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화장실 앞 사무실
“화장실 앞에 어떻게 대표실을 둡니까.”
22대 국회 개원 첫 주 눈에 띈 건 3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발언이었다. 조 대표는 이날 혁신당에 배정된 국회 본관 220·223·224호를 둘러보며 연신 “어떻게 (사무실을) 다 화장실 앞에 주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의석 수 대비 사무실이 협소하고 배치가 불합리하다며, 항의 차 회의를 아예 로텐더홀에서 열었다.
요지는 알겠지만 좀 의아했다. 국회 화장실은 늘 깔끔하게 유지되고, 수도 많아서 한 군데가 유달리 붐비지도 않는다. 비밀 회의 직후 회의실 밖 기자들을 피할 때는 근거리 화장실이 도피처로써 장점도 있다. 게다가 171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도, 집권 여당 국민의힘 대표실도 화장실 앞에 있다. “어떻게 대표실을 화장실 앞에 두느냐”는 말은 얼핏 ‘화장실은 불쾌한 공간이니 부하직원 사무실 앞에 두라’는 특권 의식처럼 느껴졌다. 비행기 비즈니스석 탑승이나 공항 의전 금지를 외쳤던 혁신당의 특권 폐지 다짐이 무색했다.
사실 화장실은 귀여운 수준. 일반 상식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눈높이가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화제다. 김정숙 여사 인도 방문에 들었다는 기내식 비용 6292만원에 대한 전직 대통령 해명이 그랬다. 소수 대상 일회성 제공인 전용기 기내식이 비싸기야 하겠지만, “한식·양식, 밥·빵 정도의 선택 여지밖에 없이 제공되는 기내식을 먹었을 뿐”이란 반박이 여론에 불을 질렀다. 밥·빵으로 수천만 원 역산에 실패한 국민들의 뜨악함은 “그 돈을 대체 다른 어디 썼느냐”는 음모론으로 번졌다. 인식의 출발이 다르니 “운송 및 보관료 등 식사와 관련 없는 고정비용이 65.5%”라는 뒤늦은 해명도 “금궤나 희귀동물이라도 운송·보관했느냐”는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명품백 논란’을 키운 것도 ‘그게 별문제냐’는 식의 상식과 동떨어진 눈높이였다. 김건희 여사와 최재영 목사의 카카오톡 대화를 보면 고가의 선물을 전달하려는 사인(私人)의 만남 요청이 그렇게 손쉽게 경호를 뚫었단 게 놀랍다. 명품이 흔해졌다지만 수백 만원대 선물을 받은 이유가 단순히 “박절하기 어려워서”란 해명도 그랬다. ‘그사세’에선 박절하게 거절하려면 샤넬, 에르메스 정도는 돼야 하는 걸까.
22대 국회에서도 특권 폐지가 한 번쯤 화두겠지만, 중요한 건 특권보다 눈높이다. 반기문의 에비앙이, 김문수의 관등성명이, 김무성의 노룩패스가 세비 반납보다 화제였던 이유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노회찬 전 의원이 정의당 원내대표 때인 2016년,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업무 공간 부족을 이유로 휴게실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노 의원은 그들을 찾아가 “혹시 일이 잘 안 되면 사무실을 같이 쓰자”고 했다. 그런 곳에서 눈높이가 드러난다.
성지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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