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전두환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신상호, 이정민 기자]
▲ 유시춘 EBS이사장(오른쪽)과 박성순 대한성공회 신부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1987년 6월 10일 항쟁 당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
ⓒ 이정민 |
1987년 6월 항쟁의 동력은 20~30대 청년들이었다. 당시 청년이었던 유시춘 EBS 이사장과 박성순 대한성공회 신부, 두 사람 역시 군부독재의 불합리에 저항하며 개헌의 물줄기를 이끌었던, 6월 항쟁의 주역이었다. 37년이 지난 지금, 검은 머리보다는 흰 머리가 많은 노년으로 접어든 두 사람의 얼굴에는 강렬한 열정 대신 온화함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87년 6월 항쟁 당시를 이야기하던 그들의 눈빛은 청년 시절로 회귀했다.
지난 5일 오전, '6월 민주항쟁 진원지'였던 서울 중구 성공회성당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1987년 항쟁의 굵은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그들이 '2024년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유시춘 이사장은 "지금 시대정신은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받고, 평등하게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 등 사회권을 어떻게 확립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시대의 주역인 청년들에 대해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대대적인 사회적 대화의 장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필요한 시대정신을 '생명존중'이라고 한 박 신부는 "이태원 참사(이후 발생하는 정치적 논란을 보면)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명 존중에 대한 사상이 결여된 결과"라며 "이태원 참사와 채상병 문제 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1987년 그때도, 2024년 지금도 변화의 동력이 '청년'들에게 있다는 점은 두 사람의 생각이 같았다. 박 신부는 "청년들이 과거와 달리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데, 환경이 그럴 여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숨구멍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
▲ 유시춘 EBS이사장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1987년 6월 10일 항쟁 당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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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당시 군부독재가 굉장히 삼엄했던 시절이었고, 20대-30대 청년으로서 군부에 대항해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럼에도 항쟁에 참여한 이유는 뭐였나?
유시춘 (이하 유) "국본(민주헌법쟁취범국민운동본부) 상임 집행위원으로 성명서 작성을 도맡아했다. 당시 나를 포함한 청년들과 넥타이 부대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가장 큰 이유는 고문 정권에 대한 분노였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북한도 아닌데 체육관에 모여가지고 99.7% 찬성으로 대통령 뽑는 법률과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다. "
박성순(이하 박) "당시 성당을 오가면서 성명서를 복사하고 외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아버님(박종진 신부)이 인권 활동을 하시면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의문사가 굉장히 많았다.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증발해 버리고, 며칠 되지 않아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이 잦았고 굉장한 의문이 들었다. 민간인 사찰도 많았다. 그러면서 이런 일들에 참여하게 되고 의식을 갖게 됐다."
- 당시 시대정신은 뭐였다고 보나?
유 "독재타도, 민주정치였다."
박 "인권과 정의였다. 사회운동가가 아닌 신앙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당시 상황은 로마제국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 상황과 닮아 있었다. 권력자들이 민중들을 억압하고 독재를 하던 것인데, 신학적 관점에서도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 지금 정부를 군사정권에 빗대어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두 시대를 겪어본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가.
유 "전두환과 비교하기는 약간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적어도 전두환 때처럼 영장 없이 사람 체포해가고 고문해서 죽이는 그런 일은 없지 않나. 87년 6월 항쟁에서의 시민들의 헌신, 땀의 결과는 아직 유효하다. 다만 헌법에 명기된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무시하는 경향은 같다. 법기술을 통한 시행령 정치, 정권 비판 언론에 대한 중징계, 수사 등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역주행하는 면은 분명히 있다."
▲ 박성순 대한성공회 신부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1987년 6월 10일 항쟁 당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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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의 시대정신은 독재타도, 인권 확립이었다. 37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이 바라는 시대정신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민주공화국의 시민 권리를 두개로 요약하면 자유권과 사회권이었다. 87년 당시에는 자유권에 대한 요구였다.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 등인데,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분기해서 바꾼 것이다. 자유권은 지금도 G7국가와 비견해서도 조금도 손색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지금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사회권'이라고 본다.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받고, 평등하게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 이를 통칭해서 경제사회적 권리라고 한다. UN A규약으로도 규정돼 있는데, 이 사회권을 어떻게 확립해나갈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 본다. "
박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지금 필요한 정신은 '생명존중'이라고 본다. 생명 존중이라면 굉장히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태원 참사(이후 발생하는 정치적 논란을 보면)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명 존중에 대한 사상이 결여된 결과라고 본다. 아울러 재개발 지역 세입자 문제나 장애인 문제 등도 생명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본다. 기후 문제 역시 마찬가지인데, 모든 정부 정책과 방향성은 생명 존중이라는 입장에서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젊은이들에게 숨구멍 열어줘야... 사회적 대화 절실"
- 87년의 경우 언론, 시민사회단체, 일반 국민들까지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도 제 기능을 못하고 시민사회단체도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떨어졌다. 청년들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 변화의 동력을 찾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보나.
유 "사회의 목탁 등 언론에 대한 명예로운 네이밍은 이 시대에는 소멸됐다고 본다.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언론들, 특히 경제 언론들, 대부분 건설사들이 사주인 언론사들은 기업 이익을 추구하는 사익집단으로 변질됐다. 다만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뉴미디어가 공적 감시 등의 기능을 일부 수용하고 있다고 본다. 미디어 관점에서 보면 어떤 변환기에 있지 않나 생각하는데, 제도적 법적 정비도 시급해보인다."
▲ 유시춘 EBS이사장과 박성순 대한성공회 신부 유시춘 EBS이사장(오른쪽)과 박성순 대한성공회 신부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1987년 6월 10일 항쟁 당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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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의 동력을 찾으려면 청년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진단인데 기성세대가 물꼬를 터줄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고민을 이해하려는 절박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 때는 아이 둘 낳으면서 직장생활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너희는 뭐 해' 이렇게 기성세대가 '라떼는'을 시전하면 청년과의 대화가 단절된다. 젊은이들이 처해 있는 과도한 경쟁 체제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세대간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대화가 절실한 것 같다."
박 "젊은이들에게 숨구멍이 필요하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영원한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에 청년들은 어떤 모험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젊은이들이 몇번 실패하더라도 기댈 수 있는 안전장치들, 모험을 하다가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할 수 있는 정책들도 정부 차원에서 모색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지금 정부는 시대 정신을 계승하거나 이끌어가는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보나.
유 "그동안 역대 정부를 보면 분명한 명제와 철학은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87년 이후 국민들의 인권의식, 눈높이에 맞는 합당한 정책과 가치를 지녀야 하는데, 오히려 더 퇴행하고 있는 것 같다."
▲ 유시춘 EBS이사장과 박성순 대한성공회 신부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1987년 6월 10일 항쟁 당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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