별 건으로 매각하는지, 묶어서 매각하는지 매각 방식도 살펴봐야 한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채권을 건건이 매각한다면 문제없지만, 괜찮은 사업장을 기초자산으로 한 채권과 손실이 확정적인 사업장을 담보로 한 채권을 다 같이 끼워파는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회생 불가능한 사업장도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만약 공동주택 관련 부실채권을 매입한 뒤 사업이 마무리돼도 분양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구조라면 부동산 경기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통상 착공에서 분양까지 2~3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나빠질 대로 나빠진 분양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도 있지만, 문제는 인건비, 자재비 등 주변 비용이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고공행진 하는 분양가도 분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즉 저평가된 물건을 사고도 자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
일각에서는 NPL 시장에서 알짜 매물을 찾는 것은 폐지 더미에서 진주를 줍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국내 저축은행 관계자는 "시행사가 자금 회수를 요청했을 때 이를 내줄 여력이 있는지 등을 봐야 하고 NPL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투자사는 부실 채권들은 줍줍한 뒤 이 중에서 소위 말하는 로또가 터지면 이를 통해 나머지 부실채권의 손실을 상쇄하기도 한다"며 "그만큼 NPL 투자는 고난도의 투자이고 회수가 되고, 수익까지 안겨주는 매물을 골라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전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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