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석유·가스 개발, 국회 협조부터 험로…국제유가도 변수

김민중 2024. 6. 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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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업체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지난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부는 액트지오의 분석에 따라 동해 심해에 초대형 유전·가스전이 있는 것으로 보고 올해 연말부터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연합뉴스

정부가 동해에 초대형 유전·가스전이 있는 것으로 보고 개발에 나섰지만, 극복해야 할 외부 변수가 많다. 당장 개발 비용 마련을 위한 국회의 협조를 얻는 것부터 험로가 예상된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오는 12월쯤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경북 포항시 영일만 인근 심해의 6-1광구·8광구 내 7개 유전·가스전 후보지 가운데 하나인 ‘대왕고래’에 대해 탐사시추를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물리탐사를 진행한 결과 미국 업체 액트지오로부터 “7개 유전·가스전 후보지에 최대 140억 배럴 규모의 석유·가스(2000조원 안팎)가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 몸 안에 있는 종양을 찾기 위해 엑스선이나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게 물리탐사라면, 몸 안에 내시경을 넣어 조직 검사를 하는 건 탐사시추로 비유할 수 있다. 탐사시추를 통해 실제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는지, 있다면 정확히 얼마 만큼 묻혀 있는지 확인하고 채산성(採算性)을 따지는 평가시추를 마친 뒤에야 상업 생산으로 넘어갈 수 있다.

동해 원유·가스전 탐사·개발 단계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앞으로 주요 과제는 1공당 약 1000억원이 드는 탐사시추 비용을 조달하는 것이다. 일단 첫 번째 시추를 위해 500억원가량은 정부의 석유공사 출자로, 남은 500억원 정도는 정부 융자로 댈 방침이다.

대왕고래 탐사시추로 석유·가스가 발견될 가능성은 20% 수준. 후보지 5군데를 뚫어야 유전·가스전 한 군데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후보지 7군데를 다 파봐야 할 수도 있다. 대왕고래에서 바로 석유·가스를 발견할 경우에도 대왕고래를 포함해 적어도 5군데는 탐사시추해보겠다는 방침이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자금은 약 5000억원에서 7000억원이다. 정부는 탐사시추 과정에서 유전·가스전 후보지를 추가로 발견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어 비용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탐사시추 비용으로 적어도 1000억원 정도를 반영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범야권이 주도하는 22대 국회에선 회의적인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5명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으로 단 한 톨의 의혹도 용납할 수 없다”며 “산업부와 석유공사는 액트지오 선정의 적절성, 입찰 과정, 사업성 평가 결과 자료, 국내외 자문단 명단, 회의록 및 결과보고서 등 핵심 자료의 제출을 거부했다”고 반발했다.

정부는 2025년부터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역시 쉬운 길은 아니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지난 4일(현지시간) 펴낸 보고서에서 국내 정유업계와 아시아 원유 트레이더를 인용해 “탐사가 상업 생산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낮다”며 “한국의 유전 탐사 프로젝트에 흥분하지 말라”고 밝혔다.

윤석열(왼쪽)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국정브리핑을 통해 동해 석유·가스전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연합뉴스


파이낸싱 문제를 해결하고 석유 매장을 확인하더라도, 그다음엔 정부 노력으로 컨트롤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본격적인 석유·가스 생산 시점으로 지목되는 2035년의 국제 유가다. 만일 국제 유가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생산해야 할 의미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되던 해외 유전·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상당수가 2015년 유가 폭락으로 잇따라 실패한 전력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2035년 국제 유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문 기관들의 관측은 엇갈린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가격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반면, 전기차 보급 등으로 배럴당 30달러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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