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GOP에서 사망한 장교와 사병, 두 죽음을 연결한 비극
[김선재 기자]
▲ 육군소위 손철호의 묘 (장병 1묘역 147-10761호) |
ⓒ 임재근 |
국군 제5사단 27연대가 작전 중이던 철원지역 GOP에서 1998년 두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8월 26일 수류탄 폭발로 소대장 손철호 소위가 사망하였고, 12월 1일 총격으로 소총수 이승원 이병이 사망했습니다. 두 죽음은 별개 사건이었지만, 대전현충원에는 둘을 연결하는 비극이 묻혀있습니다.
손철호 소위는 1975년 신안에서 두 누나에 이어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줄곧 1등을 차지했습니다. 학교에서 주는 상을 워낙 많이 받아서, 나중에 부모님은 상 받아오는 일을 으레 당연하게 느낄 정도였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독일어과에 진학해서도 전 학년 장학금을 받는 등 모범을 보였고요. 먼 거리를 통학하며 지친 기색 한 번 없었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입대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ROTC 후보생 시절 군사학 성적은 동기 66명 중 4등으로 매우 우수했습니다. 부중대장 지휘 근무 후보생으로 뽑힐 만큼 후보생 간에 신뢰도 높았습니다. 심지어 4학년 2학기 재학 중 ROTC 간부 후보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 모집에서 제일모직과 농협에 최종 합격해서 제대 후 취업 걱정도 없었습니다.
아무 걱정이 없을 듯했던 그는 1998년 3월 1일 소위로 임관하여 6월 27일 5사단 27연대 2대대 6중대 2소대 소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근무를 시작한 지 2개월이 된 8월 26일 00시 25분 경, 손철호 소위는 미리 숨겼던 K-400 세열수류탄 한 발을 들고 내무실을 나섰습니다. 이윽고 보급로에서 '쾅'하는 폭음과 불빛이 번쩍였습니다. 그는 내무실 막사 남쪽 14m 떨어진 곳에서 수류탄 자폭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나가 아즉도 밤에 잠을 못 자요"
육군은 '망인이 평소 완벽한 임무 수행에 대한 집념과 이상적인 소대원 지휘통솔 능력에 대한 노력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데 대한 스트레스를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다른 장교들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해소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무력함과 앞으로의 군대 생활에 대한 고민 등으로 군 생활에 회의를 느껴 수류탄으로 자폭 사망한 것'이라 결론 내립니다.
"세상에 나쁜 놈들이제. 건강한 아를 데리고 갔으면 끝까지 군대에서 책임을 져야지. 난 못 믿겄소. 아무리 괴로워도 우리 철호는 부모 생각해서 어떡허든 살았을 아요. 부모가 눈에 밟혀서 유서 한 장 없이 그렇게 갈 수가 없는 아란 말씨. 농협 임명장하고 뱃지 받아와서 '엄니 나 올 때까지 이거 잘 간직하소' 그라고 간 앤데, 뭐 내성적? 가정 형편? 애인 때문에? 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손철호 소위 부모님은 자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강설자씨는 영정을 들고 국방부 정문 앞에서 120일 동안 농성했습니다. 소복을 입고 국방부 앞에 뒹굴고, 맨발로 담벼락을 넘다가 끌려 나왔습니다.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위에서 농성하다 쓰러지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아버지 손오복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부대에서 의문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다른 유가족들을 미니버스에 태워 전국 군부대를 쫓아다녔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진상을 밝히려 노력한 사이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습니다.
"나가 아즉도 밤에 잠을 잘 못 자요. 몸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냥 맥 놓고 누워 있으면 우리 철호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소. 우리 철호가 '엄니, 엄니도 참 답답허요. 나가 이렇게 억울하게 죽었는데 여즉 바보 맨치로 뭣하고 있소.' 그렇게 날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유가족은 2001년 9월 15일 의정부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을 신청했지만 의정부보훈지청은 이를 거부합니다. '망인이 평소 소대원을 장악하지 못하여 중대장으로부터 질책을 받는 등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점을 비관하다가 자살하였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불복하여 취소 소송까지 진행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망인의 사망은 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사망한 것으로 보이므로 의정부보훈지청의 처분은 적법하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손철호 소위 사망에 숨은 진실은 2008년에야 밝혀집니다.
▲ 육군일병 이승원의 묘 (장병 1묘역 149-44278호) |
ⓒ 임재근 |
손철호 소위 사망 석 달 후 같은 연대에서 복무하던 이승원 일병이 사망했습니다. 이승원 일병은 1978년 이정균씨와 고정순씨 사이 큰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바로 아래 두 살 터울 여동생이 있었는데요. 언젠가부터 시름시름 앓던 여동생은 동네 병원을 찾아가 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즈음 큰 병원을 찾아갔는데요. 소아암 말기였습니다. 그렇게 부모는 어린 딸을 먼저 하늘로 보냈습니다.
부모는 하나 남은 아들을 키우기 위해 안 한 일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일거리를 찾아 중동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연탄 장사를 했습니다. 하루에도 연탄 수 천장을 나르며 어린 아들을 키웠고 먹이고 입히고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이승원 일병은 딸을 잃은 부모님에게 삶의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어린 승원은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사춘기에도 부모에게 반항을 하거나 말썽부리지 않았습니다. 전문대 기계과에 입학한 후 빨리 군대를 다녀와 다시 수능을 보겠다며 입대 신청을 했습니다.
이승원 일병은 친구가 많았습니다. 입대 전날에도 친구들이 몰려와 비좁은 방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친구들과 가겠다는 아들을 따라나선 부모님은 훈련소로 들어가는 아들 뒷모습을 보고 대견하고 뿌듯해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기 열흘 전 면회를 했고, 선임병들도 불러 삼겹살까지 구워 먹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부모님은 아무런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힘든 일이 없냐고 물어보니까, 괴롭히는 선임병들이 있는데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엄마가 연탄 장사했던 걸 생각하라고 했어요. 엄마도 그 힘에 부치는 일을 너를 위해서 견뎠다. 그러니 너도 엄마를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했지요. 승원이도 걱정하지 말라고, 잘 하겠다고 그래서 안심을 하고 보냈어요."
그는 1998년 6월 23일 입대하여 8월 8일 5사단 27연대 3대대 11중대 3소대로 전입합니다. 9월 3일 소속 부대는 GOP에 투입되었고 그는 소총수로 최전방에서 근무했습니다. 1998년 12월 1일은 이병에서 일병으로 진급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21시 05분 경 이승원 일병은 근무하던 대기초소를 나옵니다. 인근 공터를 찾아간 그는 K-2 소총 총부리를 가슴에 대고 스스로 총을 쏴 가슴 관통 총상으로 사망했습니다.
부모님 집으로 전화가 간 시간은 9시 뉴스가 막 끝났을 즈음이었습니다. "여기 부대인데 지금 이승원 일병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일병이 사망했습니다. 지금 빨리 부대로 오십시오." 어머니는 충격으로 사지마비를 일으키며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아버지만 부랴부랴 부대로 먼저 출발했고 새벽 1시 아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옷은 모두 벗겨져 있었고 주위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사고 당시 아들이 입고 있던 옷과 현장을 보여달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부대는 이를 묵살했습니다. 사고 이틀 뒤 현장을 봤을 때 핏자국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했지만 부대는 장례만 서두를 뿐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장례식을 거부하고 일주일을 싸웠습니다. 겨우 사단장 면담이 이뤄졌지만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의혹을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장례식을 미루고 20여 일을 버텼습니다.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들을 차가운 냉동고에 넣어둘 수 없었기에 결국 장례식을 치렀고, 부모님은 다른 군의문사 유가족과 함께 진상규명 투쟁에 함께했습니다. 이승원 일병 죽음도 2008년이 되어서야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그때 승원이네 부대가 원래 GOP에 들어가기로 한 날보다 몇 달 빨리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먼저 들어가 있던 부대에서 소대장이 죽는 사고가 있었대. 그래서 승원이네 부대가 교대를 빨리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소대장이 바로 손철호 소위였어. 유가족들이 국방부 앞에 모여 시위할 때 내가 철호 엄마를 만나 그 얘기를 하면서 서로 얼마나 부둥켜안고 울었는지 몰라."
▲ 고 이승원 일병의 어머니 고정순씨가 지난 2013년 5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열하고 있다. |
ⓒ 남소연 |
드러난 진실에 의하면 손철호 소위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손 소위가 근무했던 GOP는 환경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밤에는 늘 경계근무를 섰고 낮에는 월경 방지판 사계 작업, 교통호·순찰호 주변 제초 작업, 불모지 작업, 폭우로 손상된 보급로 보수작업, 도로 평탄화 작업, 배수로 작업, 진지 보수 작업, 투광등 교체 작업 등 수많은 작업에 시달렸습니다.
병사들은 낫으로 풀을 베어냈고, 손을 베거나 풀독이 오르기가 예사였습니다. 폭우로 인해 가족 면회도 취소되었습니다. 수색 작전 중에 철모에 벼락이 떨어지고 말라리아 환자가 수시로 발생했습니다. 산불도 진압하는 등 부대원 고생은 끝이 없었습니다.
대대본부 등 상급 부대에서는 작업에 대한 독려가 많아졌습니다. 손철호 소위와 부대원은 모두가 과도하게 작업에 시달렸습니다. 많은 작업량에 지치고 다친 병사들은 불만이 폭발했고, 손철호 소위는 고생하는 부대원을 작업 도중 철수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조 아무개 중대장이 작업을 독촉했습니다.
윤 아무개 대대장과 조 아무개 중대장은 부하 잘못에 대해서 곧바로 질책했습니다. 중대장은 망원경으로 병사를 감시했고, 초소에서 병사가 졸고 있으면 그 병사를 완전군장 차림으로 포복해서 기어오게 했습니다. 또 화를 낼 때 "개새끼, 소새끼"은 보통이었고 "XX놈, XX끼"라는 욕도 난무했습니다. 특히 소대원이 있는 자리에서 욕설을 섞어 야단을 쳤고, 손철호 소위는 소대원 앞에서 얼굴을 붉힌 채 주눅 들어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장 아무개 부소대장의 하극상도 심각했습니다. 자신보다 소위 '짬밥'이 적다는 이유로 손철호 소위를 애먹이고 지시에도 불응했습니다. 부소대장 자신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때도 소대장인 손철호 소위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탓으로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손철호 소위가 중대장에게 질책받는 일이 늘어나자, 부소대장은 손철호 소위와 대화도 나누지 않았고 그를 무시했습니다.
소대에는 병사 간에 악습이 있었는데요. 후임은 선임 휴식 시간을 늘려주려고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근무를 교대했고 식당 내 취사장에서 식기를 세척 할 수 없었습니다. 손 소위는 본인이 솔선수범을 보이며 악습을 없앴는데요. 이번에는 병사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왜 갑자기 체제를 바꾸는 것이냐! 저 새끼 왜 저러느냐!"며 대들었습니다.
손철호 소대장은 부임한 직후부터 한 달까지는 병사들과 작업이나 운동도 같이하고, 이동식 PX 차량이 왔을 때 먹을거리를 사주며 격려했으며 특히 이등병을 따뜻하게 대해줬습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말없이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고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걱정이 많았으며, 짜증을 내고 욕설을 많이 했습니다. 대화를 기피했고 잘 자지도 못하며, 식사를 못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근무 중에 졸거나 멍한 표정을 지었고 행동이 느려졌습니다. 말을 걸어도 답하지 않는 일이 늘었습니다.
수면장애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는데요. 소대장은 보통 오전에 3~4시간, 야간 근무 전에 2~3시간을 자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각종 지휘 보고, 상급 부대 연락, 기타 업무로 인해 하루에 2~3시간도 제대로 취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밤낮을 거꾸로 생활해야 하는 GOP 특성상 손 소위는 하루 2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고, 그 생활을 무려 2달 가까이 이어갔습니다.
주요우울장애 발병한 이들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손철호 소위는 수면장애, 정신운동 흥분, 피로와 에너지 상실, 우울감, 정신병적 증상, 자살 사고, 심한 불안 증상 등을 보였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주요우울장애' 진단에 부합하는데요. 위원회는 손철호 소위가 겪은 열악한 근무 환경, 과중한 작업, 과로, 극심한 수면 제한, 중대장 질책과 욕설 등 스트레스로 인해 '주요우울장애'가 발병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는 정상 의사능력과 자유의지를 가진 상태에서 자살로 이어진 게 아니라 "질병 발생 또는 악화가 공무수행과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된 사망 또는 상이자"에 해당되는 결론이었습니다.
이승원 일병 내무 생활도 가혹행위와 성추행, 간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이뤄졌습니다. 후임병은 사소한 실수 때문에 욕을 먹었습니다. 탁구장, 비닐하우스, 족구장에 집합해서 머리 박기,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서기, 오리걸음, 선착순 등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소원 수리를 적어내려고 해도 고참이 사전에 단속한 데다 보복이 두려워 적어 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선임병 박 아무개 병장은 후임을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박 병장은 평소 후임 돈을 짤짤이를 구실로 갈취했습니다. 후임병이 근무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투복 하의를 벗게 하고 성기를 30분이나 주물렀습니다. 후임과 가위, 바위, 보를 하여 머리털과 겨드랑이 털, 성기 털을 잡아 당겨 뽑았습니다. 함께 근무를 서던 후임병에게 자신이 보는 앞에서 성기를 꺼내 자위를 해보라 시키기도 합니다.
이승원 일병이 실수를 하자 박 병장은 욕설과 함께 머리 박기, 쪼그려 뛰기, 제자리 앉아 일어서기 등 가혹행위를 15분간 이어갔습니다. 또 이 일병이 졸았다는 이유로 양팔을 편 채 5분 간 소총 2자루를 들고 서 있게 하고, 또 하루는 이 일병이 체력이 약해 따라오지 못하자 오리걸음 30m, 팔굽혀펴기 50회를 시켰습니다. 군가를 부를 줄 모른다는 이유로 욕설과 함께 제자리 앉아 일어서기 15분, 작업 시 질책을 받았다는 이유로 후임병 7명에게 선착순과 오리걸음 20분을 시킵니다. 가혹행위는 끝이 없었습니다. 총기 개머리판으로 폭행, 깍지 끼고 팔굽혀펴기, 앞뒤로 취침,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서기 등 폭력이 일상이었습니다.
이승원 일병은 입대 전에는 정신병 증상이 전혀 없었고 밝고 쾌활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상급자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한 결과 항상 혼비백산한 초조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식사 시간에 남보다 2~3배 많은 양을 먹었고, 담배를 많이, 그리고 끝까지 피워댔습니다. 동기를 보면 "짜증이 난다,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화장실에서 훌쩍이는 모습도 발견됐습니다.
결국 군대 내 가혹행위와 간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주요우울장애'가 발병했고, 그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못해 상태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근무 환경 변화나 치료가 필요했지만 그는 군대에서 그저 방치당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이승원 일병 역시 자유의지를 가진 상태에서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공무수행 중 발병한 질병에 의한 사망이었습니다.
손철호 소위는 장병 1묘역 147-10761호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승원 일병은 장병 1묘역 149-44278호에 잠들어 있습니다. 같은 묘역 안에 불과 50m 떨어져 있습니다. 1998년 대한민국 군대는 장교와 사병을 가리지 않고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GOP 근무 중 '주요우울장애'를 앓게 되었고 극단 상황으로 몰려간 그들의 슬픈 인연이 대전현충원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군의문사 유족들은 말한다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 (김진아, 2008, 삼인)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종합보고서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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