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땡시 뉴스’
중국의 TV 채널은 대략 3000개쯤 된다. 이 중 자체 제작 시설을 갖춘 성(省)·시(市)급 방송사 채널만 1000개가 넘는다. 이들 채널 중 상당수는 오후 7시(현지시각)만 되면 일제히 같은 프로그램을 튼다. 관영 CCTV가 만드는 ‘신원롄보(新聞聯播)’가 그것. 당연히 뉴스로는 최고 시청률이다.
뉴스의 시작은 언제나 ‘시진핑(習近平)’이다. 그가 어디를 방문했고, 누구를 만났고, 무슨 말을 했는지 등이 항상 톱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남부 지역에 100년 만에 한 번 있을 폭우가 내려도 신원롄보는 ‘시진핑 주석의 인력 양성 방안 논술집이 출판됐다’는 뉴스를 가장 위로 올려 보도한다. 폭우 피해 뉴스는 후반부에 한 꼭지 나올 뿐이다.
CCTV는 관영 매체라는 속성상 당정 고위 인사의 동정을 많이 보도한다. 그러나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후 주석의 일정은 중요하게 다뤄지긴 했지만, 매일 톱 뉴스로 나오지는 않았다. 아예 없을 때도 잦았다.
‘신원롄보’는 시 주석의 권위가 모든 사안을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5공 시절의 ‘땡전 뉴스’를 연상케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경제와도 관련된 문제다. 중국 경제 성장을 가능케 했던 건 ‘권위주의의 연성화(軟性化)’다.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당의 권력을 조금씩 풀었다. 그만큼 민영 부문의 영역은 넓어졌다. 그래서 나온 말이 ‘56789 경제’다. 민영기업이 전체 세수의 50%, GDP의 60%, 기술 혁신의 70%, 고용의 80%, 기업 수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당이 일을 안 해 만든 ‘성과’다.
시진핑 집권기 들어 역류했다. 당은 풀었던 권력을 다시 죄기 시작했다. ‘먼저 부자가 돼도 좋다’는 선부(先富)의 열망은 ‘함께 부자 되어야 한다’라는 공동부유의 이데올로기에 눌려 위축됐다. 민영보다는 국유 부문이, 시장 자율보다는 정책 조정이 더 강조되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역점 산업 분야에 돈이 몰리고, 그쪽만 성장한다. 전기차, 전기 배터리, 태양광 등이 그런 식으로 컸다. 국내 시장은 위축됐는데 제품은 쏟아지니 기업은 해외로 제품을 밀어낸다. ‘디플레 수출’이라 비난받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 청년 실업 등 많은 경제 문제가 ‘권위주의 경성화(硬性化)’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데올로기를 강조한 정책이 시장 자율을 압도한 결과라는 얘기다. 오늘도 이어질 신원롄보의 ‘땡시 뉴스’는 이를 상징하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요실금 팬티 죽어도 안 차" 치매 노모도 욕구 있었다 | 중앙일보
- '부산 집단 성폭행' 가담한 선수가 손아섭? NC "모두 사실 무근" | 중앙일보
- 태어나자마자 찡그린 아기…부모가 놓치면 안될 '비밀 신호' | 중앙일보
- 빵 280개 주문 '노쇼'…고소당하자 억울하다는 여성, 무슨 일 | 중앙일보
- 공항서 내 캐리어만 늦게 나오는 이유…'이 것' 때문이었다 | 중앙일보
- 치과의사 이수진, 스토커 협박에 폐업…치료비 먹튀 논란엔 | 중앙일보
- 김병만 "갯벌 고립돼 숨진 어머니, 손주 줄 홍합 캐려다가…" | 중앙일보
- 폭락한 테슬라 딸에게 떠넘겼다…강남 엄마의 전략 | 중앙일보
- 심수봉 "10·26 때 그 분 당하는 것 보고 제 정신 아니었다" | 중앙일보
- "연∙고대 점프 지금이 기회" 의대 신드롬에 덩달아 급증한 이것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