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도시 문화 지형을 바꾸는 미술관 건축

2024. 6. 1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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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지난해 여름 파리에 머무는 동안 그곳의 문화 인프라를 비교적 세밀하게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미술관 외에도 주로 시내에 산재한 특수박물관 (자연사, 진화, 과학, 인류학, 장식, 원시미술, 도서관, 신전, 묘지 등)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한동안 파리가 쇠퇴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미술관, 박물관의 다양성과 풍부한 컬렉션, 최근 미술시장·아트페어(Paris+Par Art Basel)의 도약으로 파리의 명성과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21세기 들어 거대 자본이 투입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프랑크 게리 설계)과 피노 컬렉션(안도 다다오 설계)은 혁신적인 미술관 건축, 영향력 있는 전시로 현대미술의 쌍벽을 이루며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대중적 관심이 이런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 역사 도시 파리의 문화 인프라
미술관 건축, 도시의 삶에 영향
리모델링 앞둔 서울시립미술관
도시의 문화 정체성 기여 기대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프랑크 게리 설계, 2014년 개관. [사진 이준]

1977년 파격적인 디자인(리처드 로저스, 렌조 피아노 설계)으로 논란과 함께 개관한 퐁피두센터는 올림픽 이후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강철 기둥과 원색의 파이프, 배관 시설 등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퐁피두센터는 마치 문화발전소를 암시하듯 역동적인 건물의 구조가 특징적이다. 건축물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원통형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파리 시내를 바라보는 풍광은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 회고전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방대한 양의 스케치와 콘셉트 드로잉, 진일보한 모형의 제작 기술과 공간 연출도 흥미로웠지만 전시의 압권은 몽마르트르 언덕 위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보이는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초고층 모형을 도시의 스카이라인처럼 연출한 아이디어였다.

사실 미술관 건축이나 세계적인 건축가들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계기가 있었다.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리움미술관 신축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프랑크 게리, 장 누벨 등의 건축사무소를 방문하고 그들의 건축물을 견학한 적이 있다. 리움의 참여 건축가(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 이외에도 리처드 마이어, 노먼 포스터 등의 유명 건축물을 답사하면서 건축이 도시의 문화 지형과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괴테는 공간이 주는 미적 감흥을 두고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으로 표현했다. 아름다운 건축은 그 공간과 구조, 디테일을 통해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혁신적인 건축가들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과학기술에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술관 건축’은 건축가들의 미적 이상을 실현하면서도 도시적 맥락과 공공성의 관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올해 기관과 전시의 의제를 ‘연결’과 ‘건축’으로 정하고 ‘노먼 포스터’와 ‘시공(時空) 시나리오’ 두 개의 관련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시립미술관이 지역별로 특성화된 분관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도시와 건축, 지역 네트워크를 함께 다루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두 전시에서 드러난 ‘큐레이터십’과 연계 내용은 아쉽기만 하다. 노만 포스터 전시의 경우 파리에서 보았던 스케치와 드로잉 노트 같은 원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초대형 회사의 건축 스튜디오를 견학하는 느낌이었다. ‘현대 건축의 거장’, ‘아시아 최대 규모’를 표방하면서도 오직 1개 층만을 기획전시로 활용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2개 층을 할애한 ‘시공 시나리오’ 전시는 공공 건축의 생애 주기에 주목하여 현대미술가들을 선정한 기획전이지만, 노만 포스터 혹은 건축적 의제와 어떤 연결성이 있는지 전시의 내러티브가 불분명했다.

서소문 본관은 좋은 위치와 프로그램, 무료 관람 혜택 등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선호하는 방문 장소이다. 그럼에도 ‘도시경관(cityscape)’과 미술관 건축, 공간 디자인의 측면에서 이렇다 할만한 기관의 스타일을 드러내지 못했다. 국가 유산으로 지정된 구 대법원 청사의 건축적인 조건이나 기증 상설실의 애매한 위치도 딜레마였다. 다행히 올해 초 서울시립미술관은 2026년까지 서소문 본관의 리모델링 계획을 발표했다. 광장, 지하공간을 포함하여 어떻게 창조적 공간으로 변신이 될지 기대된다. 리움 개관 이후 데이비드 치퍼필드, 헤르조그 앤 드뫼롱, 믈라덴 야드리치 등 국제적인 건축가들의 미술관 프로젝트가 서울의 지형도를 서서히 변모시키고 있다. 국제공모를 통해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설계에 김찬중, 김성한 등 국내 건축가들의 참여 기회도 확대되었다. 뛰어난 건축가, 도시 설계자는 ‘건축이 예술이 되는 방식’을 보여주며, 특정 장소를 넘어 도시의 패턴(맥락)과 문화 정체성에 기여한다.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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