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찍는여자들] "새로 인테리어 했어요" 그 사진에 없는 이야기

구혜은 2024. 6. 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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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내가 깨달은 것

4대보험 없는 주부들이 쓰는 '점을 찍는 여자들'은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구혜은 기자]

올 봄,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이사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집을 고친다는 것은 단순히 벽지를 바르고, 바닥을 깔고, 가구를 배치하는 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나는 그 속에 숨겨진 복잡한 공정과 인부들의 노고를 직접 목격했다.

한 달 동안 내가 본 것은 제품 하나가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세세한 공정이었다. 일하는 현장의 '진짜' 모습을 본 것이다. 멋져 보이는 겉모습 뒤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장의 그늘이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만난 장인들

공사 총괄을 맡은 사촌오빠는 건축학과를 전공한 석사 출신이다. 건물을 설계하고, 가정 및 상업 공간을 기획, 디자인하는 일을 한다. '그의 일'은 멋있지만 '그가 하는 일'은 절대 멋있지만은 않았다.

그의 작업 현장은 먼지 날리는 공사판이다. 그는 멀티플레이였다. 배관공도 되었다가, 전기공도 되었다가 미장일, 철거 마감까지 무엇이 잘 되고 잘못되었는지 알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기술뿐 아니라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했다.

사촌오빠의 모습을 보고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의 사투다. 그는 이를 버티며 한 계단 한 계단 경력을 쌓아온 것이다. 무려 25년을 말이다. 사촌 오빠뿐 아니라 공사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 한 분 한 분의 이력과 경력은 놀라웠다. 최소 20년, 최대 30년까지 이분들의 평균 종사 햇수는 무려 28년이었다. 이쯤 되면 장인이라 칭할 만한 사람들이다. 
 
▲ 공사 12일 차  전기, 목공, 단열, 가구등 무려 7명의 작업자가 함께 하던 날
ⓒ 구혜은
나는 나를 '직업'으로 소개할 때 주눅이 드는 사람이다. 한 분야에 진득하게 버텨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전문성도 노하우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기죽게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해 왔지만, 시련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곤 했었다. 그 시련이란 대개 '자존심'과 결부된 것들이었는데, 일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회의감 같은 거였다. '내가 굳이 이 일을 해야 해?' 일을 끝까지 성취해 내고 말겠다는 의지보다, 내 자존심이 중요했다.

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서 마주친 장인들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직업에 대한 환상과 편견을 깨주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 역시 이 편견과 환상에서 기인한 것임을 더불어 알게 되었다.

어떤 직업이든 화려한 겉모습 뒤엔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는 시련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더럽고 치사하고, 때로는 나를 낮추고 내려놓아야 한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예상치 못한 난관도 버텨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먼지 날리던 현장이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집'이 되기까지 여러 공정을 거쳐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속하는 일이 더 어렵다

너무 쉽게 포기했던 첫 번째 사업의 결과를 이렇게 복기해본다. 사업에 성공해서 경제적 자유를 얻겠다는 소망은 넘어지고 깨지는 과정 없이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화려한 겉모습 뒤엔 부지런히 움직이는 오리의 발동작이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게 일이 되어가는 과정인데 말이다.

부끄럽다. 제대로 직면해 보지도 않은 채 '이거 내 생각과 너무 다르네'라고 쉽게 방향을 틀곤 했던 여러 일들이 떠오른다. 내가 간과했던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목표와 결과물'이 없었다.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결과물, 혹은 성과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막연히 돈을 많이 벌겠다는 환상만 가졌을 뿐이다. 목표가 분명하다면 지루하고 고단한 과정도 버틸 힘이 될 것이다.   

"오빠는 이 일을 어떻게 이리도 오래 버틸 수 있었어?"
"일의 보람 때문에…. 그리고 즐겁거든. 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간파하고 고객도 알지 못하는 욕구를 발견해서 그걸 공간에 구현하는 일이 즐거워. 상업 공간에서는 고객의 추구하는 브랜드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공간에 담아내는 일도 재미있고, 사람들은 잘 몰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말하고 싶은지를 그걸 내가 찾아내서 보여주는 거야. 그 일이 즐거워. "

"그렇구나. 나도 느낄 수 있었어. 오빤 예술가에 가깝단 생각을 했거든. 창조해 내고 그림을 그리고, 오빠와 작업하는 내내 행복했어. 내가 말했던 집이 뚝딱하고 눈앞에 펼쳐졌을 때 놀라웠어. "
"그래,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고객들 덕분에 일해. "

"근데 좀 놀랐어. 공사 현장이 힘든데 그걸 묵묵히 하는 오빠가 참 멋있어 보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돈이 될 때가 많아. 결국 이게 오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지."

한 달 동안의 인테리어 현장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유아적인 시각으로 일을 대했는지 알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 번의 성공보다 지속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말이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과정에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성공의 가능성 또한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성공은 따라오는 것이지 쫓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더불어 내가 부러워하는 한 가지,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도 더불어 얻게 될 것이다.
 
▲ 한 달간의 공사를 마치고, 입주 전날 우리집 수 많은 공정과 여러 전문가들의 손끝을 거쳐 탄생한 우리집. 입주청소까지 완벽히 마무리되었다.
ⓒ 구혜은
《 group 》 점을찍는여자들 : https://omn.kr/group/dot_women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4대보험 없는 여성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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