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하나에 최대 1.5만 페이지"…중처법 수사 인력난에 전국 6개과 확대
“사건은 많은데 사람은 없으니 감독관 1명당 중대재해 사건 5~6개를 동시에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건 하나에 검토해야 할 자료가 최대 1만5000페이지에 달하는 경우도 있고요. 지금 같은 구조로는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 처리는 늦어질 수밖에 없죠.”
20년 넘게 산업안전 업무를 맡아온 부산지방고용노동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의 정해엽 감독관은 9일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수사 업무 과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지난 1월 27일부터 중처법 적용 범위가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면서 수사 대상은 10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정부는 전국 중대재해 전담 부서를 대폭 늘려 수사 적체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0일자로 의정부·성남·창원·포항·전주·천안 등 전국 6개 지청에서 광역중대재해수사과가 신설된다. 이에 따라 전국 중대재해 수사 담당 부서는 기존 7과2팀 체제에서 13과2팀 체제로 확대 개편된다. 중대재해 수사를 담당할 감독관 정원도 138명에서 213명으로 75명 확대하고, 인력 재배치(20명)을 통해 최대 233명까지 늘린다. 이례적으로 큰 폭의 확대다.
이는 올 초 중처법 확대 적용으로 중대재해 수사 대상이 확연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에 발생한 중대재해 수사 사건은 99건으로 집계됐다. 앞서 중처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2년간 510건의 사건이 발생했는데, 산술적으로 분기당 63.8건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중처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이 7만1000개소(50인 이상)에서 90만8000개소(5인 이상)로 12.6배 늘어난 영향이 크다.
사건은 늘어나는데 수사 인력은 제자리걸음인 탓에 처리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고용부에 따르면 송치·내사종결 등 사건 처리율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34.3%였지만, 올해 3월 기준으로 30.7%로 3.6%포인트 떨어졌다. 이때까지 발생한 609건 가운데 422건은 아직도 처리 중이라는 의미다. 사안의 복잡성으로 인해 2년 넘게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중대재해 사건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수사와 비교해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안전조치뿐만 아니라 위험성평가 실시 여부 등 평상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갖췄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토해야 하는 서류가 많고, 사업주가 직접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업들도 법무법인을 통해 강한 대응에 나서기 때문이다.
사건 처리가 느려지면 피해자와 유족들의 진상 규명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사법 리스크를 장시간 안고 가야 하는 어려움이 커진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이력이 있는 한 업체 대표는 “중대재해 발생 이후 장기간 출석조사와 각종 자료 제출 등 사건 대응으로 기업 경영에 어려움이 초래되고 있다”며 “차라리 빠른 수사를 통해 결론이 빠르게 났으면 싶다”고 말했다.
이번 조직·인력 증원으로 수사 적체는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정 감독관은 “지금까진 부산청에선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창원·포항 사건까지 같이 처리해야 했는데, 각각 청에서도 중대재해과가 생기면서 업무 부담이 덜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부산청에도 인원이 보충되면 지연됐던 사건들을 보다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조합 등에 속하지 않은 비정규직,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미조직근로자지원과’도 10일자로 고용부 노동정책실 산하에 정식 출범한다. ▶인프라 구축 ▶권익보호 ▶이해 대변 ▶분쟁조정 지원 ▶법제화 추진 등 기능을 수행할 계획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를 통해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미조직 근로자들의 권익 증진은 정부가 직접 챙겨야 한다”며 관련 부서 신설을 지시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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