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이자 장애인, 무대에 서다

황융하 2024. 6. 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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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 사회적 인정·예술가 존재가치 증명 위한 고군분투

[황융하 기자]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 공연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 두산아트센터
 
극이 시작되고 전동휠체어가 무대를 횡단한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빈 개체다. 무심히 지나가는 휠체어에서 예술가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객석의 시선은 애써 의미를 추궁하지만, 공허한 채 흘러가는 시간이 시큰둥할 뿐이다. '인정'을 함축하는 에필로그이자 퍼포먼스다. 연극은 3막의 구조 안에서 여러 에피소드가 전개되며 갈등과 실패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이연주 작가의 연출작이다. 이미 2019년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작으로 같은 해 초연된 바 있다. 사회적 인정과 예술가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장애 예술가들이 모든 배역을 맡았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무대가 극의 확장과 긴장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보편적이지 않은'인정'의 토대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인정 이론'을 새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한 욕구로 살아간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인정이란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인정이 구축되는 여건이 누구에게나 균일하지 않다는 게 현대의 맹점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작품의 기본 주제를 놓지 않았다.

'인정'이라는 보편의 현상이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기울어져 있을 때, 우리는 공평한 세상이 아니라고 확언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인정에 일정부분이라도 만족하게 된다면 타인이 치르는 인정투쟁에는 냉소적인 경향을 보인다. 편견과 선입견은 기본이되 여기에 혐오까지로 나아간다.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져도 이를 인지하기는커녕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예술가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예술 활동 증명"을 갖추기 위해 악전고투를 전개한다. 그러나 매번 제출할 때마다 '데이터 없음'이라는 확고한 현실 앞에서 좌절과 고뇌에 빠진다. 그럴 때마다 재기하려는 의지는 강한 인식과 어울려 울림을 전달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기에 극의 기본 전개와 프롤로그는 아리게 다가온다.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 공연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 두산아트센터
   
"예술은 삶에 의해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한다." - 연극 대사 중에서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에는 6명의 장애인이 무대를 채운다. 그러나 관객은 무대를 비장애인과 분간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내재한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 찾기, 그 여정에 순순히 동행한다. 배우들의 발화된 목소리가 때로는 여리고 어그러지기도 하지만, 네 방향에서 읽을 수 있는 자막이 무난하게 객석에 도달한다.

연극은 사회구성원이 저마다의 포지션에서 인정받으려는 전제를 바탕으로 구조됐다. 그리하여 예술가와 장애인을 파편이 아닌 하나로 묶었으며, 이에 보편의 기준으로 배제가 정당화되는 염치없는 세상을 고발한다. 나아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모든 사람이 존중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 가능성을 타전한다. 상호인정의 틀이 사회적 어젠다로 확장될 것을, 견실한 연출의 힘이 더해져 묵직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인을 포함한 장애인을 배제하는 풍토에 이미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지. 현재까지 이룩된 도시 문명의 전반에 그들의 포지션이자 존재 가치를 포함하지 않은 채 동조해왔다는 지적에서 비껴갈 수 없다. 일례로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에서 전개하는 출근 시간 지하철 행동, 여기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반응은 현대인의 뒤틀려진 인식이자 보편성을 드러낸다.

지하철 역사에서 정차 시간을 현재의 2분에서 3분으로 연장해달라는 요구는, 장애인들이 일찍부터 문명의 영역 바깥에서 인정받지 못해왔다는 방증이다. 그리하여 대다수 시민은 그만큼 시간이 절약된 시기를 지금껏 누려왔고 혜택을 받았는데, 이런 사실 앞에서 시치미를 뗄 수 있을까.

극의 초반부터 연극의 지형도를 일갈했던 무수한 아포리즘이 배우들의 육성에 담겨 범람한다. 현실을 향한 냉소가 담긴 듯하지만,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 위트를 선사해준다. 배우들의 인정 과정은 무수한 오디션을 준비하고 각자의 여정으로 지난하다. 결과는 늘 실패의 연속이다. 그들이 인정받기 위해 제출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여전히 제로에 묶여 있다. 배우들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올드한 식견들을 조롱하면서도 예술의 몰락에 위기감을 느낀다.

인정은 일방적이지 않다
     
"저 시는 왜 자꾸 읽는 거야?" - 연극 대사 중에서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 공연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 두산아트센터
 
김춘수의 '꽃'은 존재의 인식에 대한 접근이다. 극 안에서는 무려 3차례 낭독된다. 그러나 꽃은 내가 인식하고 호명하기 이전부터 꽃이었다. 마찬가지로 예술가도 장애인도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김춘수의 '꽃'은 우리가 외면했고 외연의 존재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사회를 향한 통렬한 역설을 일깨워준다.

'꽃'의 낭독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와 호명하는 자의 자기 인식의 상호 충돌성을 갖는다. 이게 무대에서는 6명의 배우들이 군집하면서도 1인극의 독백처럼 전개됨과 아울러 '나'와 '너'로, 그리고 예술가1에서 6으로 불리며 이름 없이 막의 안과 밖에서 헤매듯 여정을 잇는다.

연극에서 사용된 음악 중에서 'The Show Must Go On'은 어떤 역경에서도 극은 집행돼야 한다는 일반적인 엄포로 작동한다. 무대를 중심으로 배우와 스태프를 위계와 신화의 범주에 가두고 불합리한 처우에 대응할 수 없도록 했던 시대를 함축한다. 그밖에 사용된 음악들은 예술가의 사회적 인정을 탐구하거나 서로의 상처에 대한 치유, 연대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객과의 정서적 교감을 드넓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예술은 죽었다"라는 시대의 절박한 판결 앞에서 객석을 발견하고 배우들은 예술가적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제일 처음 사용된 윤복희의 음악, '여러분'이 결국은 배우이자 관객의 상호인정으로 존재의 권리가 확립되는 순간이다. 드디어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인정은 일방적이지 않다는 진리와 함께.

두산아트센터, 종합 예술의 터전

두산아트센터는 지속해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활동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이번에 기획된 '권리' 시리즈는 2019년에 초연된 작품을 새롭게 단장해 무대에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철학적 깊이가 더해진 연출은 관람하는 동안 사유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한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위트와 소소한 감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장애인 예술가들의 현주소는 곧 우리와 오버랩되며, 사회적 변화를 각인하도록 이끈다. 실제 장애인 예술가들의 참여는 그에 수반되는 접근성의 어려움을 직관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끔 무대를 꾸미는 힘으로 작동했다. 관객과의 무난한 소통을 위한 부가적인 설치, 배우의 대사와 상황 전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막 설치는 단연 돋보였다.

두산아트센터의 '권리' 기획 하에 준비된 공연과 여러 강연 및 전시는 아직 진행형이다. 이로써 관객들에게 종합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한다. 현재의 전시 '우리는 개처럼 밤의 깊은 어둠을 파헤칠 수 있다'는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향후 예정된 공연 '크리스천스'도 높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인간의 권리를 넘어, 모든 존재들의 권리 찾기라는 화두를 제기하며, 종합적인 사회 진단으로 나아가게끔 깊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지금은 난잡한 시대처럼 보인다. 이러한 때, 사회적으로 존재하나 외곽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애환과 고뇌를 직접 마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가 갖춰야 할 디딤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확장되리라.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 포스터 - 두산아트센터 제공
ⓒ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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