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威而不猛(위이불맹)

2024. 6. 1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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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선생님께서는 온화하시면서도 엄하고, 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으셨으며, 공손하면서도 편안하셨다.” 제자들이 기록한 공자의 평소 모습이다.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른 두 개념을 혼동하지 않아야 현명한 사람이다. 온화함과 엄하지 않음이 다르고, 위엄이 있는 것과 사나움을 부리는 것이 판이하며, 공손한 것과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분명히 다르건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이들 양자 사이의 관계를 수시로 혼동하고 착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다분히 그런 혼동과 착각을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엄정 대응’ ‘선제 타격’만 외칠 뿐 온화한 배려가 없고, ‘강력 조치’ 하겠다며 사납게 으름장을 놓을 뿐 위엄이 없으며, 외교에서는 공손이 지나쳐 안절부절못하는 행태마저 보이는 경향이 있다.

威: 위엄 위, 而: 말 이을 이, 猛: 사나울 맹. 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아야. 23x58㎝.

이른바 ‘요순시대’의 요 임금과 순 임금은 임금의 옷을 입고 서 있기만 해도 천하가 다스려졌다고 한다(垂衣裳而天下治). 온화하면서도 엄하고, 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으며, 최적의 공손이 몸에 익어 절로 우러나왔기 때문에 그런 다스림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지도자들도 불필요하게 으름장을 놓는 ‘엄정 대응’ ‘강력 조치’ ‘선제 타격’ 등 ‘떠벌이는’ 사나움을 접고, ‘다문 입’의 숙고로 진정한 위엄을 갖추기를 염원해 본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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