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피하려다 중앙선 침범 사고…대법 "무조건 중과실 아니다"
중앙선 침범 교통사고를 냈더라도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파산 신청을 통해 그 사고로 발생한 손해배상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는 지난달 17일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자동차손해배상 지원 공직 유관단체)이 가해 운전자 A씨를 상대로 낸 양수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A씨는 1997년 1월 서울 종로구 청계고가 도로의 1차로를 따라 운전하다가 차로에 다른 차량이 진입하려는 것을 발견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확 꺾은 게 또 다른 사고로 이어졌다.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량과 맞부닥친 것이다. 이 사고로 피해차량에 탑승한 한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두 명은 중상을 입었다.
B 보험사는 피해자들에게 4500만원가량 보험금을 지급했다. 이후 사고를 낸 A씨를 대상으로 피해자들이 가진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신해 행사했고, 2012년 9월 승소했다.
문제는 2015년 A씨가 개인 파산 신청을 통해 이런저런 빚을 면책받으면서 발생했다. 이 면책 대상 채권 목록에는 B사의 손해배상 채권도 포함돼 있었다.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그 뒤 B사로부터 채권을 양수해 2022년 A씨를 상대로 양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양수금은 개인(A씨) 등이 채무를 갚지 않자 채권자(B사)가 채권을 제 3자(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에게 양도해, 제3자가 넘겨받은 채권을 의미한다.
소송의 쟁점은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A씨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채무자회생법 566조는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비면책채권(예외적으로 면책되지 않는 채권)으로 규정한다. A씨는 ‘이미 법원의 면책 결정에 따라 채무가 면책됐다’고 주장했지만,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애당초 A씨의 중대한 과실이 원인이 된 비면책채권”이라고 맞섰다.
1·2심은 모두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의 손을 들어줬다. 원심은 “이 사건 채권은 피고의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채권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사건 면책 결정의 확정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피고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라고 봤다. 중앙선 침범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합의 여부 불문 검찰 기소 대상인 12개 교통사고’ 가운데 하나인 만큼, 채무자회생법상의 ‘중대한 과실’에도 해당한다고 추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비록 A씨가 중앙선을 침범하였으나, 1차로로 주행하던 중 차로에 다른 차량이 진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돌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하게 된 것이고, 제한속도를 현저히 초과하지도 않았다”며 “중앙선 침범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채무자회생법에서 규정한 ‘중대한 과실’이 존재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채무자회생법이 규정한 ‘중대한 과실’이 있는지는 주의의무 위반으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사고가 발생한 경위, 주의의무 위반의 원인 및 내용 등과 같이 주의의무 위반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형사사건의 경우 ‘중앙선 침범’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상 ‘12대 교통사고’에 해당해 실제 과실의 경·중, 합의 여부를 불문하고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채무자회생법 상의 ‘중대한 과실’ 여부는 사건 별로 판단해야 한다며, 그 의미를 더 엄격하게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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