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나무보다 숲을 보는 세제 개편을
문재인 정부의 장기 재정전망에 대한 지난주 감사원 발표를 보며 ‘감사원이 제대로 밥값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정치 감사’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이번 발표엔 감사의 독립성을 의심할 만한 대목이 없었다. 해외 사례 참고에 재정학계의 조언까지 듣고 균형 있게 판단한 점도 눈에 들어왔다. 2020년 한 해 네 차례나 추경을 했던 문재인 정부는 장기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는 실무진의 반대에도 장기 재정전망 비율을 의도적으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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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전망 무력화는 문 정부 잘못
요즘 재정학자 중장기 증세 거론
감세 경쟁이 세수 줄이진 말아야
」
이걸 ‘통계 조작’이라 표현하면 좀 과하다고 본다. 장기 재정전망은 인구 추계와 마찬가지로 ‘추계’다. 무슨 족집게 예언이 아니라 전제나 가정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정부가 처음 장기 재정전망을 했던 2015년엔 정부의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에 연동했다. 재량지출은 법적으로 반드시 써야 하는 의무지출을 제외한 나머지 지출이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불가피하게 늘어나기에 의무지출은 커질 수밖에 없다. 홍 전 부총리는 의무지출과 재량지출을 합한 총지출을 경상성장률에 연동시키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되면 의무지출이 자연 순증하니 향후 재량지출이 마이너스로 나온다고 실무진이 반발했다. 하지만 홍 전 부총리는 정부 의지로 할 수 있다고 밀어붙였다.
마이너스 재량지출 증가율은 힘들지만 정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독하게 마음먹으면 못 할 바도 아니다. 현 정부도 재량지출 관리에 나섰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출 구조조정을 안 하면 재량지출 증가 폭이 거의 없다고 국무위원들과 인식을 공유했다”고 했다. 재량지출 동결이나 억제가 미래 정부의 정책 의지에 달려 있긴 하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의지를 장기 재정전망에 담는 건 제도의 취지와 어긋난다. 장기 재정전망은 현재의 정책이나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때 재정 총량의 변화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래야 조기경보 수단으로 의미가 있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앞으로 운동 열심히 하고 금주·금연하면 좋아진다고 하면 맞는 말이지만 그런 검진에 돈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홍 전 부총리는 이런 식으로 장기 재정전망을 하나 마나 한 일로 만들었다. 이게 그의 진짜 잘못이다.
감사보고서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총지출을 경상성장률에 연동할 경우 향후 재량지출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넘어 아예 음수(陰數)로 나올 수 있다는 부분이다. 재량지출에는 공무원 인건비 같은 경직성 경비가 포함돼 있어 현실적으로 음수가 될 수 없다. 의무지출이 경상성장률만큼만 늘어도 재량지출이 쪼그라들어 재정의 손발이 꽁꽁 묶이는 미래가 눈앞에 있다. 그런 정부는 존립할 수 없다. 요즘 재정학자들이 중장기 증세 방안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야 정치권의 ‘감세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종부세·상속세 등 세금 고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낡고 현실과 맞지 않아 곳곳에서 불만이다. 야당의 중도 확장을 노린 정략에서 시작됐다고 깎아내릴 일은 아니다. 정치권이 관심을 갖고 치열하게 토론해 구부러진 세제를 반듯이 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다만, 감세 위주로만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개별 세목의 합리화를 추구하다 전체 세수가 줄어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개별적으론 맞는데 전체로는 틀리는 ‘구성의 오류’는 경계해야 한다. 개별 세수가 하나 줄어들면 추가 세원을 더 확보하겠다는(one-out one-in) 절제가 필요하다. 종부세를 폐지하려면 재산세 누진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를 함께 제시하고, 금융투자소득세를 굳이 폐지하겠다면 증권거래세는 원상 회복시켜야 한다. 당장은 아니어도 어차피 증세는 불가피하다. 감세의 산을 룰루랄라 내려가다 나중에 증세의 산을 다시 오르려면 코피 터질 수 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조망하는 세제 개편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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