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향기를 못 맡게 되면 어떡하나 생각... 반드시 지켜내겠다"
[정수근 기자]
▲ 비가 내리는 굳은 날임에도 팔현습지를 찾은 주민들. 비가 와서 습지의 운치가 더해 더욱 아름다운 팔현습지를 만났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대구 수성구 시지동 주민들이 팔현습지를 찾았다. 시지동·만촌동 주민들은 팔현습지 보도교 탐방로 사업을 해달라 민원을 제기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에서 '팔현습지 보도교 사업'을 밀어붙이는 근거가 바로 "이들 주민들이 원하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지난해 4월 6일 대구 수성구 고산2동(시지) 행정복지센터 대강당 열린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 주민설명회에는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의 수성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민설명회를 반드시 무산시키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거칠게 나왔다.
당시 주민설명회는 이 사업 정식명칭인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 가운데 팔현습지 보도교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수성구 사람들은 이날 낮 시간임에도 대거 몰려들어 이 설명회를 무산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후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보도교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철회하고 "공법을 변경해서 환경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해서 이 사업을 다시 진행하겠다"로 입장을 바꿨다.
그때 주민설명회 무산에 나선 사람들은 "팔현습지 산책을 다니기 때문에 그 보도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수성구 시지동이나 만촌동은 팔현습지 보도교 구간과 거리로 6~7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시지동 주민이라고 밝힌 사람들이 팔현습지를 찾은 것. 이들은 무산에 나선 이들과 달리, 팔현습지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팔현습지 보전에 이야기하고 팔현습지 보도교 사업 불가를 외쳤다.
사실 팔현습지를 방문하는 이들은 대부분 동구 주민들로 인근 방촌동과 동촌동, 율하동 주민들이다.
동구 주민들은 대체로 문제의 보도교 사업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팔현습지 보도교 사업 반대 서명을 받을 당시도 대부분의 주민들은 동구 쪽 그러니까 강의 우안으로, "산책로가 이미 너무 잘 정비돼 있는데 굳이 수성구 쪽(강의 좌안) 산지 앞으로 직선길을 내어서 경관마저 망칠 필요가 없다"고 했다.
▲ 팔현습지 주민 탐방단이 팔현습지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이날 바로 이곳 동구 강촌마을에서 참가한 한 주민도 "6개월 전에 이곳에 이사를 왔는데 이곳은 진짜 도심 속 시골의 풍광을 지닌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이런 곳을 왜 개발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곳은 반드시 지켜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우리 귀한 자연유산"이라 했다.
필자 또한 이날 탐방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팔현습지를 안내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곳은 팔현습지 중에서도 핵심 생태구간이다. 바로 산과 강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곳이 금호강에 거의 남지 않았다. 이런 곳은 당연히 야생동물들의 주된 서식처로 그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산에서 강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야생동물들이 왔다갔다 하는 사실상 이동통로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동통로 사이에 인간이 다니는 새로운 길을 내겠다는 것이다. 생태계 단절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로 이것은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다.
이곳은 산지가 제방 역할을 하는 무제부(제방이 없는 구간) 구간으로 이 일대는 전혀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금호강의 원시 자연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구간이다. 오랜 세월 전부터 금호강이 만들어온 원시 자연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그 경관이라 특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멸종위기종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숨은 서식처'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금호강 대구구간 전체에서 발견된 14종(환경부 자연환경조사)보다 더 많은 18종(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조사)에 이르는 법정보호종이 발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곳에 보도교 삽질은 어불성설이고 이대로 반드시 보전해야 하는 곳이다. '보도교 대신 팔현습지를 국가습지로'를 외치는 이유다."
이날 비가 오는 궂은 날임에도 열명이나 되는 '6월 팔현습지 주민탐방단'은 동구 방촌동 금호강 제방 앞에서 모여서 강촌햇살교를 넘어 팔현습지로 들었고 그 후 오른쪽으로 돌아 팔현습지 하천숲과 하식애 그리도 왕버들숲을 하나 하나 둘러봤다.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왜 몰랐을까" 하는 감탄사가 연발되면서 이날의 탐방은 마무리됐다.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이날 모인 분들은 비가 내리는 운치를 더한 날에 오신 덕분인지 특히 팔현습지의 매력에 흡뻑 빠져서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 팔현습지 하식애 앞에서 둘러서서 소감을 나누는 참가자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수성구 시지동에서 온 한 주민은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너무 아름다운 데다. 이렇게 보존해야 하는데 굳이 왜 개발을 해야 할까 의문이 든다. 하루빨리 국가습지로 지정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시지동에서 온 또 다른 주민도 "저번에 한 번 여기 선생님들하고 왔었는데 그때랑 지금이랑 또 다르다. 비 오고 풀 냄새랑 향기 자체가 너무너무 달라져서, 이 향기를 못 맡게 되면 어떡하나 걸어오며 생각했다. 아름다운 이곳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했다.
역시 시지동에서 온 한 주민은 "아이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아깝다. 아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곳을 보여주러 꼭 다시 오겠다. 그리고 팔현습지를 지키는 데 미약한 힘이지만 꼭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부디 이들의 바람처럼 '팔현습지 보도교 삽질'을 반드시 막아내고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장을 이곳에서 만들어내고 싶다. 그 길을 위해선 '팔현습지를 국가습지'로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이들의 바람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도해본다.
▲ 6월 팔현습지 주민탐방단이 팔현습지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강촌마을에서 오신 한 주민이 수리부엉이 집 하식애를 가르키며 이곳에 수리부엉이가 산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팔현습지의 명물 중 하나인 왕버들숲에서 참가자들이 피케팅을 하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금호강은 야생동물의 집이다. 금호강 삽질을 멈춰라!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금호강은 야생동물의 집이다. 금호강 삽질을 멈춰라! ⓒ 정수근 |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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