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우리 몸 안에 있는 신비한 시계
불면증에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충을 잘 모를 것이다. 밤늦게 어두운 방에서 조용히 누워서 눈을 감고 있어도 왜 잠이 오지 않을까. 며칠간 그렇게 잠을 설쳐서 피곤하기는 말할 수 없는데도 왜 눈이 떠지는 것일까. 잠 잘 자지 않는 어린아이를 기르는 부모들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던질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불면증이 이상한 게 아니라 밤이 되면 다들 저절로 잠이 온다는 게 더 신기한 것이다. 특별히 고단하지 않아도 전깃불을 환히 켜놓더라도, 잘 시간이 되면 잠이 드는 리듬이 인체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시계를 보고 시간을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과 뇌는 잠 잘 시간이라고 저절로 알아차린다. 해외여행으로 시차 적응에 고생해 본 사람은 다 잘 알 것이다. 우리 몸은 출발지의 시간을 따르고 있고, 도착지의 시간이 그와 다르면 거기에 즉시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몸은 어떻게 해서 출발지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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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잘 시간 알려주는 생체시계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도 있어
지구 자전 주기에 적응해 진화
작동원리 아직 모르는 것 많아
」
인체의 신비로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오묘한 것으로 꼽히는 점은 시간을 알아차리는 생체시계이다. 24시간을 주기로 신체의 여러 가지 기능과 상태가 규칙적으로 변하는 것을 과학자들은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이라 명명하였다. 잠이 들고 깨는 것이 가장 명백한 내용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활동이 그렇게 주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체온도 24시간을 주기로 소폭 진동하며, 각종 호르몬의 분배나 신진대사의 속도도 일주기 리듬을 따라서 왔다 갔다 한다.
세균도 가지고 있는 생체 주기
더 놀라운 것은, 인간이나 다른 고등동물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이 그런 리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각종 꽃송이가 아침에 열리고 저녁에 오므라드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였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식물학자 테오프라스토스가 기원전 4세기에 이미 보고하였다. 그런데 나팔꽃이 아침에 개화하는 것을 보고 해가 떠오르는 데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일주기 리듬은 그렇게 단순히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1729년 프랑스의 과학자 드메랑은 움직이는 식물 미모사의 활동 상황이 24시간을 주기로 변한다는 것을 관찰하였고, 이 리듬이 온종일 깜깜한 곳에 두어도 계속 표출된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일주기 리듬이 벌이나 초파리 등 곤충에서도 발견되었다. 그 후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어, 심지어 세균이나 이스트조차 신진대사의 주기적 리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주기 리듬이란 용어는 1959년에 루마니아 출신의 미국 생물학자 할버그가 창안해 냈다.
왜 이렇게 각종 생물의 생리가 주기성을 지니게 되었을까? 좀 막연하지만, 지구가 24시간에 한 번씩 자전하면서 해가 뜨고 지는 주기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환경에 순조롭게 적응해서 살도록 생물들이 진화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몸에 내재한 생물학적 시계는 자체적으로 작동하지만 지구 위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하면 외부적 신호를 며칠간 받으면서 시각을 다시 맞추는 시차 적응이 된다.
그러나 얘기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가장 신기한 것은, 외부에서 오는 신호를 차단한 상태에서 표출되는 인간의 일주기 리듬의 주기는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 정도라고 한다. 창문 없는 방에 사람을 넣은 후 온종일 모든 환경을 변화 없이 유지해 주었을 때 24시간마다가 아니라 약 25시간마다 잠이 들고, 다른 신체 기능도 더 길어진 그 리듬을 따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어서 그렇게 진화가 되었단 말인가? 게다가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쥐와 같은 야행성 동물의 자체적 리듬은 24시간보다 더 짧다고 한다. 또 우리 몸이 가진 정규적 리듬은 24시간의 일주기성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 1초 정도의 주기로 박동하는 심장부터 음력으로 한 달 주기로 돌아오는 여성들의 월경까지 온갖 작용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세포 내 생화학적 작용
그러한 리듬들이 어떻게 해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연구도 많이 진전되었지만, 아직도 확실하지는 않다. 일주기 리듬에 관하여 현재 가장 정설로 간주하는 것은 세포 내에서 이루어지는 생화학적 작용에 관한 이론이다. DNA 내에 그런 주기성을 주관하는 유전자가 있다. 그 유전자가 생산하는 특정 단백질이 있고, 세포 내에 그 단백질의 함량이 높아지면 그것의 생산을 억제하는 장치가 있다. 그런 상호작용의 피드백을 통해 주기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꼭 DNA와 관련된 것만도 아니고, DNA도 없는 적혈구 세포의 기능도 일주기 리듬을 따른다고 한다. 유전자의 발현보다 더 단순한 생화학적 리듬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단세포 차원에서 생물의 리듬이 생긴다는 것을 놀라운 일이고, 화학 반응이 주기적일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신기하다. 그렇다면 생물의 삶이 따지고 보면 결국 화학적이라는 환원론적 함의를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로 분자들도 시간을 잴 수 있는 감성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무리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시계의 작동원리는 추의 진동 등 물리적인 것이지 생물학적 원리는 아니다. 그런데 시간을 안다는 것은 인간과 같은 지성과 감성을 가진 동물의 근본적 본성이기도 하다. 우주는 그렇게 여러 차원이 미묘하게 엮여있는 것인가. 과학이 밝혀내야 할 과제는 아직도 산적해 있으며, 우리 몸 자체부터 그렇게 신비롭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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