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할 가치 있다”지만… 정치 공방 전락한 ‘대왕고래’ 프로젝트

양민철 2024. 6. 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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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근거 밝혀라” 송곳 검증 예고
“삼전 시총 5배 비유, 논란 불 붙여”
전문가들 “정치 별개로 시도 의의”
동해 심해 석유·가스 매장 분석을 담당한 미국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던 중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의 심해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대왕고래’를 둘러싼 발표가 정치 공방으로 변질되고 있다. 미국 심해분석 기업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대표)이 방한해 “유망성이 상당히 높다”고 했고, 자원 개발 전문가들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진단했지만 사업성 등을 둘러싼 야당의 공세가 거세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9일 “자원 개발 초기인 물리탐사 단계에서 정부가 직접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같은 장밋빛 전망을 거론하면서 (정치 공방에) 기름을 부었다”고 지적했다. 탐사시추도 하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사업인 남미 가이아나 광구보다 더 많은 탐사 자원량(추정 매장량)”을 언급하고,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등의 희망적 전망을 부각시키며 앞서나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한 송곳 검증을 이미 예고한 상태다. 사업성 평가 등 정부 자료를 제출하기 전까진 예산 편성에 순순히 응하지 않겠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원이 민주당 의원 등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내정된 야당 의원 15명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자료 제출 거부로 수천억원의 막대한 예산 수반이 예상되는 국책사업을 발표했는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 등은 산업부와 한국석유공사에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의 근거자료’ ‘액트지오와 계약한 이유’ ‘가스전 발표까지 업무 과정’ 등의 각종 근거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올 12월 초부터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매장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적잖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첫 번째 탐사시추는 1회 시도에 1000억원 안팎의 비용이 예상되는데 정부는 최소 5공(시추 횟수) 이상의 시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본사 주소지가 가정집으로 나와 전문성 논란이 불거진 액트지오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2월 액트지오와 계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액트지오는 법인 영업세 체납으로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다. 석유공사는 “액트지오가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법인의 행위 능력이 일부 제한됐지만, 지난해 3월 체납 세금을 완납해 모든 행위 능력이 회복됐다”며 “2019년 이후에도 매년 기업 공시를 하며 미국에서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계속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야당 등에선 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국면 전환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아브레우 대표는 지난 7일 “미국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탐사 관련 발표를 직접 했다”고 말했다. 실제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0년 미 동부 버지니아주 해안의 석유·가스 시추 확대 조치 등을 직접 발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2017년 12월 알래스카주 국립야생보호구역(ANWR)의 석유·가스 탐사를 허용하는 세제 개혁 법안에 서명하며 “세계 최대 매장지에서 시추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 공방이 거세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시추를 통해 매장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과학적 검증에 이어 객관적인 경제성 판단이 뒤따라야 하는 자원개발 사업이 정치공방으로 번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검증 작업에 참여한 이현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액트지오 발표를 검증한 결과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도출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임종세 한국해양대 교수도 “동해 가스전 개발 이후 사실상 한국의 탐사시추 명맥이 끊겼던 상황”이라며 “실패 우려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자원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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