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이코노믹스] 금리 인하·부동산 정책 완화 신중하게 추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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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틀대는 부동산 가격, 급등 막으려면
가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총아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소비자가 좋아하게 된 물건은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상승한다. 이러한 가격 변화를 보고, 기업은 이윤을 늘리고자 가격이 상승한 물건의 생산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 소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인위적 시장 개입 없이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스스로 작동해 소비자가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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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금리·대출 완화로 집값 상승
늘어난 가계 빚으로 부담 커져
부동산 값 급등 막으려던 세금
실효성 없이 조세 저항만 야기
잘못된 시장 기대심리 부추길
금리와 규제 정책 미스 피해야
」
2014~21년 서울 아파트값 2.5배 급등
이런 시장경제 체제에서도 정부나 중앙은행은 종종 가격 결정에 개입한다. 특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나 통화량을 조정해 금융 시장의 가격인 금리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금리 정책은 원래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90년 전 쓴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의 처방에 따라 경기 변동과 실업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나 정부의 대출 규제 조절 정책은 자칫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 폭등을 가져올 수 있고, 폭등한 부동산 가격이 결국 폭락하면 금융 위기까지 야기할 수 있어 늘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한국의 경우 2014년 이후 2021년까지 서울의 아파트값이 2.5배나 폭등했다. 전셋값도 70% 급등했다. 집 없는 서민은 멀어져 가는 내 집 마련의 꿈으로 좌절하고, 집값과 함께 오르는 전셋값으로 더욱 좌절했다. 주택담보대출도 470조원 넘게 증가해 집을 구매한 집주인도 가계 부채의 큰 짐을 안게 됐다.
싼 이자 속 늘어난 대출이 집값 자극
이러한 부동산값 폭등은 금리 정책과 부동산 대출 정책에 기인했다. 중앙은행이 돈을 빌리는 값인 금리를 낮추고 정부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을 늘리는 정책을 취하면 집값과 전셋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집을 팔려는 사람은 50명밖에 안 되는데, 집을 사려고 5억원씩 저축한 실수요자들이 100명이라고 하자. 실수요자가 모두 집을 사기 위해 경쟁하면 집값은 5억원에 결정될 것이다.
이때 은행이 싼 이자로 대출을 해주면, 실수요자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남들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서 집을 사려 할 수 있다. 특히 금리가 낮을수록, 예를 들어 금리가 0%에 가까우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니 누구나 은행 돈 빌려서 집을 사려 할 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100명이 모두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 경쟁하게 되면, 결국 집값은 은행 대출만큼 오른다. 은행이 1인당 5억원씩 대출해 주면, 집값은 10억원까지 오를 수 있다. 결국 실수요자를 위한다는 은행의 대출과 저금리로 인해 집을 산 사람들은 은행 대출 5억원만큼의 빚을 지고 10억원에 집을 사게 된다. 금리를 더 낮출수록 그리고 1인당 주택 대출을 더 늘릴수록 집값은 더 오른다. 은행이 5억원이 아니라 10억원 대출해 주면, 집을 산 사람들은 10억원만큼 빚을 지고 15억원에 집을 사게 된다. 낮은 이자율과 주택 대출이 가계 부채만 늘리고 집값만 올린 것이다.
전셋값도 마찬가지다. 낮은 이자율에 은행이 전세대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전셋값은 더 오른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늘려도 전셋값이 오른다. 집값이 오르면 이에 따라 전세를 주려던 집주인이 마음을 바꿔 집을 팔 수 있다. 그 결과 전세 공급이 줄어들어 전셋값이 오르게 된다.
부동산, 가격 상승→공급 증가 안 돼
다른 재화와 달리 부동산은 가격이 오른다고 생산이 바로 늘어나지 않는다. 땅 위에 짓는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공급이 제한돼 있다. 일정한 위치의 부동산, 예를 들어 서울 강남 지역의 땅은 가격이 오른다고 공급이 증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동산 대출을 증가시키는 정책은 부동산 공급을 늘리지 않은 채 집값과 전셋값, 가계 부채만 늘릴 위험이 있다. 특히 저금리 정책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 완화와 동시에 이뤄지면 수요 증가와 함께 은행의 주택 및 전세 대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그만큼 집값과 전셋값이 급격히 오를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초이노믹스’로 상징되는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불을 붙였다. 2014년 7월에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는 LTV를 70%, DTI를 60%로 일괄 상향 조정하는 부동산 대출 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한국은행은 이에 발맞춰 2014년 기준금리를 2.0%로 낮추고, 이어 2015년 1.5%, 2016년 1.25%로 인하했다.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이 2015년 40% 이상 늘며 3년 새 200조원이나 증가했다. 저금리 정책이 집값 상승의 부채질을 하고 가계 부채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미 집값에 불이 붙은 2017년 이후 정부는 부동산 급등을 저지하고자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중과, 공시 가격 현실화 같은 세제 정책을 중심으로 한 대책은 조세 저항만 일으키고 의도와는 달리 가격 급등 저지에 실패했다.
그 이유는 부동산 가격 급등의 근본 원인인 저금리에 대해 크게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급등함에도 한국은행은 금리를 2020년에 0.5%까지 낮추는 등 이 기간에 2% 이하의 낮은 저금리를 지속해서 유지했다. 특히 이 기간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출수록 서울시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더욱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김세직의 이코노믹스 2월 20일자 참조)
일본의 저금리, 버블 붕괴·금융 위기로
다행히 2021년 하반기 들어 금융위원회가 가계 대출 총량 규제를 통해 주택 대출을 강력히 규제하고 한국은행이 0.5%까지 낮아져 있던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에 숱한 부동산 대책에도 그칠 줄 모르고 상승하던 집값이 마침내 2021년 10월을 피크로 해 2022년 대선까지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낮은 금리와 대출 규제 완화가 부동산 폭등의 원인이었음을 보이는 또 다른 증거였다. 이후 한국은행은 금리를 3.5%까지 올리는 인상행진을 이어갔고, 부동산 가격은 안정화돼 왔다.
그러나 최근 빌라 전세 사기의 여파로 아파트 전세 수요가 증가하면서 서울시 아파트 전셋값이 1년째 오르고 있다. 전셋값 상승에 더해 금리 인하 및 부동산 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로 집값도 다시 꿈틀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때 정책적으로 자칫 방심해 민간에 잘못된 부동산 기대 심리를 심어주면 단기적으로 집값이 다시 크게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계 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에 다다른 지금 만약 정책 미스로 과도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일어난다면 결국은 가격 급락으로 반전할 위험성도 커지는 만큼 매우 세심한 금리 및 부동산 정책이 요구된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저금리 정책은 수년간에 걸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러온 뒤 결국 1990년대 초 부동산 가격 버블 붕괴와 금융 위기로 이어졌다. 향후 집값이 또다시 크게 오르고 그 결과 금융 위기 압력도 커지는 일이 벌어지면 국민은 이같은 정책 실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 분명하다.
■ 부동산 불패신화, 언제까지 지속될까
「 완화적 금리 정책 및 부동산 정책은 단기적으로 집값 급등을 불러올 수 있지만, 장기적 측면에서는 집값이 급등하는 만큼 갑작스러운 집값 급락도 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집값이 과도하게 오르면 오를수록 오히려 미래 집값 변화에 대한 민간의 기대가 상승에서 하락으로 반전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가계 부채가 과도하게 쌓여 있는 상황에서는 저금리 정책에 의해 유발된 집값 상승이 결국 집값 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가계 부채가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산 사람의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커졌다면 이들이 빚을 갚기 위해 언젠가는 집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국주택금융공사 고제헌 박사와 추정한 바에 따르면 가계 신용과 전세 및 준전세 보증금을 더한 한국의 가계 부채는 202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40%로 세계 1위 수준인 만큼 이 가능성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인구 감소와 성장률 추락도 장기적인 집값 하락을 불러오는 요소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급격한 출생 증가를 경험한 베이비부머가 고령화하면서 향후 이들이 은퇴 후 소비를 위해 소유하고 있던 집을 결국 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1970년 100만명이던 출생아 수가 최근 30만명 이하로 줄어든 출산율 하락으로 인해 젊은 층 인구가 급격히 줄어 왔다. 그 결과 잠재적 주택 수요자인 30~44세 청년층 인구가 잠재적 주택 공급자인 65~79세 노년층 인구보다 현재는 340만명 많지만, 10년 뒤 오히려 100만명 적게 되고, 20년 뒤에는 350만명 이상 적게 된다. 이에 더해 성장 추락으로 이들의 소득도 거의 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년층이 내놓는 대량 매물을 사줄 청년층의 수요 부족으로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부동산 급등기에 투자 목적으로 집을 구매한 집주인이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한 믿음이 깨져 집값이 결국은 내려갈 거라고 예상을 바꾸기 시작하면 어느 시점에선가 갑자기 서로 앞다퉈 집을 팔려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집값 하락은 20~30년 뒤가 아니라 훨씬 앞당겨 일어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집값이 급격히 하락하면 그동안 부동산 붐을 지탱해주기 위해 크게 부풀어 오른 가계 부채가 부실화하며 금융권도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금융 위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미 세계 최고수준인 가계 부채를 현 수준 이하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늘리는 부동산 정책이나 저금리 정책에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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