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자녀 줄 세우기’를 멈춰라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2022년보다 1만9200명(-7.7%) 줄었다. 2012년(48만명)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1970년 이후 가장 낮았다. 전국 시·도 중 합계출산율이 1을 넘는 곳이 없다. 2022년 세종이 그나마 1.12명을 기록했는데 지난해 0.97명으로 떨어졌고, 서울 출산율은 0.55명으로 전국 꼴찌였다.
간신히 저출생 추세를 멈춰 세운 일본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동아시아 인근 국가들도 우리와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홍콩 0.77명(2021년), 대만 0.87명(2022년), 싱가포르 0.97명(2023년)이다.
이들 국가가 내놓은 저출생 대책도 출산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우리와 판박이다. 대만은 출산 가정에 매달 최대 1만3000대만달러(약 55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홍콩도 지난해부터 신생아 1인당 2만홍콩달러(약 351만원)를 지급한다. 싱가포르는 첫째 출산 시 총액 1만4000싱가포르달러(약 1416만원), 둘째 이후부턴 총액 1만6000싱가포르달러(약 1619만원)를 지급한다. 그 외에도 난임 치료 지원, 가정주부 고용세 경감, 육아휴직 연장 등의 지원책이 시행되지만, 어느 나라도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대만과 홍콩은 비싼 집값을 저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싱가포르는 조금 다르다. 싱가포르에서는 신혼부부가 원하면 집값의 20%로 집을 살 수 있고 정부가 1%대 금리로 대출도 해준다. 99년 동안의 사용권을 부여하는 장기 임대 방식의 싱가포르 공공임대는 일률적인 우리 임대아파트와는 달리 65~110㎡로 규모도 다양하다. 싱가포르 인구의 80% 이상이 공공임대에 거주하는데도 합계출산율이 1 미만이다,
이쯤 되면 동아시아 국가의 공통점을 찾아 문제의 원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때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지칭될 정도로 유례없는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단기간에 거대 도시로 인구가 집중됐다. 제대로 된 부존자원이 없어 인적 자원이 국가의 유일한 자산으로 국가 주도의 무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사회적 성취가 중요시된다. 어린 시절부터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끝없는 경쟁을 강요당하고 전문직이나 정규직이 아니면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는 정서가 강하다.
홍콩 엄마의 ‘반에서 몇 등 했니?’라는 질문에, 대만 삼촌의 ‘버젓한 대기업에는 들어가야지’라는 충고에, 한국 아빠의 ‘그거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핀잔에 동아시아 젊은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결혼도 노. 출산도 노. 낙오자의 오명을 피하려고 결혼도 출산도 거부한다. 무한 경쟁과 끝도 없는 줄 세우기에는 인구 소멸만이 기다리고 있다.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육아휴직을 늘리고, 주거비 부담을 낮춰도 근본적인 사회문화의 대전환 없이는 저출생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외길 경쟁이 아닌 업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획일적 잣대가 아닌 저마다의 개성을 귀히 여기고, 숨 돌릴 새도 없이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아닌 쉬어가는 여유를 인정하는 문화를 기성세대가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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