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누구나 오가는 명품 사랑방”
지리적 한계에도 70만 관람객 찾아
김외철 관장, 뛰어난 직원 역량 바탕
지역 대표 기관으로 해양과학 대중화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있다. 위로는 갈령산을 경계로 강원도와 접한다. 서쪽은 경북 봉화군, 남쪽은 영양군과 경계를 같이한다. 오른쪽으로는 넓고 푸른 동해를 앞마당처럼 두고 있다.
울진군은 내비게이션 기준 승용차로 서울시청에서 약 3시간 40분가량 걸린다. 대전시청에서는 3시간 30분, 부산시청 기준 3시간 15분 정도 소요된다.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출발하면 5시간 17분 걸린다. 한반도 동서남북 출발지 기준으로는 그나마 강원도(속초시청)가 2시간 8분으로 가장 가깝다.
이처럼 울진군은 큰 도시를 기준으로 했을 때 무척 먼 곳이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국가 기관도 찾기 어렵다. 올해 개관 4주년을 맞은 국립해양과학관(이하 해양과학관)이 사실상 유일한 ‘국립’ 기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광풍이 몰아치던 2020년 7월 31일 문을 연 해양과학관 초대 관장은 농림해양수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를 거친 관료 출신 서장우 국립수산과학관장이 맡았다.
현 김외철 관장은 지난 지난해 11월 20일 자로 2대 관장을 맡게 됐다. 초대 관장이 관료 출신으로 기관 안정화에 소임을 다했다면, 김 관장은 해양과학관을 대외에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역사가 짧은 데다 코로나19 시국이다 보니 해양과학관 존재 자체가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해양과학관이) 알려졌어도 많은 제약이 따르던 시기라 사람들이 찾아오긴 힘들었을 것이다. 마침 제가 2대 관장으로 취임할 무렵에는 코로나19 상황도 끝나던 차였고, 그래서 제 취임 소명 첫 번째로 해양과학관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겉옷에 ‘울진 국립해양과학관’ 새겨 홍보
김 관장은 지역사회를 먼저 공략했다. 우선 울진군 주민들에게 해양과학관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애썼다. 그는 자기 겉옷에 ‘울진 국립해양과학관’이란 글씨를 새겼다. 국립해양과학관 글씨보다 ‘울진’이란 두 글자를 더 크게 넣은 것도 지역에 대한 애정 표현의 하나다.
그렇게 울진과 해양과학관이 새겨진 옷을 입고 온 동네를 누볐다. 지역에서 하는 행사에는 그가 빠지지 않았다. 지역민들은 그에게 ‘출마하는 사람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출마자라는 오해까지 받으며 발품을 판 결과 지역사회에서 해양과학관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역 학교를 비롯한 금융기관, 관공서 등과 업무협약을 맺으며 상호 관계를 만들어 간 효과가 컸다.
김 관장의 동분서주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취임 6개월 만인 지난달 15일 누적 관람객 수가 7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4월 기준 4만6339명인 울진군 인구의 15배가 넘는 달하는 수치다.
“해양과학관을 찾은 70만 인구가 어딜 가겠나? 어디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어디에서 잠을 잘까? 해양과학관이 울진군과 함께 성장해야 하는 이유다. 해양과학관이 알려지면서 울진군 관계자들도 우리 직원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있다. 그 보람으로 종교시설, 교육시설 등을 우리가 초대도 하고, 반대로 제가 인사를 가기도 하는 거다.”
올해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목표로 하는 해양과학관은 다른 지역에서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자신들만의 장점으로 승부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는 국립해양과학관이다. 해양수산부 산하 과학관은 유일하다. 해양과학 관련 전시는 물론 교육과 연구, 체험까지 모두 완비한 전문 기관이다. ‘해양과학이 궁금하다면 울진을 가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 계획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양과학관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관람객이 찾게 된 것은 임직원들의 노력이 중요했다. 관장 의지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김 관장은 직원과의 대화, 소통을 매우 중요시한다. 경영 철학 1순위로 봐도 무방하다.
직원들 전문성 키우려 ‘토론 동아리’ 만들어
김 관장 방은 통유리로 돼 있다. 누구나 밖에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유리문도 항상 열어뒀다. 작은 공간이지만 누구나 들어와 구경할 수 있도록 ‘작은 해양과학관’ 형태로 꾸몄다.
김 관장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아침마다 직원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는 인사(하이 파이브)를 한다. 직원들 의욕을 고취하면서 활기 넘치는 하루를 만들어 주고 싶단 의미다. 김 관장이 일정상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 경영지원본부장이 대신할 정도로 ‘하이 파이브’에 진심이다.
직원들 신분증(사원증) 모양도 바꿨다. 기존 신분증 디자인이 너무 경직돼 있다는 생각에서다. 자신이 신분증 교체를 제안했지만, 디자인은 직원들 전체 의견을 따랐다.
“관장이 어떤 의사 결정을 하면 사업은 쉽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이 오래가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모든 임직원이 함께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내가 팀장급 사원들에게 ‘스스로를 미래 관장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관장 탓에 직원은 힘들 수 있다. 정규직은 40명 남짓한 작은 기관이다 보니 소소한 업무 하나만 늘어도 개인에게는 큰 부담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해양과학관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이 급격히 늘어난 게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직원들 복지에 미흡했다”고 말한 김 관장은 특히 직원들 정주 여건이 다른 기관에 비해 떨어지는 점을 아쉬워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제가 취임하면서 직원들로선 일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우리 직원들 업무 강도가 세다는 것도 잘 안다. 인력과 예산 모두가 늘어나야 할 부분인데, 이는 모두 내가 해야 할 역할이다. 부처(해수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국회 등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내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1만2000명의 네트워킹을 총동원해 1명의 인력, 한 푼의 예산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다.”
“개인 역량 총동원해 직원 복지, 인력·예산 늘릴 것”
해양과학관을 알리는 동시에 해양과학의 대중화를 꿈꾸는 김 관장은 주입식보다는 놀며 만지고 느끼는 교육을 강조한다.
“국민 대다수는 해양과학 비전문가다. 그들이 보는 눈과 우리 직원들이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우린 연구하는 기관이지만 전시와 교육도 한다. 과학을 가까이 느끼려면 일방적 주입으론 안 된다. 영유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박사급 지식인들이 어려운 용어를 쓰며 설명하면 이해가 되겠나? 그냥 놀면서 만지고 느끼도록 하는 게 미래 과학을 위해 효과적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해양과학의 대중화’를 꿈꾸는 김 관장이지만 직원들에겐 전문영역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비전문가로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학관을 만드는 것과는 별개로 직원들은 본인의 전문지식을 계속 키워야 훗날 수준 높은 ‘대중 해양과학관’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관내 동아리인 ‘공소시효’는 직원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대표 사례다. ‘공부하는 소중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뜻을 담은 공소시효는 지난 1월 자발적 학습공동체를 구성, 점심시간을 활용해 매주 2회 이상 토론하고 공부하는 모임이다.
애초에는 김 관장을 포함해 4명으로 시작한 모임이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협력사 직원을 포함해 전체 임직원의 30%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
“구성원의 60% 이상이 다양한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직원들은 가진 역량이 뛰어나다. 자율 토론으로 야외시설물 서비스 개선 방안이나 사회 배려층 이동 편의성 향상 등의 의견이 나왔고, 이를 실제 적용해 시설을 개선하기도 했다.”
김 관장은 취임 후 지난 6개월여를 한눈팔지 않고 달린 세월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경험하지 못한 속도감으로 직원들이 ‘페이스’를 맞추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도 “작은 목소리를 크게 듣고 함께 성과를 일궈가는,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과학관을 만들겠다는 뜻은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취임식 때 노동조합에서 건넨 꽃바구니와 편지를 퇴임 때까지 간직하겠다는 김 관장은 앞으로 ‘킬러 콘텐츠’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세계에서 찾아오는 명품 해양과학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내놓은 보도자료만 해도 다른 기관들 1년 치가 넘는다는 것 잘 안다. 그만큼 직원들이 고생하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2대 관장으로서 그냥 고요하게만 있어서는, 조직 관리만 하는 기관장으로만 남는다면 내 역할을 방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직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일은 밀고 나가지 않겠지만, 저보다 해양과학관을 더 사랑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바탕으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국민 누구나 오가는 명품 사랑방을 함께 만들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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