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9년 전 "강제노동 시인"…군함도 전례 사도광산 협상 무기 되나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제외한 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려는 일본의 시도를 막기 위한 외교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일 간 협의의 시작점은 ‘하시마(端島) 탄광(일명 군함도) 전례’가 될 전망이다. 지난 2015년 일본은 군함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꼼수 등재'를 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세계 앞에서 ‘조선인이 강제로 노동한 사실’을 시인했다.
한국이 이런 전례를 활용할 수 있는 이유는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 때문이다. 이코모스는 지난 6일 등재 보류와 함께 “전체 역사를 알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에도 시대로 한정해 사도광산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던 일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앞서 2015년 군함도 등재 시도 때도 일본은 강제노역(1940년대) 시기를 제외한 1850년에서 1910년대로 한정해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당시에도 이코모스는 전체 역사를 알리라고 권고했고, 한·일 협상의 판도도 순식간에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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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협상 출발선 되는 '군함도'
사도광산에 대한 연구 권위자인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는 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양국이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사례를 놓고 사도광산에 대한 협의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강 대표는 “이번 이코모스 권고의 핵심은 관련국과 협의를 하라는 것으로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에서 강제성을 인정했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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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등재 '전체 합의'로 이뤄져
한국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이라는 점은 군함도 등재 당시보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통상 유산 등재는 21개국 전체 합의(컨센서스)로 이뤄진다. 위원국 하나라도 반대하면 컨센서스는 불가능한데, 한국이 투표권을 갖고 있는 만큼 이런 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이와 관련, 일본이 끝까지 고집을 부려 협상이 사실상 결렬되고, 투표로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최악의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측 기류다. 투표까지 간 뒤에는 위원국 3분의2가 찬성해야 등재가 결정되는데, 사실 어느 쪽도 충분한 표를 얻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한국의 위원국 임기는 오는 2027년까지로, 일본이 2025년까지만 위원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에 비해 길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까지만 위원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일본 입장에선 올해 등재되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 올해 등재에 필사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등 다른 피해국들이 존재한 군함도와 달리 사도광산에서는 한국인 강제노역만 이뤄졌다는 점은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그만큼 객관적 증거 확보가 힘들 수 있고, 국제 여론전에서 한계로 작용할 소지도 있어서다.
달라진 정치 환경은 '변수'
달라진 정치 환경도 변수로 꼽힌다. 2015년 협상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었던 데 반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역대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군함도에서 ‘의지에 반해 강제로 노동했다’는 것을 인정하고도 보수 여론의 비판을 돌파할 수 있었던 아베 전 총리와 달리 오는 9월 재선을 노리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사도광산 협상에셔 양보처럼 비치는 결정을 하는 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셔틀외교 재개에 나서는 등 한일관계 개선이 이뤄졌지만 ‘역사 문제’가 양국 정상의 새로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한·일 협상이 국민감정을 거스르는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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